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막 너와의 새로운 인연(5)
불의 나비 23화
그 말에 김한아 학생의 귀에 스며들자마자 그녀의 눈가에 차오르던 눈물이 고일 틈도 없이 곧바로 툭 떨어졌다. 공허하던 표정은 금세 그간의 고난들이 물들어 어린 나이에 짊어져야 했던 책임감에서 비롯된 응어리진 슬픔으로 이어졌고 삐죽 튀어나온 입과 붉어져 가는 눈시울이 그녀의 서러움을 대변해 주었다.
나는 자세를 낮춘 뒤 소매로 그녀의 눈가를 조심스레 닦았다. 코를 훌쩍이며 김한아 학생이 목소리를 꺼냈다.
“저 진짜 많이 힘들었어요. 엄청 엄청 서러웠고, 힘들었는데 아무도 몰라주고, 힘들다 말도 못 하고…….”
누가 알까. 장하기만 한 첫째로 보여지는 김한아라는 사람도 그저 어리기만 할 뿐인 아이라는 걸.
자식은 부모의 아픈 손가락이라 했던가.
열 손가락 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을 테지만 덜 아픈 손가락은 분명 있을 테다. 또 유독 아픈 손가락이 있을 테고.
사람은 유독 아픈 손가락의 존재로 인해 덜 아픈 손가락을 아예 안 아프게 만들고 싶어 한다. 덜 아픈 손가락은 절대 설움을 겉으로 티 내지 않는다. 모두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평소보다 비가 많이 와서, 아니면 평소보다 화창해서, 평소보다 바람이 서늘해서, 평소보다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그래서 문득 서글퍼져 그간의 상처들이 곪아 터져 버리겠지. 지금 내 앞에서 한없이 여려져 무너진 이 아이처럼.
너무 의젓해서, 너무 든든해서, 혼자서도 잘하니까.
부모라는 버팀목이 필요할 자식이 부모의 버팀목이 되어주니까.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유야. 그게 어떻게 아이에게 관심을 끊는 이유가 될 수 있냐고.
“어른들이 미안합니다.”
걱정해 달라는 게 아닐 것이다. 그냥 자그마한 관심이라도, 조금의 눈길이라도 원한 게 아니었을까. 안 아픈 게 아니라 덜 아픈 거뿐일 텐데. 본인도 아플 텐데.
열할의 사랑 중 일할, 아니 그 일할의 반이라도 주기를 바라는 것. 겨우 그것만을 바랐던 것 아니었을까.
“잘했습니다. 잘 버텼어요. 동생들을 간호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던 과거는 찰나로 남겨두고 이제는 김한아 학생의 삶을 사세요.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 원 없이 하고요. 그래도 괜찮으니까.”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신 뒤 눈물을 슥 닦으며 김한아 학생이 목을 가다듬었다.
“……운 거 티 나요?”
빨개진 눈시울과 작은 훌쩍임, 살짝 잠겨있는 목소리.
“네, 엄청.”
누가 봐도 알겠는데.
“아잇, 몰라. 그냥 알아보라지.”
한참을 망설이던 김한아 학생이 홧김에 도어락 비밀번호를 쳤다. 삐리릭, 짧은소리와 함께 문고리를 움켜잡고는 그녀가 슬쩍 나를 일별하였다.
“감사해요.”
살포시 지은 그녀의 웃음에 나도 옅게나마 미소 지어봤다.
그렇게 조금의 사랑을 줘도 금방 일어날 아이에게 대체 어른들은 뭘 더 바란 걸까. 무언갈 더 바라지 않아도 이렇게나 장하고 기특한데.
“별말씀을.”
벌컥, 문이 열리자 곧바로 김한아 학생의 몸이 급격히 굳었다.
“와, 왔어요……?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더듬거리는 선아 누나의 목소리에 나는 몸을 살짝 기울여 집안에 시선을 두었다.
“큰 언니, 이거 봐봐! 예쁜 언니 더 예뻐졌어!”
“내가 묶었다? 잘했지!”
어물쩍하게 묶은 머리와 사방에 꽂힌 어린애들이 사용할 뻔한 화려한 핀에 단장된 누나가 온갖 장난감으로 어지럽혀져 있는 거실 바닥에 앉아 체념한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이 난 아이들은 헤실거리며 김서아 학생은 누나의 다리에 앉아 있고, 김채아 학생은 누나의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이도헌…….”
……내가 미안, 누나.
김한아 학생에게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살기가 담긴 아우라에 나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김서아, 김채아!!”
“가만히 있어 봐.”
나는 누나의 머리카락을 극심하게 엉키게 한 채 아직도 묶여 있는 머리끈을 최대한 조심스레 풀었다.
“세게도 묶었네. 대체 뭘 했길래 애들이 그렇게 신이 난 거야?”
“몰라, 집에 들어간 순간부터 신나 있던데.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겠어. 이제라도 실컷 활기차게 놀아야지.”
머리끈을 다 풀자 누나가 엉킨 머리카락을 손으로 대충 빗었다.
“나름…… 재밌었어…….”
누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해?”
“그냥 뭐, 동생들이나 고등학교 관련해서. 아직도 화연고 내신 따기 힘들다더라.”
“여전하구나.”
나직한 웃음소리가 섞인 누나의 목소리가 의도치 않은 쓸쓸함을 담았다. 그 쓸쓸함이 담고 있는 것은 지난 고등학교에서의 추억이 아니었다.
……벌써, 십 년이나 지났나.
“한아 학생은 왜 울렸어?”
나에게 시선을 옮기고 누나가 곧장 말을 덧붙였다. 나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울려?”
