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막 너와의 새로운 인연(1)
불의 나비 19화
좋아하는 마음은 그 감정을 자각하고 난 뒤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무더운 여름의 향기를 실은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고 있는 어느 날의 이른 오후였다.
“아, 배 터질 것 같아.”
점심시간, 사회에서 진우와 인혁과 밥을 먹고 다시 본부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본부 가면 하계 훈련 계획서 빨리 마무리해야겠네…….”
일 생각에 힘이 쭉 빠진 진우가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그거 아직도 다 안 끝냈어?”
그 말에 멈칫한 건 진우뿐만이 아니었다.
“……와, 망했다. 서진우 발작 버튼 눌-”
“아직? 아지이이익?”
인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우가 입을 열었다. 늦었네, 박인혁.
“지금 엄청 빠른데?”
“어, 그래…… 미안하다 내가.”
“그 누구보다 빨리 쓰고 있는데?”
“잘못했어.”
“네가 써 볼래? 네가 훈련 담당할래?”
“죄송합니다.”
얼굴을 바짝 가까이 갖다 대고 인혁의 양어깨를 꽉 잡으며 진우가 말을 쏟아붓는 도중 문득 인화가 한 말이 생각났다.
‘으으, 당 충전이 필요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연거푸 마시며 업무를 볼 때 무심코 내뱉었던 말이었다.
“안 되겠다. 이도헌 리더님? 저 특경부 때려치울-”
“편의점 좀 들렀다 가자.”
딱히 인화한테 당을 보충할 수 있는 간식을 사주려고 편의점에 가자는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었다.
아니 뭐, 그냥 우연히 앞에 있는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고, 때마침 갑자기 인화의 말이 생각났고, 다른 대원들도 일에 지친 것 같으니까 당분을 섭취하면 업무 집중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내가 생각해도 너무 변명 같군.
“……나 지금 씹힌 거?”
“아하하학하학!! 어딜 도망가려고. 한 번 선택한 특경부? 죽기 전까지는 절대 못 도망가지.”
나한테 뭐라 했나? 특경부를 때려치우니 뭐라니 한 것 같긴 한데, 신경 안 써도 딱히 상관없겠지.
“그나저나 편의점에서 뭐 사려고?”
“초코우유나 초콜릿. 당 보충할 수 있는 단 거.”
진우와 인혁의 시선에 깊은 의아함이 담기었다.
“웬 초코우유에다 당 보충? 너 단 거 안 좋아하잖아.”
“아, 인화 주려고.”
무심결에 나온 말에 가장 놀란 건 두 사람이 아니라 나였다. 뇌를 거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온 말에 나는 잠시 멈칫하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빨리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나를 쫓아 뒤늦게 편의점으로 온 진우와 인혁이 겨우 웃음을 참으며 내 옆으로 왔다.
“크읍……, 야 이거 내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냐?”
“이 자식, 너 이도헌 아니지? 너 누구야. 엉?”
나를 놀리는 웃음 섞인 말들을 한 귀로 흘리고 여러 종류의 초콜릿들이 나열된 진열대로 갔다.
많이 둘러보지 않은 채 특색 없이 그저 평범한 초콜릿 바를 덥석 집고는 음료가 진열되어 있는 쪽으로 가려는데 문득 들어온 한 초콜릿에 우뚝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리본까지 묶여서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초콜릿 세트였다.
편의점 초콜릿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기왕이면 아무래도…… 예쁘게 포장된 게 더 나으려나. 아니, 너무 부담되려나. 허, 어렵군. 누구한테 초콜릿을 줘본 적이 있어야지. 선아 누나한테 전화해서 뭐가 나은지 물어볼까?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는 거면 아무래도 예쁜 게 낫지.”
초콜릿 앞에서 곰곰이 고민을 하는 내 옆으로 슬쩍 와 진우가 나를 놀리듯 히죽 웃으며 속삭였다. 하아…… 내 입이 방정이지.
나는 들고 있던 초콜릿 바를 다시 진열대에 놔두고 포장되어 있는 초콜릿 세트를 거칠게 덥석 집고는 음료 진열대로 갔다.
“야, 박인혁. 초코우유 뭐가 맛있어?”
“저거.”
옆에 있던 인혁이 가리키는 초코우유를 꺼내 인혁에게 주었다. 어리둥절하는 인혁의 품에 쌓이는 차곡차곡 초코우유가 어느새 여덟 개가 되었다.
“하?”
“가자.”
초코우유를 한아름 가득 안고 있는 인혁과 함께 계산대로 갔다. 계산을 하고 봉투에 초코우유와 초콜릿을 넣어 편의점을 나설 때까지 둘의 입은 한시도 쉬지 않았다.
“이거나 먹어.”
옆에서 계속 쫑알거리는 두 사람에게 나는 초코우유를 하나씩 던졌다.
입을 막으려 던졌던 초코우유가 어째 저들의 입이 더욱 활발히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 거지. 지치지도 않는지 진우와 인혁은 멈출 생각도 없이 계속해서 나를 놀렸다.
“거봐, 내가 말했잖아. 무조건이라니까.”
“야 이도헌, 솔직하게 말해봐. 박인화 좋아하는 거 맞지? 어?”
나는 천천히 옮겨지는 걸음을 계속 지속한 채 인혁을 일별하였다.
인화를 좋아한다는 건 사실이지만, 인화의 친오빠인 인혁의 앞에서 사실을 밝히는 건 아무래도 좀 꺼렸다. 친구가 자신의 여동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오빠가 세상에 있기는 할-
“너 설마, 내 눈치 보는 거냐?”
인혁은 자신을 몇 번이고 힐끔거리는 내 얼굴을 보더니 연신 웃어 보이고는 이어 말했다.
“신경 안 써, 인마. 내가 너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뭐가 걱정이냐.”
……여기 있었군. 허, 저번에 술 마시러 가기 전에 본부에서는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만.
나는 내 어깨에 팔을 감으며 진짜 전혀 신경 안 쓰고 있다는 듯, 오히려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웃는 인혁을 빤히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고 결국 자포자기하며 말했다.
“그래, 나 인화 좋아해.”
얼굴이 점차 뜨거워졌다. 나는 인혁의 팔을 뿌리치고 두 사람을 내버려 두며 빠르게 본부로 향했다. 뒤에서 진우와 인혁의 웃음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빨개진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서둘러 본부로 갔다.
본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편의점에서 사 온 초코우유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초코우유?”
책상에 가지런히 정리된 초코우유들을 본 선아 누나가 입을 열었다.
“네가 산 거야? 단 거 싫다고 내가 주는 사탕은 안 먹는 애가?”
누나의 의아함이 담긴 삐진 듯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나를 찔러댔다. 저번 일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누나가 아무리 삐져도 난 그 사탕, 절대 못 먹는다.
누나가 산 두 개의 사탕 중 남은 그 하나를 내가 어떻게 먹을 수 있겠어.
“내가 먹으려고 사 온 거 아니야. 서진우랑 박인혁이 먹고 싶다고 징징대길래 그냥 대원들 것도 다 사 왔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인화한테 당 보충할 수 있는 간식 주고 싶은데 인화만 주면 내가 인화 좋아하는 거 바로 들킬 게 뻔하니까 대원들 것도 다 사 왔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나.
그러니까 그렇게 어이없다는 듯 노려보지도 말고 제발 그냥 조용히 입 좀 다물고 있어라.
연희와 이준 형이 초코우유를 가져가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누군가를 본부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