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의 목소리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혁에게 시선을 줄 틈도 없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실군단의 검을 피하기 급급했다.
슈욱! 아슬아슬하게 피한 검이 눈 바로 밑을 스쳐 지나갔다. 핏, 살이 베이는 느낌이 적나라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이미 손을 불의 나비를 소환하여 저 멀리 있는 실군단들에게로 보내고 있었다.
매정하게 밤하늘을 가르는 불의 나비가 떠나간 자리에 붉은빛을 수놓으며 실군단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 그들을 쫓았다. 오로지 단 하나의 불의 나비가 실군단을 관통하며 비행하였다.
“와, 아직도 실군단이 남아 있어? 이젠 지긋지긋하다.”
열 정도인가. 매복해 있던 건 아닌 것 같고, 우두머리가 새로 만들고 갔겠군.
실군단을 학살하는 불의 나비의 주위에 보랏빛이 맴돌았다. 옆을 보니 보라색으로 눈을 빛내는 인혁이 약하게나마 번개 속성을 사용하며 실군단을 하나둘 없애고 있었다.
“무리하지 마.”
“인마, 나 박인혁이야.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작 인혁의 호흡이 거칠었다. 나는 인혁이 속성을 사용하지 않도록 최대한 신속하게 실군단을 처치하였다. 그렇게 처리한 실군단의 수가 다섯이 되던 때에 인혁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더 있으려나?”
“저게 마지막.”
더 이상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불의 나비가 소멸시킨 저 실군단이 마지막……, 어? 다시 돌아온다고?
그럴 리가 없다. 분명 여태까지는 실군단 안에 들어가 자폭을 해 확실히 실군단을 없앴다. 이번에도 다를 바 없었고.
실군단과 함께 사라졌어야 될 불의 나비가 천천히 날개를 살랑거리며 내게로 다가와 내 주위를 맴돌았다. 어깨에 앉았다가 손을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고 머리 위까지 높이 날아올랐다 다시금 내려오기를 반복하였다.
또 이러네. 뭐, 이러는 것도 오랜만이군.
“무리한 거 아니야. 걱정 안 해도 돼.”
오래간만에 보는 불의 나비의 행동에 나는 오른손을 그에게로 뻗으며 넌지시 말하였다. 그러자 나를 다그치기라도 하는 듯 내 주위를 맴돌던 불의 나비가 내 오른손 검지 위에 살포시 앉았다.
“괜찮아? 속성으로 인해 다친 건데, 지금 바로 JI 병원 갈까?”
“됐어. 이 정도 가지고 뭘 병원까지 가.”
내 말에 손가락 위에 앉아 있던 불의 나비가 위로 날아오르며 내 코 위에 안착해 거칠게 날갯짓을 했다.
“풋, 푸하하하! 봐라, 불의 나비도 뭐라 하잖아.”
“허.”
네가 그렇게 해도 병원 안 갈 거거든.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불의 나비의 날갯짓이 더욱 거칠어졌다.
“알았어, 알았다고. 치료받을 테니까 어서 내려와.”
그제야 불의 나비가 코 위에서 내려와 도로 내 검지 위에 살포시 앉았다. 노량 날개를 팔랑이던 불의 나비는 곧이어 스스로 자취를 감추었다.
“원래 너랑 불의 나비가 그 정도로 유대감이 깊었나?”
“자주는 아니고 가끔 저래.”
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속성을 사용한 후 간간이 불의 나비가 내 주위를 맴돌곤 했다. 특히 깊게 우러나온 자책이 목을 조여올 때, 날 혼자 두지 않겠다는 듯이.
“그~나~저~나~”
글자 하나하나를 쭉 길게 늘어트리며 내 곁으로 점점 다가와 어깨에 팔을 감는 인혁의 장난기 머금은 미소에 불안을 실은 짜증이 엄습했다.
“뭘 그렇게 생각하시길래 천하의 이도헌 님께서 한눈을 파십니까? 응~? 혹시, 좋아하는 사람?”
“……시끄럽다.”
차마 나오지 못한 거짓은 그 어디에도 자리 잡고 있지 않았다. 부정조차 섞이지 않은 내 말에 조금 놀라는 기색이 보였던 인혁의 얼굴에는 곧이어 얄미운 웃음밖에 남지 않았다.
“부정을 안 하는 거 보니 진짠가 본데?”
나는 인혁을 조용히 노려보았다.
큰일이군. 인화 생각 때문에 일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는데. 근데…… 계속 생각나는 걸 어떡해.
“누군데? 냉혈한 부잣집 도련님 이도헌의 마음을 훔쳐 간 여자가 누군데!”
내 볼을 쿡쿡 찌르는 인혁의 손을 탁, 쳐냈다.
“아~ 아쉽게 됐네. 다른 대원들이 이 귀한 모습을 놓쳐서. 몇 번 못 보는 매우 진귀한 우리 리더님의 모습이었는데~ 진짜 나만 보기 너무 아깝다.”
아, 짜증 나.
내가 열받는 게 훤히 보이니 더 올라가는 저 입꼬리를 보니까 더 짜증 나.
“하아.”
평소와 같은 장난을 억지로 내보여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겠지. 깊게 숨을 내뱉는 인혁은 바닥에 풀썩 앉아 고개를 들어 무심히 어둡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고 온 거냐.”
“CCTV 둘러보다가.”
나는 인혁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짧은 정적이 이어지는 우리 사이에 밤공기가 부드럽게 지나갔다. 인혁은 어색한 정적을 떨치려는 듯 몇 번 웃어 보이며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한심하지? 속성 제어도 못하고, 실군단도 처치 못하고, 하다 하다 감정 하나 못 다뤄서 이성 잃고 무리해서 속성 사용하다 죽을 뻔한 데다 바쁘신 대표님들까지 부르고. 혼자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잖아.”
