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막 너와의 새로운 인연(6)
불의 나비 24화
호흡을 가다듬고 위엄한 붉은빛이 휘감긴 집을 잠시 바라보았다. 오른손 손바닥이 현관문에 닿자 손끝에서만 맴돌던 기운이 곧바로 혈관을 타고 오른팔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달 속성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달 속성의 영향을 받은 속성은 사용할 수 있었다. 자유자재로 언제든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다. 아니, 이거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칭송받는 위대한 달 속성 가문의 후예이니까, 어떤 방식으로라도 달 속성을 꺼내야 한다.
불의 나비가 달 속성의 영향을 받은 채 소환되면 분명 그 힘을 내가 감당하지 못할 테지. 그러나 사부의 결계를 부수기 위한 방법은 이게 유일하였다. 이 방법조차 가능성이 있을 뿐이지 목표를 달성할지도 미지수였다.
평소와 같이 찬란히 빛나는 불의 나비가 하나둘 소환되며 점차 집의 외곽을 채워나갔다. 이 불의 나비가 아니었다. 세상 모든 날빛을 잠재울 빛을 가진 불의 나비여야 되었다.
천천히, 집중해라. 결계와 직접 맞닿은 팔이 속성에 침식되기 전에 어떻게든 달 속성의 영향을 받은 불의 나비를 소환해야 돼.
빼곡히 둘러 감싸 안은 불의 나비를 더는 집이 포용하지 못하였다. 단 하나의 불의 나비만이 정착할 수 있는 공간만을 남겨둔 순간이었다.
스으으으,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기어이 심장 속에서 탄생한 불의 나비가 유독 찬란한 빛을 품어내며 느린 날갯짓으로 현관문의 정중앙에 안착하였다. 그러자 모든 불의 나비가 현란한 빛이 되었다.
파지지직, 파지직.
그리고, 펑.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 뒤에 폭발하는 소리가 작고 짤막하게 연잇더니 곧이어 사부의 결계 위 백색의 균열이 생겨났다. 그 균열을 똑똑히 확인하자 한꺼번에 후유증이 밀려왔다.
나는 피 칠갑이 되어 극심한 떨림을 소유한 오른손을 현관문에서 슬며시 떼었다. 순간 몸이 휘청거리며 세차게 뛰는 심장이 조여왔다.
“도헌아, 괜찮아. 진정하고 숨 천천히 쉬어.”
나를 부축한 채 괜찮다며 계속해서 익숙하게 날 안정시키는 누나의 말에 최대한 천천히 숨을 쉬려 노력했다.
아프다. 몸 전체가 뜨겁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거칠게 울리는 심장이 혈액을 뒤엎었다.
“이제…… 쿨럭, 괜찮아.”
겨우 목소리를 꺼내 들며 연신 기침을 했다. 후우, 길게 숨을 내뱉은 다음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시 떴다. 됐다, 이만하면 충분해.
자그마한 균열을 내는 게 최선인 건가. 물론 이 정도도 감지덕지다. 업무를 보는 데에도 충분해 보이고.
……사부가 이걸 보셨더라면, 대견하다며 칭찬을 해주셨을까.
나는 손수건으로 대충 피를 닦아냈다. 손수건이 오른손을 부드럽게 감싸자 쓰라린 통증이 연이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손수건을 살포시 쥔 뒤 균열 사이로 왼손을 뻗어 초인종을 꾹 눌렀다.
띵동 -, 초인종이 연주한 짧은 음이 끝이 났음에도 그 뒤는 적막한 고요뿐이었다. 다시 한번 초인종을 눌렀다. 청아하게 울리는 소리에도 여전히 고요는 지속되었다.
“집에 없는 거 아니야?”
하아…… 이 고생을 했는데? 만약 정말 강다온 학생이 집에 없다면 골치 아파지는 걸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나는 끝내 손으로 직접 문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특경부입니다. 안에 아무도 안 계십니까?”
돌아오지 않는 답에 절로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이 시간이면 학교는 진작에 마쳤겠지. 학원이라도 간 건가?
그때였다.
터벅터벅, 미약하게 전해지는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경계심이 가득 서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차 커지던 발걸음이 현관문 바로 앞에 우뚝 멈추어 섰다. 나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마침내 문이 슬쩍 열렸다.
“……강다온 학생?”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한 남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을 다 뒤덮는 덥수룩하게 내려온 흑색의 머리카락 속 언뜻언뜻 보이는 그의 두 눈동자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위아래로 훑고는 지그시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의 시선이 자신의 바로 앞에 보여지는 백색의 균열로 떠나가자 눈썹이 움찔거렸다.
“강다온 학생, 맞으십니까?”
“……누구세요?”
눈 밑 그림자가 두터웠다. 눈동자의 빛도 속성으로 인한 빛일 뿐 본래의 반짝임은 잃은 지 오래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특수 속성 경호 본부 이도헌이라고 합니다.”
내 말에 강다온 학생의 인상이 더욱 깊어져만 갔다. 특경부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건가?
“본부에서 연락이 갔을 텐데, 확인 못하셨습니까?”