“맞잖아. 너 때문에 운 거 아니야?”
따지고 보면 나 때문에 운 게 맞긴 하지만…… 뭔가 말이 좀 이상한데.
“잊어버린 것 같아서, 우는 법을. 울 줄도 알아야지.”
내 말에 누나가 어처구니를 잃은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야, 잘 아네? 난 또, 우리 동생이 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줄 알았거든.”
“힘들면 울어야지, 힘들면.”
그러자 누나는 답답함을 실은 한숨을 깊게 푹 내리 쉬었다.
무뎌진 감정은 오로지 복수심만을 남긴 채 점차 사라져 갔다. 더 이상은 슬픔을 참는 게 아니었다. 정말 힘들지 않았고 정말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괜찮다.
아, 그러고 보니 누나한테 물어볼 게 있었는데.
“누나.”
“왜.”
나는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닫기를 몇 번 반복하였다. 쉽게 나오지 않는 말에 선아 누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데. 할 말 있으면 빨리해.”
“……고…….”
“뭐?”
이걸 물어보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근데, 물어볼 사람이 없잖아. 서진우랑 박인혁한테는 죽어도 물어보기 싫고, 그렇다고 어떻게 하는지 아는 것도 아니고.
“……하려면 어떻게…….”
“뭐라는 거야. 더 크게 말해.”
“……고백을 하려면…… 어떻게…….”
순간 뜨거워지는 얼굴을 옆으로 살짝 돌리며 난생처음 입에 담는 말을 내뱉었다.
“……웃지 마.”
놀람도 잠시, 슬며시 올라가는 누나의 입꼬리에 얼굴이 더 화끈 달아올랐다.
“우리 도헌이, 인화가 그렇게 예뻐 보였어? 응? 내 동생 사랑도 할 줄 알고, 다 컸네, 다 컸어!”
그래…… 선아 누나가 눈치 못 채는 게 더 이상한 거지. 사랑 이야기라면 환장하고 이상하게 그쪽 부류에서만 대단할 정도로 눈치가 빠른 인간인데.
“그래서, 고백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순식간에 진지해진 누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네가 원하는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고백에 답은 없어. 그냥 네 진심을 잘 전하면 그게 고백인 거지, 뭐.”
감정에는 답이 없기에 어렵다. 정확한 공식을 대입하여 명확히 정해져 있는 답을 구하는 수학 문제가 아니었다. 그날의 날씨도 변수가 될 수 있는 여린 감정은 너무도 예외가 많았다.
“인화가 안 받아줄까 봐 걱정인 거야?”
문득 인화의 미소가 생각났다.
“한 번 말하면 그전의 관계로도 못 돌아가니까.”
그 미소는 다신 내게로 오지 못할 테지.
나의 진심이 인화의 부담을 산 것이라면, 닿지도 못하고 그대로 진심은 다시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럼 인화는 미안해하겠지. 나도 전과 같이 인화를 대할 수 없을 거다.
“이 바보야.”
누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다시금 입을 열었다.
“왜 그거 가지고 걱정하면서 끙끙대고 있어. 아니. 지금 당사자들 빼고 다 아는 엄청 웃긴 상황-”
툭. 누나의 어깨를 살짝 치자 누나가 곧바로 말을 멈추었다.
“응?”
……누구지.
“아, 아니. 도착했다고.”
내가 바로 못 알아챘을 리 없다. 그렇다면 따라붙은 지 얼마 안 됐다는 건데.
“아, 여기야?”
실군단의 조력자인 그 여자아이는 아니고, 우두머리도 아닐 것이다. 살기를 조금도 담고 있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인기척을 풀풀 풍기고 있으니. 마치 자기를 찾아달라는 듯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이도헌?”
하지만, 찾기엔 너무 멀어. 설마, 저번에 여자아이를 만났을 때 멀리 은신해 있던 그 자인가?
“이도헌.”
찾아야 한다. 찾아야 하는데 아직 박 협회장님이 맡기신 업무도 다-
“도헌아!”
내 어깨를 덥석 잡은 누나의 목소리가 이제야 나에게 닿았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눈앞에는 자그마한 단독주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이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내 시선은 인기척이 느껴지는 어딘가를 놓지 않았다.
“……아무것도.”
나는 겨우 시선을 거두며 강다온 군의 집 초인종을 꾹 누르려는 그 순간이었다.
파직 - !
……이건.
“뭐야, 왜 그래?”
나는 파들파들 떨리는 손끝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불에 타듯 화끈거리는 극심한 통증과 함께 강렬한 붉은빛이 주위를 맴돌며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불 속성 결계이다.
그리고, 이걸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한 단 한 명뿐.
지난 몇 년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결계는 최초의 힘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초인적인 불 속성.
“누나, 혹시 지금 손수건 있어?”
팔찌를 빼며 누나에게 물었다.
“있어. 줄까?”
“버려야 될 수도 있는데 괜찮아?”
“상관없어. 아빠가 주신 거긴 한데 하나 더 달라고 하면 되니까.”
누나가 건네는 새하얀 손수건의 오른쪽 귀퉁이에 JI 그룹 로고의 자수가 선명히 수놓아져 있었다. 회사 내에서도 함부로 사용하여 디자인할 수 없는 손수건에 박힌 각별한 패턴이 도드라졌다. 아버지가 직접 디자인하신 손수건이었다.
“……무리하지 마.”
결계의 존재도, 내가 지금 무얼 하려는 건지도 알아챈 누나가 걱정 서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사부, 제 일을 방해하시면 어떡합니까. 죄송하지만 저는 이 학생, 꼭 데려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