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의 나비 28화

제4막 너와의 새로운 인연(10)

불의 나비 28화

by 매화연

시끌벅적했던 집무실은 형이 어버버 거리는 강다온과 함께 집무실을 나가자 잠시 고요가 흘렀다.


“하아, 이제야 좀 이야기할 수 있겠네.”


박 협회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아버지와 최 소장님을 보시며 소파로 고갯짓을 하시고 소파에 앉으셨다. 그러자 아버지와 최 소장님도 소파에 앉으셨다.


“도헌이도 앉거라.”


나는 속으로 짧게 숨을 내뱉고 소파에 앉았다.


“한번 말해봐.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될지 조금 막막했다. 빠르게 머릿속으로 그때의 상황을 정리한 후 사부의 결계부터 설명해 드렸다.


사부의 결계, 집 주위 사각지대에 매복 중이던 실군단, 멀리서 느껴졌던 인기척, 그리고 칠 년 전 사부의 서신까지.


“실군단과는 상관없지만 이건 한 협회장님이 칠 년 전 강다온에게 보내셨던 서신입니다.”


서류 받침대에서 두 종이를 꺼냈다. 피에 흠뻑 젖은 명단과 그나마 명단보다는 상태가 나은 사부의 편지를 책상에 놔두었다.


속성 대표님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 어떠한 것도 싣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내 말을 들으실 뿐. 어른이라는 커다란 반석과 비로소 반석의 단단함을 극대화시키는 하나의 직책 뒤에 철저히 숨긴 감정은 결코 겉으로 드러나는 법이 없었다.


허나, 책상 위 사부의 서체가 고스란히 각인된 빛바랜 종이를 잡는 박 협회장님의 손의 떨림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지금은 숨이 벅찬다거나 심장이 아플 정도로 빠르게 뛰지는 않고?”


최 소장님의 눈길과 목소리에 한없는 걱정이 섞여 들어갔다.


“네, 괜찮습니다.”


사락, 박 협회장님의 손에 있던 종이가 다시 책상 위에 내려앉았다.


“결계는 내가 나중에 강다온 집 찾아가서 다시 설치하마. 오늘 고생 많았다, 도헌아. 어서 들어가서 푹 쉬어.”


애써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리려 노력하시는 박 협회장님을 잠시 바라보다 나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집무실의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반석은 자그마한 균탁도 허락하지 않았다.


끼익, 집무실의 문은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소리가 새어나갈 정도의 미세한 틈이 허용되었다.


“……인호가 많이 걱정하던 아이였다.”


사부의 이름이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를 타고 떠돌았다.


“안다.”


“이때까지 그 아이가 협회에 등록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인호가 나를 계속 설득하면서까지 아이를 지켜주었으니까.”


“그래, 그랬지.”


“당최 이해가 안 되었다. 당사자에게는 알려지지도 않을, 당사자가 알려고도 하지 않을, 알아도 그냥 무시해 버리는 그런 진심에 왜 그렇게 정성을 쏟아부었는지. 지금이 이해가 안 가.”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원망 서린 박 협회장님의 음절 하나하나의 종착은 결국.


“강다온이 밉다. 인호를 철저히 무시하고 싫어하는 그 아이가 미워 죽을 것 같아. 그런데…….”


강다온이 아니라,


“그 어린아이를 미워하는 내가 더 역겨워…….”


박 협회장님 본인이었다.


뜨거운 무언가가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힘없이 턱 끝에 걸치는 그 물줄기가 세계의 순리를 따라 제 운명을 받아들이고 결말의 바닥까지 닿기 전에 닦아버렸다.


결국 터져 나와 버리는 서러움과 그리움이 뒤섞여 속을 기어이 뒤집고는 울렁거리게 하였다.


억누르고 참고 삼켜도 간혹 튀어나오는 서러움으로 이루어진 눈물은 그 어떤 것도 씻겨내지 못한다. 그저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의 바다를 더욱 깊게 만들고 파도의 파동을 더욱 세차게 만들 뿐.


진짜…… 나 너무 싫다.



본부로 복귀하면 하계 훈련 계획서부터 결재하고, 오늘 나온 불법 속성 사용자 조사서 확인하고, 박 협회장님에게 올릴 불법 속성 사용자 보고서랑 실군단 관련 보고서 쓰고…….


그런 뒤 또 남은 업무가-


“어, 나오셨네요.”


협회장 집무실의 정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앞에 서 있던 원우 형과 강다온이 눈에 들어왔다.


“가신 거 아니었어요?”


“가려고 했는데 다온 학생이 도련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해서 말입니다.”


강다온이? 나한테?


“자, 어서 하십쇼.”


형의 말에 강다온이 우물쭈물하며 부끄러운 건지 나와 눈을 맞추지도 못한 채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 그냥…… 형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못 해서…….”


