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의 나비 22화

제4막 너와의 새로운 인연(4)

불의 나비 22화

by 매화연

“동생분들은 이제 괜찮은 겁니까?”


“네, 수술도 무사히 끝났고 회복도 너무 잘해서 보시다시피 이젠 제가 저 에너지를 감당 못 할 정도예요. 협회 등록 안내해 주시려고 오늘 오신 거죠?”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닫친 문 너머로 작게 들리는 떠들썩한 웃음 섞인 대화 소리에 김한아 학생이 살포시 미소를 띠었다.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병명이 무엇인지,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 이때까지 무슨 약을 복용했고 정말 그 약으로 병을 잠시 억누를 수 있었던 건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차마 그 표정들을 보고 어떠한 것도 묻지 못하였다.


그저 사 년간 이 집에 오면서 내가 보았던 건 항상 침대에 누워 색색거리며 선잠에 빠진 아이들과 자책에 빠져 계시던 아이들의 부모님, 그리고 책임과 아픔에 적셔져 가장 괴로워했던 이제야 고등학교 삼 학년이 된 장녀의 표정이었고, 그때에 내가 했던 건 그 어떤 말도 건네지 못한 채 다시금 발걸음을 돌리는 것뿐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심각한 병이라 했던가. 아이의 부모님도, 협회장님도 말씀하시기 꺼리는 눈치이기에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다.


저렇게나 밝은 아이들이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아까 안 바쁘냐는 질문은 대체 무슨 의도입니까?”


나는 서류 받침대에 구김 하나 없이 곧게 끼워져 있는 명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 그게…….”


뜸을 들이는 김한아 학생의 모습에 서류에서 잠시 시선을 떼고 그녀를 일별하였다.


“저번달에 아빠랑 협회에 갔었는데 특경부 이야기로 많이 떠들썩하더라고요.”


새삼스럽지도 않다. 협회는 항상 특경부 이야기로 떠들썩하니 말이다.


“이도헌 님 이름이 많이 거론되면서 요즘 특경부가 엄청 바쁘다고 하길래 당연히 리더이신 이도헌 님이 제일 바쁘실 테니 다른 대원님이 오실 줄 알았는데 이도헌 님이 문 앞에 딱 서 계셔서 너무 놀라가지고…….”


“저 말고도 다른 대원들도 다들 많이 바쁘니까요.”


둘째인 김서아 학생은 물 속성, 셋째인 김채아 학생은 번개 속성, 그리고 첫째인 김한아 학생은…….


슬쩍 옮긴 시선에 들어온 그녀의 팔찌의 보석이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번개 속성이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그게, 그…….”


뭐가 궁금하길래 저리 우물쭈물하는 걸까.


“……한 협회장님 일은-”


“못 알려줍니다.”


그녀의 말을 단칼에 자르며 말했다. 뭔가 했더니, 쓸데없는 질문이었군.


“그 어떤 것도. 그러니 그 건에 관해서는 묻지도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마세요.”


반사적으로 날카롭게 나간 목소리에 김한아 양의 몸이 흠칫 떨렸다.


알아서 좋을 게 없잖나. 알아서 뭐 하게. 사부의 실종을, 그 역한 실군단과 그들의 우두머리를, 모든 진실을 아무런 관련 없는 자가 알게 돼서 이득 볼 게 일편도 없다.


그 속에 담긴 끝없는 한은 오로지 내가 져야 될 몫이다.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을 테니.


……언젠가는,


내가 기필코 우두머리를-


“저, 죄송해요. 제가 실수한 것 같네요…….”


김한아 학생의 말에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고등학교는 다닐만해요?”


나는 더 분위기가 어두워지기 전에 미숙하게나마 신속히 화재를 돌렸다. 조금도 바뀌지 않은 친숙한 교복에 문득 빛바랜 그때의 추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래봤자 모두 다 그 자식들이랑 관련된 것뿐이지만.


“대입만 빼면…….”


다행히도 내 장단에 어울려준 김한아 학생이 깊게 한숨이 담긴 말을 넌지시 내뱉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내신 따기 빡센 건 여전하려나.”


“네. 잘하는 애들이 워낙 많아서요.”


“뭐, 자사고인 데다 나름 명문고 쪽에 속하니까요. 내가 재학 중일 때도 그랬는데 아직도 그렇군요.”


서진우랑 박인혁이 내신 딴다고 거의 죽을 뻔했지. 아직까지도 고등학교 이야기만 나오면 진절머리가 난다 할 정도인데.


“나름이 아니죠. 제가 이 학교 오려고 중학교 때 얼마나 열심히…… 잠시만, 여전……이라뇨? 재학 중일 때……?”


순간 식겁해진 그녀가 나를 똑바로 직시하였다.


“모르셨습니까? 저 화연고 출신입니다. 같이 온 이선아 대원도 화연고 출신이고. 김한아 학생 부모님께서 한아 양 화연고 내신 준비할 때 저한테 많이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죠.”


“어, 선, 선배님이셨구나…….”


‘선배님’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선배님은 무슨. 졸업한 게 벌써 육 년 전입니다.”


“육 년? 오, 육 년.”


김한아 학생이 희죽 웃으며 덧붙였다.


“선배님이 아니라 아저씨라 불러야겠네요~”


“허.”


그렇게나 어른스러운 그녀도 웃음에서만큼은 아직 어린 티가 많이 묻어났다.


“화연고 졸업생이시면 공부 잘하셨나 봐요?”


“뭐, 어느 정도는요.”


“전교 몇 등 하셨는데요?”


“일 등이요.”


“아, 일 등…… 네? 전교 일 등이요?!”


그녀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았다.


“혹시, 일 등 몇 번 하셨어요……?”


“중고등학교 육 년 내내 계속.”


“와……, 진짜 미쳤다.”


반짝임을 담은 눈동자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보듯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래, 이제야 좀 고등학생 같네. 아까 전까지는 너무 어른 같았어.


아직 이르다. 어른과 같은 선상에 서서 똑같은 무게의 수많은 짐을 짊어지기에는. 어른도 가끔 감당하기 힘든데 이 아이한테 얼마나 버거웠을까. 한창 낙엽만 굴러가도 웃을 나이인데.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일하러 가셨습니까?”


“네. 엄마는 회사 가셨고, 아빠는 동생들 간호 때문에 계속 미루고 미루던 해외 출장 드디어 가셨어요.”


“그렇군요. 그럼 준비 끝나는 대로 바로 출발해서 협회로 가시면 됩니다. 박 협회장님 집무실에 들어가면 돼요. 되도록 이십 분 이내로 도착하길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고운 미소를 지은 김한아 학생이 현관문의 문고리를 살포시 잡을 때였다.


“그간.”


내가 다시금 입을 열자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고생 많았습니다.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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