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27화
“……그, 도헌아.”
“네.”
“애가 말을 많이 안 듣든……?”
“아뇨, 딱히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아니면, 애가 네 심기를 건드렸다던가…….”
계속되는 박 협회장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허면 대체 왜 애를 어깨에 들쳐 매고 오느냐.”
…….
아.
옆에 계시던 최 소장님이 물으시자 그제야 집무실에 들어온 직후에 당혹함이 일순 물들었던 박 협회장님과 최 소장님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나는 강다온을 조심히 내려놓았다.
“워낙 협회로 안 가려 하길래 그냥 들고 왔습니다.”
“간다 했잖아요…….”
아직도 새빨간 얼굴을 두 손에 파묻으며 강다온이 중얼거렸다.
“뭐, 아무튼 고생 많았다. 수고했어.”
“아닙니다.”
나를 향하던 박 협회장님의 시선이 곧이어 강다온에게로 넘어갔다. 어째선지 평소보다 서늘해진 분위기를 띄우시는 박 협회장님과 눈이 마주치자 강다온이 몸을 흠칫 떨었다.
평범한 강다온의 눈에 의아하신 듯 박 협회장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나를 일별하는 강다온에게 다가가 손목에 있던 팔찌를 빼주었다. 서서히 붉게 물드는 강다온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시던 박 협회장님이 마침내 입을 여셨다.
“이리 가까이 오거라.”
강다온은 의구심을 가득 담은 발걸음을 조금씩 옮겼다.
“쓰러졌다 들었는데, 좀 몸은 괜찮으냐?”
잔뜩 스며든 강다온의 긴장이 풀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네.”
“다행이구나. 별 건 아니고 협회 등록을 위해서 몇 가지 절차를 밟아야 해서 말이야. 그리 복잡하진 않아. 찬찬히 설명해 줄 테니 협조 부탁한다.”
쭉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에 최 소장님이 박 협회장님의 옆으로 가셨다. 최 소장님의 손에는 오랫동안 주인을 기다려온 팔찌가 반짝이고 있었다.
박 협회장님에게 말씀드릴 것이 있기에 아직 본부로 복귀하지 못한다. 얼마가 걸리든 계속 기다릴 수 있다. 본부 일이 좀 많이 밀리긴 했으나 오늘 밤을 새운다면 충분히 다 끝낼 수 있는 양이었다. 정말 다 괜찮은데…….
협회장님이 강다온이랑 이야기가 끝나실 때까지 아버지와 단둘이 있어야 하는 건가……?
나는 굳은 시선을 조심스레 옆으로 옮겼다. 강다온을 지그시 주시하시던 아버지가 내 눈빛에 고개를 내게로 돌리셨다. 급히 시선이 다시금 앞을 향했지만 아버지는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으셨다. 영원을 품은 줄 알았던 숨 막히는 시간은 아버지가 집무실을 나서시자 끝이 났다.
쿵, 문이 닫히며 남기고 간 소리의 흔적에 최 소장님의 눈길이 잠시 이쪽을 향하였다.
뭐지? 화가…… 나신 건가? 내가 뭘 잘못했지……?
혼란스러움에 섞여 들어가는 머릿속이 점차 어지럽기 시작했다. 아니, 혼돈한 상황과 복잡한 생각 탓이 아니었다.
이곳저곳 자리 잡은 깊은 상처는 피를 절대 놓지 않았다. 피는 붉은빛을 품은 불 속성을 꽉 붙들고 있었고, 속성에서 통증이 비롯되었다. 착용하지 못한 팔찌가 왼쪽 손에 들린 채 조금씩 좌우로 움직였다. 명단은 이미 붉게 물든 지 오래였다.
달 속성의 영향을 받고 나온 불의 나비를 사용한 부작용까지 겹쳐 상태가 최악이었다.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 주먹을 꽉 지다 보니 상처가 손톱에 꾹 눌러지며 악을 질러댔다. 주륵 녹진하게 흘러내리는 피의 높은 온도가 손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협회에 온 걸 환영한다, 강다온.”
마침 협회 등록이 끝난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오른쪽 손목을 번듯이 휘감고 있는 팔찌의 보석이 붉게 빛나는 것을 보던 강다온의 눈동자가 어째선지 미묘하게 반짝였다.
“도헌아, 니네 아빠 어디 갔느냐.”
박 협회장님과 강다온이 잠시 대화하는 사이 최 소장님이 내게로 오셔서 물으셨다.
“잘 모르겠습니다.”
“또 아무 말 없이 어딜 간 건지…….”
최 소장님의 목소리가 사라지기 무섭게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아버지셨다.
“뭐야, 어디 갔다 온 거냐.”
“김 선생한테.”
“갑자기 김 선생한테는 왜-”
자연히 내려간 최 소장님의 시선이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는 자그마한 유리병에 걸렸다. 맑은 투명의 자태를 자랑하는 병 속에는 황홀한 주황의 빛을 품은 해 속성이 고귀하게 담겨져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서류 받침대를 가져가셨다. 피에 절여진 종이가 너덜너덜해진 채 받침대에 끼워진 것을 본 아버지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아, 저, 그게…….”
나도 모르게 나온 목소리는 결국 끝을 보지 못한 채 먹혀들어갔다. 서류 받침대를 잠시 책상에 내려놓으시고는 아버지가 내 오른손을 조심스레 잡아 슬쩍 올리셨다.
뚜껑을 연 유리병이 기울자 대지를 일깨우는 대낮의 햇빛처럼 쏟아지는 해 속성이 따스하게 상처를 감싸 안았다, 찰나의 극심한 통증 뒤 사라져 가는 피와 상처가 원래의 손으로 거침없이 길을 밟았다.
