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20화
“다녀왔습니다~!”
“히히, 중간 끝!”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한껏 가벼워진 책가방을 든 채 평소보다 한층 더 높아진 쌍둥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쌍둥이 왔어? 밥은?”
이준 형의 물음에 이현이 가방을 대충 벗어던지고 교복 넥타이를 느슨히 풀며 말했다.
“친구들이랑 먹고 왔어. 근데, 이거 뭐야? 초코우유? 먹어도 되는 거야?”
쌍둥이가 책상에 놓인 초코우유에 시선을 떼지 못하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응, 너희들 거야.”
“오, 진짜?”
쌍둥이까지 하나씩 초코우유를 가져가고 마침내 인화의 차례가 왔다. 나는 하나 남은 초코우유를 가져가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업무를 다시 보러 가는 인화의 옷자락을 살짝 잡았다.
뒤를 돌아보며 내 말을 기다리는 인화에게 머뭇거리다 같이 사 온 초콜릿 세트를 건네며 속삭였다.
“그, 당 충전 필요하다길래…….”
인화는 눈도 잘 못 마주치는 나를 잠시 보며 곰곰이 생각하다 자신의 말이 이제야 생각난 듯 옅게 미소를 지었다.
“아, 그걸 들었어? 아하하, 조금 민망하네.”
내가 건네는 초콜릿을 받은 인화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뭐야, 왜 이렇게 이쁜 걸로 사 왔어?”
예쁜 건가? 몰라, 내 눈엔 너밖에 안 들어와.
“고마워. 잘 먹을게!”
청아한 그 미소에 나도 모르게 같이 웃고 있었다.
“쌍둥이, 시험 잘 쳤냐?”
“하하, 아니 망했는데?”
빨대를 꽃은 초코우유를 마시던 이후가 인혁의 물음에 허탈하게 웃음을 지었다.
“속지 마, 박인혁. 저 자식들 겉보기와는 달리 천재인 거 알고 있잖아. 쟤네들은 망했다는 기준이 다르다니까?”
‘천재’라는 단어가 자신을 칭하자 기분이 좋아진 이현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하, 내가 좀 천재긴 하지! 근데 최이후는 아니야. 쟨 바보 멍청이.”
“뭐래, 자기소개는 그쯤 하고~”
이현이 웃음을 순식간에 거두고 이후를 째려보았다. 이후가 바라볼 때까지 한참을 노려보다 목표가 이루어지자 다시금 씨익 웃으며 목소리를 꺼냈다.
“6모도 내기?”
넌지시 던진 이현의 말을 이후가 입꼬리를 올린 채 덥석 물었다.
“당연한 소릴. 국수영으로 이번엔 치킨?”
“에다가 떡볶이까지, 콜?”
“콜.”
어김없이 모의고사로 내기를 잡으며 쌍둥이 사이의 묘한 신경전 사이 소소한 행복이 지나가고 있었다.
“너네는 왜 맨날 모고로만 내기를 해? 중간, 기말은?”
업무를 보고 있던 연희가 궁금증을 담아 물었다.
“아, 우리 모고 치기 전에는 공부 안 하잖아. 정정당당이라느니 뭐라느니 별 핑계를 다 대는데 실은 다 최이현이 쫄려서 그런 거지, 뭐.”
“와, 너 진짜 이번 중간 성적 나오기만 해 봐라. 내가 완벽하게 발라준다.”
“헛소리도 정성껏 한다.”
아무런 대꾸 없이 이현이 이후를 향해 중지를 들었다. 그에 맞받아쳐서 이후도 중지를 내밀었다. 이준 형이 문득 쌍둥이 쪽으로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쌍둥이는 급히 손가락을 내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히 자기 할 일을 했다.
달달한 초코우유에 휘감긴 본부 속 약간의 소음과 함께 모두 일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훈련 계획서 마무리하러 다녀오겠습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한 자 한 자 늘어트리며 말하는 진우가 계획서의 초고로 보이는 종이들을 인쇄기에서 꺼내든 뒤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눌렀다. 계획서를 마무리하러?
“어디 가는데.”
“이 대표님 보러.”
아, 이 대표님을 보러…… 아니, 어? 아버지를?
“뭐? 이 대표님은 왜…….”
“아 바빠, 바빠. 말 시키지 마.”
방해하지 말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닫히는 문 너머로 사라져 가는 진우의 모습을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허.”
입 밖으로 헛웃음이 새어 나오는 순간, 본부 전화가 떠들썩 울려댔다.
“네, 특수 속성 경호 본부 박연희 대원입-”
“연희야!”
연희가 전화를 받자마자 연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스피커로 나오는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가 본부를 가득 채웠다.
