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의 나비 25화

제4막 너와의 새로운 인연(7)

불의 나비 25화

by 매화연

강다온의 숨이 점점 거칠어진다. 짧게, 여러 번 내뱉는 뜨거운 숨이 공기조차 가르지 못하였다.


“다온 학생, 괜찮아요?”


그제야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한 채 나를 힐끔힐끔 보던 누나가 강다온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자세를 낮추고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낯선 손이 자신의 이마에 살포시 얹어지자 언짢은 기색을 표하려 인상만 쓸 뿐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다.


“열이…….”


“최, 최소 여덟 시간…… 하아, 최대 삼 일…….”


어쩐지 이러한 자신의 생태가 익숙하기를 넘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강다온이 말을 내뱉었다.


“하아…… 젠장…….”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나는 자세를 낮춘 뒤 힘겹게 숨을 내쉬는 강다온을 가만히 바라보며 일을 열었다.


“……속성 제어 때문에?”


“아마도.”


팔찌를 착용하지 않으면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속성을 제어해야 한다. 실현 가능은 하다만 문제는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는 거지. 지금까지 버틴 게 대단할 정도다. 강다온이 지금 의식을 잃은 것도 아마 여태껏 계속해서 제힘만으로 속성을 제어해 왔어서겠지.


최소 여덟 시간, 최대 삼 일이라. 정확한 기간까지 알고 있는 거면 의식을 잃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닌 건가.


“누나는 본부로 복귀해.”


벌써 다섯 시다, 강다온의 말에 의하면 최소 새벽 한 시에 일어난다는 건데 그때까지 누나를 내리 잡아둘 이유도, 잡아두고 싶지도 않았다.


“너 혼자 있게?”


나는 손목에서 뺀 내 팔찌를 강다온의 손목에 차 주었다. 철컥, 강다온의 손목을 휘감은 팔찌 속 보석이 낯선 이를 거부하듯 파지직 스파크를 일으켰다. 보석은 잠잠해질 기세를 보이지 않은 채 붉은빛을 거칠게 뿜어냈다. 자신의 팔찌를 착용하는 것만큼의 효율을 발휘하지 못하겠지만 아예 착용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굳이 번거롭게 누나까지 있을 필요 없으니까.”


“그렇긴 한데…… 손은 어떡하려고.”


전혀 나아질 생각이 없이 욱신거리는 통증이 머무는 손이 조금씩 떨려 왔다. 아직 멎지 않은 핏속에는 붉은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쟤 깨어나면 협회 데려다주고 병원 갈게. 퇴근 시간 한참 넘어서 갈 거 같으니까 서진우한테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퇴근하라고 해줘. 훈련 계획서는 책상 위에 올려두고 가라 해주고.”


“알겠으니까 치료 꼭 받아.”


“……그때까지 엄마 병원에 계시면.”


“계실 거니까 치료받아.”


“알았어. 괜히 나 다쳤다고 엄마한테 말하지 말고.”


강다온을 조심히 안아들고 일어나 누나에게 말했다. 마지못해 발걸음을 돌리는 누나가 몇 걸음 안 가 다시금 뒤를 돌아보았다.


“……진짜 간다.”


“어. 가.”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누나의 뒷모습이 저 멀리 떨어져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서 있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얼마 움직이지 않아도 바로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아무리 나를 피하여 사각지대에 숨어 매복 중이다 한들 일개 잡것에 불과한 네놈들이 달 속성의 폭발까지 피할 수 있었을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주인을 닮아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가 하늘을 찌르는군.


타닥타닥, 아직도 타오르는 불씨가 소멸을 앞둔 실군단이 추하게 남긴 얼음 속성의 실을 태우고 있었다.


나한테서 실군단이 따라붙은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강다온이 목적이었을까.


전자라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허나 후자라면? 그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문제는 후자가 더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사각지대를 찾아 숨은 것을 보면 이 집이 익숙하다는 것이니.


나는 찝찝하게 남은 의문과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인기척을 애써 무시한 채 강다온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불 하나 켜지 않은 채 깜깜히 잠들어 있는 거실. 한구석에 놓여진 침대, 그 옆에 놓인 등받이도 없는 자그마한 나무 의자와 세 개의 칸을 소유한 서랍, 어지럽힌 싱크대, 화장실 하나, 간단한 가전제품들, 옷장 하나, 그리고 유일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여러 개의 책상 속 수많은 책들과 아담한 책상이 전부였다.


강다온을 침대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거실의 불을 켰다. 집조차 환한 불빛이 익숙지 않은 듯 몸서리를 치는 것 같았다.


옆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강다온의 이마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불덩이 같은 온도가 전혀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한계에 이르러 결국 쓰러지면 고열 상태로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을 있는 걸까.


……집에 수건이 어디 있지.


구석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서랍의 첫 번째 칸을 열어보니 단색의 수건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수건을 하나 꺼내 싱크대로 가 찬물을 적신 다음 의자로 돌아와 강다온의 앞머리를 넘기고 이마에 슬쩍 얹었다. 찬 온도에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박 협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은 통화 연결음 뒤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도헌아.”


“박 협회장님, 권온유 군과 김서아, 김채아 학생은 협회 인솔 완료했습니다.”


“그래, 안 그래도 지금 서아랑 채아 집무실에 있다.”


