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26화
“……다섯 살이 되자마자 부모라는 인간들이 속성으로 괴롭혔어요. 내가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죽어라 괴롭힘 당했던 기억만 나요. 아마 화풀이 대상이었었나, 그랬을 거예요. 어떤 스트레스든 나한테 풀었으니까.”
아무리 협회 밖에서 살았다 한들 속성을 사용하면 바로 불법 속성 사용자로 치부된다. 그때는 특경부가 생겨나기 한참 전의 일이었으니 아마 불법 속성 사용자 업무를 협회 경찰이 다루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제지를 안 당한 걸 보면…… 답은 하나지.
……돈에 미친 자식들.
“그렇게 여덟 살이 되던 해에 평소보다 조금 더 심하게 당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겨우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산에 버려졌거든요. 진짜 이대로 죽나, 싶었을 때 우연히 운동을 하던 한 아저씨가 저를 발견하고 구해주셨어요.”
생명의 은인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모를 무겁고도 깊은 무언가에 점차 잠겨갔다.
“그 아저씨는 속성이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대충 제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조금 특별하다는 것쯤은 알고 계셨던 거 같아요. 아저씨 눈에는 제가 괴물로 보였을 텐데, 그냥 불쌍한 꼬마였을 저를 아저씨가 키워주셨어요. 살아가는 법을, 사랑하는 법을, 사랑을 알려주셨고요. 그 지옥 같았던 삼 년을 기억 속에서 사라질 정도로 행복하게 살게 해 줬어요. 아버지 같았던 그러한 분이……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강다온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미세하게 떨리는 두 어깨에 또다시 이 아이와 그날의 내가 겹쳐졌다.
“평범하게 아무 일 없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집 앞에…… 아저씨가 쓰러져 있었어요. 진짜 누가 보면 잠든 것처럼 보일 만큼 편안하게, 조금의 피도, 상처도 없이. 의사들은 갑작스러운 심정지래요. 근데, 아니에요 그거. 갑작스러운 심정지가 아니라…….”
점차 울음이 섞이기 시작한 강다온의 말이 잠시 끊겼다. 그리고 다시금 이어지던 순간, 시간이 일순 멈춘 것 같았다.
“속성으로 돌아가신 거라고요…….”
“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허공을 이리저리 맴돌았다.
“심장 부근에…… 얼음 속성이 고여져 있었어요. 실처럼.”
실처럼.
그 한 어절이 메아리인 마냥 계속해서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실군단은 올해부터 이곳저곳에서 활개를 치기 시작하였다. 오 년 전, 그날을 빼면 단 한 번도 세간에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작년? 그것도…… 사람 한 명을 죽였다고?
“그런데 제가 어떻게 속성 보유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요. 나 때문에…… 아저씨가 죽었는데…… 속성 보유자인 저를 알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을 겪으시지 않았을 텐데…… 제가 어떻게!”
속성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살아있을 수가 있어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
“인간이라고도 취급하기 싫은 부모라는 자들이 죽도록 괴롭힐 때, 당시에는 그렇게 어렸었는데 진짜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아저씨를 만나고 나서 살고 싶어졌어요. 아저씨만 있으면 됐어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고요. 차라리 그날, 그냥 산에서 빨리 죽었어야 됐는데…… 대체 왜 아저씨가…….”
저 아이의 기분을 너무도 잘 알아서 나는 아이에게 뭐라 말을 건네지도, 아이를 안아주지도, 다독여주지도 못하였다.
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사부를 살리지 못한 나를 지독히도 혐오하니까.
절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과거와 공생하지도 못했다. 한 공간에 있는 나의 과거를 한없이 원망하며 점차 거리를 늘려갔다. 그와 멀어져도 그 공간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지만.
“……그러니까 포기하세요. 괜히 싫어하는 시간 낭비 더 하지 마시고. 이 팔찌도 좀 가져가고요.”
눈물을 쓱 닦은 뒤 강다온이 고개를 획 돌렸다.
“전 협회 갈 생각 조금도 없-”
나는 강다온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그를 단번에 들어 왼쪽 어깨에 들쳐업었다. 한쪽 어깨에 매달린 그의 당황이 보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로 강했다.
