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의 나비 17화

제3막 후천적 속성(10)

불의 나비 17화

by 매화연

“본부까지 혼자 갈 수 있겠어?”


내 말에 인혁이 어리둥절하며 답했다.


“어, 뭐. 갈 수는 있는데, 왜?”


“그럼 먼저 가.”


인혁은 나에게 이유를 물으려는 듯 잠시 머뭇거렸지만 끝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 본부 가면 박인화한테 잔소리 들을 텐데…….”라며 중얼거리고는 먼저 본부로 돌아갔다.


인혁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인혁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았다. 그의 모습이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상황은 완벽히 정리를 끝마쳤고 딱히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우두머리도 제 잡것들과 함께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고. 다만, 딱 한 가지. 협회로 와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쭉 신경 쓰이던 것이 있었다.


“그래서, 넌 누구지?”


덥석, 한 여자아이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계속해서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던 그녀가 고개를 황급히 돌리자 그녀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살랑 흔들렸다. 사람의 체온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얼음처럼 차가운 온도가 그대로 전해졌다. 순간 한기가 느껴지며 주위의 기온도 급격히 낮아졌다.


서늘해진 기온에 신경 쓸 틈도 없이 속성을 사용 중인 듯한 그녀의 하늘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 눈, 누군가와 닮은 것 같은데…….


“앗, 들켰다.”


여자아이가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우두머리와 맞부딪쳤을 때도, 부모님과 박 협회장님이 오셨을 때도, 인혁이 지독한 밤하늘을 눈에 담고 있을 때도, 조금의 쉼도 없이 내리 약하게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람의 인기척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인기척이었다.


분명 처음 보는 그녀에게서 어째선지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 명 더. 그저 평범한 기척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는 한 사람이 나와 이 여자아이를 주시하고 있다. 그 조력자를 찾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군.


여자아이는 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손목을 꽉 잡고 곰곰이 생각했다.


키가 작은 여자아이, 하늘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그리고 차가운 한기.


……실군단의 조력자?


“아하하, 망했네. 마스터한테 혼나겠다아…….”


제 주인과 일개의 잡것만이 아니라 엽견도 있었군.


나는 힘을 주어 더욱 세게 손목을 잡았다. 필사적으로 내 눈을 피하던 여자아이가 갑작스레 나를 똑바로 마주하더니 이어 싱긋 웃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녀는 시선을 하늘 위 머나먼 허공으로 옮기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계속 보고만 있을 거야? 나 이제 곧 있으면 이 사람한테 잡혀갈지도 모른다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짙은 안개가 쏴아아, 깔리며 순식간에 내 시야가 차단했다.


세상을 뿌옇게 만든 안개가 점차 걷힐 때쯤에는 여자아이가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아무런 느낌도, 어떠한 소리도 없이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내 손에 약간의 한기만을 남긴 채 그녀는 사라져 있었다.


늦었다. 빨리 제압했어야 했는…….


……아니, 아마 못했을 것이다.


여자아이뿐만 아니라 주위에 다른 조력자도 있었다. 만약 내가 그녀를 제압했다면 분명 숨어 있던 그 조력자가 나타났을 것이고 다른 대원들 없이 나 혼자 그들의 전투 실력도, 강함의 정도도 모르는 둘을 상대하는 건 너무나도 큰 도박이니, 순간의 내 선택이 옳았다고 그냥 믿는 수밖에.


나는 아직도 차가운 오른손을 보았다.


여자아이는 기척 하나 없이 안개와 함께 사라졌다. 분명 확실하게 손목을 잡고 있었으나 손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고.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하아.”


지금 아무리 생각해 봤자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나는 머리를 뒤로 한번 쓸어 넘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깨진 바위 조각이 흩뿌려진 바로 위에 노란색의 창 하나만이 떠다니고 있을 뿐.


자그마한 빛을 품은 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본부의 푸른 창과 몹시 닮은 그 노란색 창은 피 칠갑인 인화의 모습이 선명히 담겨 있었다. 인화가 무사하다는 걸 알고 봐도 깜빡 속을 정도인데 당시 인혁의 시선에는 이 모습이 사실로 보일 수밖에 없었겠지. 뒷일도 생각 안 하고 제어되지 않은 속성을 무작정 사용할 만했군.


우두머리가 인화의 존재까지 안다고…….


나는 노란 창 위에 손을 댄 뒤 창에 불 속성을 주입하였다. 츠즈즈즈! 가시처럼 뻗어 나가는 불 속성이 창을 완전히 휘감았고 끝내 창은 산산이 깨져버렸다.



쾅 - !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지는 노란 창의 조각들이 타오르는 불씨에 못 이겨 끝내 불 속성에 집어삼켜졌고 잿개비조차 남기지 못하였다. 더는 협회에 정말 실군단의 흔적이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한 뒤 다시 본부로 돌아갔다.



“내가 CCTV 확인 안 했으면 어쨌으려고? 진짜 위험했잖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다다다 쏟아부어지는 인화의 잔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대체 왜 무리해서 제어되지도 않는 속성을 사용한 건데? 이유나 들어보자.”


“……우두머리가 자존심을 긁어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겨우 자존심 긁혔다고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속성을 써?!”


인화한테는 그 창에 대해 굳이 이야기하지 않을 생각인 건가.


“아이고, 오셨습니까? 연락이 안 돼서 사람 애간장을 태우다 못해 그냥 친히 자기 손으로 부숴버리신 우리 리더 님.”


인상을 쓰고는 꾸중을 늘어놓던 인화의 시선이 나를 발견한 진우의 말소리를 듣고 본부로 돌아온 내게로 옮겨졌다.


“무전기 연결이 안 됐던 걸 내가 뭐 어떻게 해.”


“누가 뭐라나요? 잘하셨습니다. 아주 그냥 속성 대표님들 오시니까 CCTV고 무전기고 잘만 되던데 사람 걱정되게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무전도 안 하고. 항상 자기 입으로 말하는 법이 없어요. 꼭 다른 사람한테 들어야지 알지.”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진우의 말속 ‘CCTV’라는 단어에 나는 본부팀의 책상으로 가던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CCTV도 안 됐어?”


그러자 잠시 진우의 미간이 구겨지더니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푹 쉬었다.


“어. 무전기도 연결이 안 되고, CCTV 화면도 지직거리고.”


“언제?”


나는 벨트 뒤에 있던 무전기를 꺼내며 본부팀의 책상으로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박인화 나가고 나서. 그러니까, 너 협회로 가고 한 이십 분 지났을 때쯤. 박인화 다시 본부로 왔을 때는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갔고.”


……딱 우두머리와 대치했을 때군.


무전기의 버튼을 꾹 누르자 본부 책상에서 삐릭, 짧은소리가 이어지며 수월히 연결되었다.


“아아.”


무전기에 입을 가까이 대고 말을 함과 동시에 본부 책상을 통하여 본부 전체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전기 전원 버튼을 끄고 다시 벨트 뒤에 넣은 다음 곧바로 CCTV를 확인하려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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