특경부 일을 하다 보면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선의와 대의를 위해 특경부의 대원으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법 속성 사용자를 처리하는 것도, 협회 내에서의 다툼과 문제들을 협회 경찰보다 빠르게 해결하는 것도, 실군단에게 맞서는 것도, 협회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로지 사부를 위해.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고 사부만을 위해 움직일 수 있도록.


그렇기에 난 저런 말 들을 자격 없다. 듣고 싶어서 시작한 일도 아니고.


“고마우면 열심히 살아라.”


고맙다는 말을 들었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 슬며시 옅게나마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가 혹여 나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되었다.


“도헌 도련님, 저녁 아직 안 드셨죠?”


저녁…… 귀찮아서 그냥 안 먹으려고 했는데.


“전 괜찮은데 강다온이…….”


“다온 학생은 제가 방금 먹였습니다.”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안 보이는군.


“밥 거르시면 안 됩니다. 특경부 업무 때문에 쉬지도 않고 맨날 뛰어다니시면서 밥을 안 드시면 어떡합니까? 그렇다고 잠을 푹 주무시는 것도 아니고. 진짜 그렇다 쓰러집니다.”


와다다 쏟아지는 형의 잔소리에 나는 슬쩍 형의 눈을 피했다.


“눈 피하지 말고!”


몇 번 헛기침을 하는 나를 보고 형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줄 알고 다온 학생 거 살 때 미리 도련님 것도 사두었습니다.”


형은 손에 들려 있는 종이가방을 내게 내밀었다.


“주먹밥입니다. 본부 가서 먹으면서 일하세요.”


“……알고 계셨어요?”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세 시부터 밖에 계셨다 들었는데 당연히 일은 밀렸겠고, 도련님 성격에 그냥 퇴근하면 그날은 해가 북쪽에서 뜨는 거죠. 철야를 해서라도 끝낼 분인데. 세상 멸망하는 겁니다~”


야근을 할 거라는 걸 진작 알아챈 형이 짧게 헛웃음을 짓는 나를 보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가 사드리는 거니 꼭 드셔야 됩니다. 도련님보다 돈이 없는 제가! 사드리는 겁니다. 안 드시면 울 겁니다.”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맞는 말이잖습니까?”


나는 종이가방을 넘겨받으며 잘 먹을게요, 라며 말을 꺼냈다.


“형 돈 많아요?”


순수 호기심만이 묻어 나는 목소리로 강다온이 물었다.


“없어.”


“없긴요. 우리 도헌 도련님 재벌이십니다. 부잣집 아드님. 쓰읍, 내가 알기로는 아마도…….”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형이 강다온의 귀에 무언갈 속삭이었다.


“……예……?”


그게 뭔진 몰라도 무척이나 놀라는 강다온의 반응은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제격이었다.


“애한테 뭘 알려주시는 겁니까.”


“그냥 이 대표님 자산을 말해드린 거뿐입니다.”


강다온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저렇게 놀랄 정도인가. 뭐…… 옛날부터 JI 그룹 대표의 아들이라는 출신과 돈을 보고 다가오는 사람들도 꽤 많았으니까.


순간 원우 형이 갑작스레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놀라며 고개를 형 쪽으로 돌리던 때였다.


“우셨습니까.”


그 말 한마디에 돌아가려던 고개가 우뚝 멈춰 섰다.


“……티 나요?”


“겉으로는 평소랑 똑같은데, 직감이랄까.”


“운 건 아니고 그냥, 조금…….”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는 내 머리 위로 곧이어 형의 손은 얹어졌다.


“언제든지 무너져도 됩니다. 그렇게 이 악물고 버티지 않으셔도 돼요. 저 시간 많습니다. 제 상사께서 워낙 고집이 세셔서 저한테 일을 안 맡기시거든요. 그러니 찾아오십쇼. 힘드실 때면.”


박 협회장님이 아무리 형이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일정을 조율하고 업무를 홀로 보신다 한들 안 바쁠 리가 없지 않나.


“해줄 수 있는 말이 이런 거뿐이라 죄송할 따름입니다.”


굳건하게 의연히 자세를 유지하던 고개가 조금씩 내려갔다. 형이 죄송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싶어도, 고개만이라도 내젓고 싶어도, 그 어떤 기관도 내 명을 듣지 않았다.


“부디 하루라도 마음 편히 잠에 드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런 날이, 오긴 할까요.


나는 겨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제 진짜 갑시다.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먼저 발길을 옮기는 형을 뒤따라 정신을 못 차리는 강다온을 데리고 달 조각상과 연계되어 있어 협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해 조각상으로 향했다.


얼마 걸어가지 않았다. 해 조각상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상태. 그저 우연히 협회 한 곳에서 엄숙한 자태를 뿜어내고 있는 경찰서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문득 시선을 이끈 경찰서 안에 어째서…… 김한아 양과 그녀의 동생들, 그리고 인화가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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