쉬는 시간

찬바람이 불어오면

by 갈매나무




"찬 바람이 불 때쯤엔 다 잊혀져."

10년도 더 되었지만 기억이 나는 말이에요. 제게는 어렸을 적부터 아주 성숙했던 친구가 한 명 있어요. 중학교 시절 만난 그 친구는 저보다 고작 3개월 일찍 태어나 놓고는 그 어렸을 적부터 몇십 년은 더 산 것처럼 이야기를 하곤 했죠. 저 말을 할 때도 꼭 그랬어요.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정작 들었을 당시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물다섯 남짓 어렸던 친구의 말은, 나이를 먹을수록 제게 더 위로가 되어 주고 있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다양한 일과 감정에 대한 경험치가 쌓이면 저는 제가 점점 무던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새롭게 부딪히는 난관이 어찌나 많은지. 갈수록 처음 겪는 일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럴 때면 참 힘들어요. 모두들 다 그렇겠죠? 어릴 땐 미숙한 게 당연하고 용서가 되었는데,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까지는 겪어본 적이 없어서 힘들어요'라는 말은 궁색한 변명일 뿐이잖아요.



그래서 무섭지 않은 척, 흔들리지 않는 척을 잘할 줄 알아야 해요. 그때 도움이 되는 말이 바로 '찬 바람이 불 때쯤엔 다 잊혀진다'는 말이에요. 지금 죽을 것 같아도, 내 인생에 그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잊고 전혀 다른 것들을 곁에 두고 생각하며 살게 될 거라는 거죠.



종종 시간이 날 때면 저는 '내 안의 사람들'을 다시 읽어 보곤 해요. 그러면 그 말에 더 공감이 돼요. 저는 따뜻한 글이든 어두운 글이든 제 글의 깊은 곳에 흐르는 정서는 우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썼으니까 알잖아요. 그 문장을 왜 썼는지, 그 생각이 왜 들었는지, 그 다짐을 왜 했는지. 아무튼, 제가 6월부터 연재를 시작했으니까 글 하나하나를 쓴 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새삼 새롭다고 해야 하나, 낯설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지금의 저와는 좀 동떨어졌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그럼 깨닫는 거죠. 이 날의 감정은 격렬했지만 시간이 지나 이렇게 나는 한 발 떨어져 이 글을 보고 있구나.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다 잊히는 거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게 퍽 도움이 되더라고요. 애초에 연재를 시작할 때 이런 식으로 위로를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지만요, 아무튼 글을 쓰는 게 이렇게 좋네요. 방향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글을 계속 써야 할 이유를 하나 찾은 것 같아요.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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