“우리 딸, 뭐 하고 있었어? 일은 안 힘들고? 피곤하지는 않아?”
활기가 가득 담긴 박 협회장님의 끊이지 않는 물음에 연희가 심드렁하며 입을 열었다.
“아빠, 그거 물어보려고 본부 연락망으로 전화한 거야?”
“……응?”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에 당황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나 지금 엄청 바빠.”
한쪽에 CCTV 화면을 띄워둔 푸른 창에 시선을 떼지 않은 연희가 미간을 찌푸린 채 타닥타닥 바쁘게 본부 책상에 올려둔 손을 움직였다.
“아, 우리 딸 바쁘구나……. 아빠가 하필 우리 딸 바쁠 때 전화를 했네. 응, 아빠가 잘못했어.”
하여튼 집중하고 있을 때 방해받는 거 엄청 싫어하는군.
“우리 연희 바쁜 와중에 미안한데 도헌이 좀 불러줄 수 있을까……? 아빠가 부탁할 게 있어서.”
그 말에 순간 연희가 멈칫했다. 획 나를 향해 돌리는 연희의 시선이 애처롭게 흔들렸다. 나는 본부 책상으로 걸어가 책상과 연결된 인이어 무전기를 끼고 본부 연락망으로 온 전화를 받았다.
“네, 특수 속성 경호 본부 이도헌입니다.”
“어, 도헌아. 나다……. 혹시 지금 많이 바쁘냐……?”
곧바로 인이어 너머로 풀이 죽은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닙니다, 박 협회장님. 무슨 일이세요?”
“사회에 사는 속성 보유자 중 협회 미등록자가 이제야 모두 집계돼서 말이다. 본부로 명단 보내줄 테니 특경부가 미등록자를 협회로 인솔해 주었으면 하는데.”
아직도 협회 미등록자가 나타나는 건가.
“알겠습니다.”
“총 네 명이다. 그중에 강다온이라고 고등학교 이 학년 남학생이 한 명 있는데 그 아이는 꼭 데려와야 된다.”
고등학교 이 학년? 열여덟 살이나 됐는데 협회 미등록이라고?
협회에 등록되지 않으면 속성 제어를 위한 은색 팔찌를 받지 못한다. 즉, 평상시 일상생활을 할 때도 속성 제어를 온전히 자기 힘으로만 해야 된다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체력이 부족할 나이에 속성 제어까지 쭉 하고 있으면 여간 힘들 일이 아닐 텐데. 게다가 눈도 소유하고 있는 속성의 대표색으로 빛나고 있을 것인데 사회에서 그 점을 수상스럽게 안 볼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럼 좀 부탁한다…….”
박 협회장님이 한숨을 섞은 말을 나직이 내뱉으셨다.
“……괜찮으십니까?”
“응……. 유하 어릴 때 생각도 나고 해서 행복해. 유하도 일할 때 방해하는 거 싫어하니까…….”
허탈한 박 협회장님의 웃음이 연희에게까지 닿아야 할 텐데.
“네, 그럼 들어가세요.”
“오냐…….”
짧은 전화를 끝마치고 인이어를 뺀 뒤 나는 이현에게 말했다.
“이현아, 박 협회장님이 협회 미등록자 명단 보내실 거야. 그거 좀 인쇄해 줘.”
“넹~”
“이후는 명단 확인해서 거기 있는 연락처로 특경부가 지금 방문한다고 연락 보내고.”
“옙~”
연희는 바삐 움직이던 손을 완전히 멈추고 무언갈 곰곰이 생각하더니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자신의 핸드폰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희의 다급한 걸음은 본부 안에 위치한 방으로 향하였다.
“여보세요? 아빠.”
연희의 말이 막을 내리기 무섭게 방문이 쾅 닫혔다.
“도헌 오빠, 여기.”
나는 이현이 건네는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상단에 ‘협회 미등록자 명단’이라 적힌 글자 밑으로 네 명의 미등록자들의 간략한 정보가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이 학년과 일 학년인 김서아와 김채아, 이제 막 팔 개월이 된 권온유, 그리고 고등학교 이 학년인 강다온.
어린애들을 만나는 것이니 혼자 가기에는 조금 버거우려나.
“팔 개월? 헐, 아기 완전 귀엽겠다.”
어느새 내 옆으로 와 명단을 슬쩍 보고 있는 선아 누나가 넌지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 미등록자들을 협회로 인솔할 때도 누나가 같이 갔었지?
“누나, 준비해.”
나는 책장에서 서류 받침대를 하나 꺼내어 명단을 끼웠다.
“응? 뭘?”
탁, 명단이 안정적이게 고정되었다.
“일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