“예? 본부요? 그게 뭔……, 아니 그보다 연락? 제 번호를 어떻게 알고요. 아……, 혹시 경찰이에요? ……경찰이라 쳐도 제 번호는 어떻게……?”
경계심이 더욱 증가된 강다온 학생이 좁게 열린 문틈마저 조금씩 좁히고 있었다.
“JI 그룹에서 나왔습니다.”
JI 그룹이라는 단어에 강다온 학생의 몸이 흠칫 떨렸다. 흔들리는 그의 시선은 점차 밑으로 내려가 내 팔찌에 안착하였다.
곧장 으득, 어금니를 꽉 깨무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그러고는 강다온 학생은 고개를 푹 숙인 다음 문을 닫지도 않은 채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따라 들어가야 하나?”
슬쩍 집 안을 엿보는 누나가 내게 물었다. 우리를 무시하고 그냥 집으로 다시 들어가 버린 것이라면 현관문까지 철저히 닫고 갔겠지.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는 반드시 다시 나올 것이다.
“일단 잠시만 기다려 보자.”
얼마 안 있다 강다온 학생이 다시 현관으로 나왔다. 처음보다 힘이 생긴 걸음의 원동력이 어째서 분노인 건지 알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다온 학생의 손에는 꾸깃꾸깃 구겨진 종이가 손에 들려 있었다. 그는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원망이 서린 눈빛을 내게로 보내며 꽉 쥐고 있던 군데군데 찢기기까지 한 종이를 있는 힘껏 나에게 던졌다.
그래봤자 달랑 종이 한 장이었다. 둥글게 뭉친 것도 아니고 이미 낡을 때로 낡아 너덜너덜한 종이가 타격을 입힐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종이가 비행을 끝마치고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얼른 덥석 잡았다.
종이에 빼곡히 글자가 채워져 있었다.
“나한테…… 이딴 걸 보내는 게 말이 된다 생각해?”
조금도 번지지 않은 잉크가 담아낸 정갈한 서체.
“속성으로 고문당했어. 죽기 직전까지 속성으로 계속 맞고 또 맞다가 피투성이가 된 채 개처럼 산골에 버려졌다고!”
숨이 턱 막히고 속이 울렁거린다. 머리가 웅 울렸으며 떨리는 손은 나약함을 그대로 표출하였다.
“정말 죽는 줄 알았을 때, 비루한 이 목숨을 살려주고 날 키워준 사람이 있었어. 그냥 처음 보는 불쌍한 꼬마일 뿐인 나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 분인데…… 속성이 있는 날 괴물로 바라봐주지 않은 유일한 분이었는데…… 내 아버지 같았던 그런 분이 속성으로 죽었다고!!”
종이에는 간략하게 적힌 기본적인 속성에 대한 정보와 협회에 관한 내용이 쭉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이러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언제든지 편히 협회를 방문하여 한 협회장을 찾을 것.’
“같잖은 왕 노릇이나 처하고 있으면 적어도 백성으로 부려먹는 사람들은 잘 챙겨야 될 거 아니야! 협회장이 대체 뭔데? 그딴 게 왜 있냐고. 그렇게나 위대하다는 협회장도 사람 하나 죽어 나가는 거 막지도 못하는 역겨운 방관자일 뿐이잖아! 종이 쪼가리에 궁금하지도 않은 내용들만 적어서 보낼 게 아니라 직접 찾아오든지 해서-!”
탁 - !
“입 조심해.”
“이도헌!”
쿵, 들고 있던 서류 받침대가 그대로 놓아버리고 멋대로 나간 왼손이 강다온의 멱살을 잡았다. 사락, 바람에 흩날려 그의 앞머리가 걷히자 눈동자에 박힌 한이 더욱 명확히 불타고 있었고 살랑거리며 바람을 타던 종이는 끝내 바닥에 종착하였다.
“네가 뭔데 감히 그분을 욕해.”
꽈악 더욱 힘이 들어가는 멱살 잡은 손에 강다온이 인상을 한층 더 깊게 찌푸렸다.
“모르겠어? 사부가 널 얼마나 배려했는지 모르겠냐고. 대충 읽어봐도 알 정도로 그분의 온기가 얼마나 한없는데.”
속성을 증오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찾아갔다 괜히 증오심만 더욱 타오르게 할까 걱정하셔서 아이가 원할 때 먼저 찾아올 수 있도록 하셨다. 사부가, 그러셨다.
“네가 지금 살아있는 것도 모두 그분 덕분이라고!”
나도 모르게 높여진 언성이 이때까지 강다온이 살아있는 이유를 담자 그의 측정할 수 없이 깊던 원망은 곧 그의 눈에 맺히는 눈물이 되었다.
“누가…… 살려 달랬냐고…….”
……왜? 어째서지?
옷이 찢어질 듯 멱살을 꽉 잡고 있었던 손이 스르륵 힘을 풀고 구겨졌던 인상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참고 있던 숨이 한 번에 거칠게 터져 나왔다. 시선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목 언저리를 매만지던 한 아이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대체 왜, 너한테서 그날의 내가 겹쳐 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