“도헌이 다쳤느냐?”
그새 이야기가 완전히 종막을 내렸는지 나를 보시는 박 협회장님의 말씀에 강다온도 내게로 눈을 돌렸다.
“크게 다친 게 아니라 괜찮아요.”
“치료 좀 제때제때 받거라. 특히 속성으로 인한 상처이면.”
내가 다쳤다는 말에 가장 놀란 건 강다온이었다. 크게 뜬 두 눈으로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협회장님!!”
벌컥, 문이 세차게 열리며 우렁찬 목소리가 집무실을 가득 채웠다.
“깜짝이야.”
최 소장님이 몸을 움찔 떠셨다.
“어 그래, 왔느냐.”
익숙하다는 듯 박 협회장님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집무실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박 협회장님의 비서이신 권원우 형이었다.
JI 그룹의 비서실에는 총 일곱 명의 비서님들이 계신다. 모두 각 속성 대표님들의 비서님들이다. 속성 대표님들과 비서님들이 오랜 세월을 함께 일하시며 보내신 만큼 나 또한 비서 형, 누나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기에 꽤 친하다 말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형, 누나들이 비서가 되기 전부터 알고 지냈으니까. 형, 누나들이 어릴 때부터 많이 예뻐해 주셔서 친해질 수 있었던 거지.
“퇴근! 퇴근하셔야 합니……, 어? 도헌 도련님!!”
퇴근을 못해서 한이라도 맺혔는지 퇴근을 남발하던 원우 형이 나를 발견하고는 큰 보폭에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를 실어 내게 다가왔다.
도련님이라는 호칭은…… 당최 나도 왜 그렇게 나를 부르는 건지 모르겠다. 모든 비서님들은 나를 포함한 특경부 대원 모두를 도련님, 아가씨라 부른다. 그러면서 우리가 비서님이라고 부른 건 질색하고 말이지.
“잘 지내셨습니까!”
“네, 네…….”
나는 형의 손바닥에 양 볼이 찌부러진 채 대답했다.
“이야~ 이거, 왜 이렇게 오랜만인 것 같습니까? 어쩜 전에 만났을 때보다 더 귀여워진 거 같은데.”
“권 비서, 애 그만 괴롭혀라.”
“아, 제가 언제 괴롭혔다 그러십니까.”
입꼬리를 씨익 올리고 내 볼을 꾹꾹 누르며 형이 박 협회장님에게 말했다.
“그보다 박 협회장님, 퇴근하셔야 됩니다. 벌써 열두 시란 말이에요!”
“나 신경 쓰지 말고 먼저 퇴근하라니까? 괜찮다 해도 꼭 난리지.”
“제가 어떻게 그럽니까! 상사가 퇴근하셔야지 제가 퇴근할 거 아닙니까!”
“가! 가라고, 그냥! 괜찮다! 집 가!”
“안 됩니다! 못해요!”
조금도 절대 꺾지 않는 시끄러운 두 분의 말소리에 최 소장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어우, 시끄러워라.”
“저러는 게 한두 번이냐.”
나는 오른손에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다시금 폈다.
어느새 완전히 해 속성이 완전히 스며들어 손은 완벽하게 돌아온 지 오래였고 몸 상태도 한결 나아졌다.
“……감사합니다.”
내 말에 아버지가 슬쩍 나를 일별하셨다.
“일이 안 끝났는데 내가 퇴근을 어떻게 하나!”
아직도 안 끝난 두 분의 투닥거림이 박 협회장님의 일격에 원우 형이 윽, 짧게 말을 내뱉자 단숨에 막을 내렸다.
“아아, 협회장님 일이 왜 이렇게 많으십니까…….”
“난들 아냐.”
두 분은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셨다.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딱히……, 아, 이 아이 집에 좀 데려다줘야 하는데.”
박 협회장님의 시선을 따라 원우 형의 시선도 옆에 있던 강다온을 향하였다.
“저, 혼자 가도 되는데…….”
“제가 데려다주겠습니다.”
강다온과 겹친 내 목소리에 원우 형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미 흑색으로 어둑해진 세상은 깊게 잠들었다.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위험하니 제가 데려다주고 오겠습니다. 대신!”
형은 강다온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덧붙였다.
“이 학생 데려다주고 오면 박 협회장님 퇴근하시는 겁니다?”
박 협회장님은 어처구니를 상실한 눈빛으로 잠시 형을 바라보시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포기하셨다.
“……오냐, 그러마.”
“앗싸! 갑시다!”
당황하는 강다온을 이끌며 형이 집무실을 나서려 했다.
“형.”
“음?”
형이 문고리를 잡은 채 고개를 돌렸다.
“그 학생 집에 보호막 좀 설치해 주세요.”
원우 형의 속성을 불 속성이다. 거기다 형의 고유의 능력이 커다란 보호막을 형성하는 것. 말만 들었을 때는 그저 방어만 할 수 있는 수비적 능력으로 보일지라도 형은 기본적인 불 속성 자체가 강하기에 고유의 능력이 보호막인 것이 되레 속성을 만능으로 완성시켜 주었다.
사부의 결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시 임시방편으로서는 충분할 것이다.
“보호막이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자세한 건 제가 나중에 따로 설명을…….”
형은 강다온을 힐끔거리며 말을 잇는 나의 행동을 의식하자 더 이상 그에 관해 묻지 않았다.
“네, 뭐 알겠습니다.”
내 머리를 마구 헝클며 형이 말했다.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