핸드폰 너머로 시끌벅적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지치지도 않는 건지.


“무슨 일 있느냐?”


박 협회장님의 물음에 나는 강다온이 쓰러져있는 현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하아…….”


깊게 터져 나온 박 협회장님의 한숨에 박 협회장님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계실 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일단 알겠다. 그 아이는 다음에 다시 협회 인솔하면 되니 이만 본부로 복귀하거라.”


안 된다. 사부의 결계에 틈이 생긴 상황에서 강다온을 홀로 두게 되면 또다시 실군단이 들이닥칠 수도 있다.


“열두 시까지만이라도 기다려보겠습니다.”


그전까지도 깨어나지 못한다면 내 집에 데리고 가서라도 이 아이를 지켜야 된다.


“……또 다른 일이 있었나 보군.”


그 말씀에 차마 아니요, 라고 답하지 못했다. 길어질 이야기를 시작하려 입을 열려던 순간 다시금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머지는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꾸나. 본부로 복귀하면 잠시 협회 좀 들였다 가거라.”


“알겠습니다.”


“어야, 조금만 더 고생해 줘.”


“네.”


나는 통화를 끊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는 이 아이가 깨어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오른손이 이 모양이라 뭘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얘를 혼자 두고 밖에 나가 인기척의 주인을 찾을 수도 없고. 무의미한 시간 낭비…… 짜증 나는군.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든지 편히 협회를 방문하여 한 협회장을 찾을 것.’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조용한 곳에 홀로 앉아 있자니 순식간에 증식한 사부의 생각에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힘겹게 한 번 숨을 깊게 내쉬었다. 당연히 아무 소용도 없었지만.



부스럭.


이불이 움직이는 소리에 나는 주위를 떠다니던 불의 나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고개를 돌리자 드디어 눈을 뜬 강다온이 환한 불빛에 눈이 부신 건지, 어딘가 아픈 건지, 인상을 쓰고 있었다.


강다온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사르륵 내려오는 젖은 수건에 강다온이 의아해하며 이마에서 수건을 떼었다.


“일어났냐.”


내 목소리에 강다온의 몸이 흠칫 떨렸다.


“……뭐야.”


“뭐야는 반말이고.”


놀라 크게 뜬 두 눈동자는 더 이상 붉은색이 아니었다. 지금은 내 눈이 붉게 빛나고 있겠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그냥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건데, 너 때문에 지금 다섯 시간을 버렸어. 아무것도 못하고.”


“다섯 시간……?”


강다온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하였다. 열 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침에 강다온의 미간이 황당을 담아 더욱 찌푸려졌다.


“시간만 단축된 게 아닐 건데.”


다시금 내게로 시선을 돌린 그가 내 말에 두 손가락을 정확히 경동맥에 가져대 대어 익숙하게 맥박을 짚었다.


“머리 안 아프지? 심장도 정상적으로 뛰고, 오랜만에 푹 잔 듯이 개운하고.”


알고 있다는 듯 확신하며 말했지만 사실 그냥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강다온의 얼굴을 보아하니, 맞는 모양이네.


“팔찌 덕분이야.”


아마도.


“내 팔찌여서 완전한 효과는 발휘하진 못하지만 속성을 제어해주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강다온의 시선이 자신의 오른쪽 손목에 차 있는 팔찌로 향하였다. 다른 이의 속성을 담아낸 보석이 그 속성을 거부하듯 여느 때와 달리 더욱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열은-”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 살포시 손을 얹히자 강다온은 곧바로 내 손을 탁 쳐내었다.


……다행히 내렸군.


대체 뭐가 그리 한스러울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어린아이의 눈동자가 이리 깊은 슬픔을 담고 있는 걸까.


“팔찌는 빼지 마. 또 쓰러져.”


억지로 팔찌를 빼려는 그의 왼손 손목을 잡고 위로 올렸다. 어차피 빼는 방법도 모르면서.


“당신이 신경 쓸 거 없잖아.”


또다시 손을 뿌리치며 강다온이 말했다.


“……요.”


허, 그래도 고맙긴 한가 보지?


나에게 여전히 까칠한 태도를 보이는 강다온의 말을 듣자마자 내 주위를 맴돌던 불의 나비가 강다온을 야단치는 듯 그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스치고 지나갔다.


“뭐, 뭐야?”


강다온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크는 날갯짓에 손을 휘휘 내저으며 불의 나비를 쫓아내려 했다.


“그러면 더 할 텐데.”


내 말을 완벽히 증명하겠다는 듯 곧바로 더욱 화가 난 불의 나비가 아예 강다온의 머리에 눌러앉아 파닥파닥 날개를 움직였다.


“아, 알았어! 미안해!”


나는 가볍게 웃어 보이며 불의 나비를 없앴다. 입이 삐죽 튀어나온 채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하는 강다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는 이야기해 줄 마음이 생겼어?”


멈칫, 그의 몸이 움직이기를 거부하였다.


“내 이야기를 왜 들으려 하는 건데요.”


“그냥, 내 고집.”


네가 사부와 관련이 있으니까. 어쩌면…… 사부를 찾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정보일 수도 있고.


“알아서 좋을 게 없을 텐데.”


“아니, 꼭 알아야 돼.”


단호한 나의 대답에 결국 강다온이 과거의 목소리를 꺼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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