“뭐, 뭐예요?! 당장 안 내려나요?!”
거의 뼈밖에 없는 몸이 몹시 가벼웠다. 이 정도면 그냥 바람에 날아가겠는데.
“이거, 내려놔!”
“위험하다. 움직이지 마.”
“아 진짜!”
발버둥 치는 강다온을 꽉 잡은 채 집 밖으로 나갔다. 어느덧 해는 저물었고 하늘은 흑색으로 빼곡히 칠해져 있었다.
인기척도 완전히 사라졌다.
“아니, 협회 안 갈 거라니까? 등록 안 할 거라고!”
“형이.”
무심히 나온 내 목소리에 강다온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형이 배후 찾아줄게. 어떻게든 찾아내서 복수해 줄게.”
우두머리의 목을 베어버릴 이유는 단 하나, 그분을 위한다는 단 하나의 곡절로도 이미 당위성은 차고 넘쳤다.
굳이 헤아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억지로 늘렸다. 그런다 한들 복수심이 배가 된다던가, 증오가 증가하지는 않았다.
“복수하는 거, 봐야 할 거 아니냐. 그리고, 악착같이 살아서 남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러니까 좀 가만히 있어. 너 지키려고 지금 이러는 거니까.”
사부의 결계는 속성 보유자가 절대 강다온의 집을 건드리지 못하게 설계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순수 속성으로 이루어진 실군단도 못 건드렸겠지. 그래서 주위에 매복하며 계속 기회를 노렸던 거고.
실군단의 우두머리가 강다온을 노리는 이유. 간단하다. 강다온은 협회에 등록되지 않았으니까. 우두머리는 강다온이 어떻게 되든 협회 측에서 신속히 나서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강다온을 철저히 보호해 주었던 그 결계가 깨진 이상 미래의 결과는 안 봐도 뻔하지.
완벽한 실험체.
보호의 유효 반경 안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사용하기 제격인 실험 쥐.
일시는 곧이어 영원이 되었다. 더 이상 버둥거리지도, 내리라 소리를 지르지도 않는 강다온에게 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자.”
“네?”
“한 협회장님이 그 편지 언제 보내셨어?”
기억을 더듬는 듯 돌아오는 목소리 사이에 짧은 정적이 지나갔다.
“아마 칠 년 전일 걸요.”
칠 년……. 나는 명단이 끼워진 서류 받침대를 슬쩍 일별하였다. 피로 물들어가는 명단 뒤에 사부의 서신이 있다. 사부가 직접 적은 서신이.
“형.”
낯설게 내뱉은 그 말이 어색한 건 나보다 당사자가 더 하겠지.
“왜.”
“저 이제 협회까지 형 잘 따라갈 테니까 이만 내려주면 안 돼요?”
“안 돼.”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도망갈 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잘 따라오겠지. 근데, 너무 괘씸해서 말이야.
“아니, 진짜…… 너무 쪽팔린단 말이에요…….”
그래그래, 좀 더 쪽팔려해.
점차 더 큰 길가로 나오자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협회를 순찰할 때면 이게 일상이라 나는 딱히 신경 쓰이지는 않다만 누구는 부끄러워 죽으려 하는군.
……사부.
왜 이 아이의 집에 결계를 쳐놓으셨습니까? 왜 아이에게 이토록 배려하고 신경 쓰셨습니까? 정작 이 아이는 이렇게 사무치도록 사부를 미워하는데. 사부가 그걸 모르실 리가 없잖아요.
대체 왜.
왜 그날 우두머리의 공격을 대신 맞았습니까? 왜 몸을 버리시면서까지 저를 살리셨습니까? 사부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젠 아무것도 없는데. 사부가 그걸 모르실 리가 없잖아요.
사부의 제자라는 명칭이 저에게 너무 과분합니다. 저는 제자라 불릴 만큼 떳떳한 사람도, 자랑스러운 사람도 아닙니다.
……차라리 그날, 정해졌었던 운명을 따라 내가 우두머리의 공격을 맞았더라면…… 지금쯤 사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