인혁은 억지로 웃음을 내보이며 장난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난 안다. 문장을 이루고 있는 단어 하나하나 속 많은 불안과 깊은 자책이 들어있다는 것을.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 떨리는 인혁의 오른손을 보았다. 속성 제어 훈련을 하면서 무리했는지 해 속성으로도 손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인혁의 몸에는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의 흔적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인혁 자신에게 새겨 있는 흔적 외에 세상이 이때까지 인혁의 노고를 알아주고 있다.
저 멀리 나무 밑에 깨져 있는 바위 조각들에 시선이 갔다. 대체 저 바위는 왜 깨져 있으며 인혁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추후에 들어봐야겠지만 아마 저 바위는 인혁이 속성 제어 훈련 때 사용하던 상처 가득한 바위일 테다.
수많은 흠집이 새겨진 바위와 점차 상처에 무뎌지는 인혁의 신체. 십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키가 커진 나무와 그와 함께 늘어나는 인혁의 실력.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든 곳에 그간의 수고들이 앉아 반짝이고 있었다.
속성을 제어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그 흔적을 직접 마주하니 괜스레 마음이 복잡해졌다.
“……답답해, 엄청. 될 것 같은데 안 되는 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그런 인혁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그의 옆을 지켜주는 것뿐이었다.
“조금…… 지쳤나 봐. 그냥 다 포기하고 싶네.”
깊어지는 밤하늘을 담던 인혁의 시선이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하였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옆에서 보는 인혁의 얼굴에는 어느샌가 억지로 짓던 웃음이 사라지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잘하고 있어.”
나는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인혁에게 말했다.
속성 보유자의 심장에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어떤 수를 써도 한 번 새겨진 속성은 절대 지울 수 없지. 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 아무리 기괴하고 괴물 같아도 결코 없앨 수 없었다. 끝까지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
진우나 인혁, 인화의 경우는 섭취한 속성 응축액이 몸속으로 들어가 수분을 완전히 분해하고 의연히 남아 있는 온전한 속성이 그들의 심장에 서서히 새겨진다. 심장에 새겨지는 그 과정에서 속성 응축액 섭취자의 속성임을 속성 자체가 부정하여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일시적 제어 불가능이었다.
말 그대로 ‘일시적’ 제어 불가능이기에 심장이 속성에 완전히 새겨지고 정착하게 되면 평범한 속성 보유자들처럼 자유자재로 속성을 다룰 수 있어야 되었다. 진우와 인화는 웬만해서는 제어가 불가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헌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혁은 심장에 속성이 이미 명확히 새겨져 있음에도 속성이 자신의 주인을 부정하고 있었다.
최 소장님이 말씀하시길 박 협회장님의 속성이 주인을 닮아 워낙 줏대가 세서 그렇다 하시긴 하였는데, 그것도 어디까지나 그저 최 소장님의 추측일 뿐이었다.
“넌 누구보다도 잘하고 있고, 그 노력의 성과는 계속 빛나고 있어. 단지 네가 조금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앞만 보고 달려서 잘 보지 못하는 것뿐이야.”
자신의 속성을, 속성 보유자인 자신을 받아들이기까지 그간 얼마나 고되었겠는가. 끊임없는 자기혐오와 멈추지 않는 비교가 스스로를 갉아먹었겠지.
“아무것도 없이 줄곧 모래만 펼쳐진 사막을 그냥 달리고만 있으면 어떡하냐. 오아시스를 발견하면 쉬기도 하고, 물속에 비친 네 모습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밤이 되면 별이 쏟아질 듯한 광막한 밤하늘도 올려다봐야지. 안 그러면 더는 못 나아가.”
그럼에도, 인혁은 잘해주었다. 포기하지 않고 이를 꽉 깨문 채 앞으로 나아갔다.
“난 네가 잘할 거라는 걸 알아. 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거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야. 그 어떤 어려움도 널 막겠어. 네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너 박인혁이라고,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고.”
밤바람이 나무를 쓸고 지나가는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누구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어. 네가 약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다 그래. 나도 그렇고. 근데, 너 이렇게 말해놓고 또 내일이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갈 거잖아. 다 내려놓고 싶은 순간에 한 번 참아보는 거, 그게 멋진 거라고. 그게 얼마나 힘든 건데. 쉽지 않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네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잊지 말고 제발 좀 명심하고 살아라.”
적막한 밤하늘 아래 내 목소리가 고요히 울렸다.
“여태까지 잘해왔잖아. 지금도 잘하고 있고. 이렇게나 열심히 달려왔는데 잘도 안 힘들겠다.”
나의 말에 동의하는 듯 별은 더욱 반짝였다.
“그러니까 좀 내려놔도 괜찮아, 인혁아.”
바람이 우리의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갔으며, 모든 소리가 잔잔히 가라앉았다.
“힘들 땐 언제든지 기대. 난 항상 네 옆에 있을 테니까.”
인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참고 있던 눈물이 점차 차오르다 결국 그의 뺨을 타고 저항 없이 흘러내렸다.
“아, 나 갑자기 왜 이러냐……, 하하…….”
인혁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멋쩍게 지어 보이는 웃음으로 넘기려 했으나 눈물은 그리 쉽게 멈추지 않았다.
속성이 제어되지 않는 기분, 그게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 나는지 잘 알지.
아버지의 달 속성은 내가, 엄마의 해 속성은 누나가 물려받았다. 가문 대대로 나에게까지 전해져 온 달 속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딱 거기까지. 그 이상은 한계였다.
위대한 달 속성을 물려받으면 뭐 하나, 사용하지를 못하는데.
내게 달 속성이 있다는 사실이 느껴지긴 했다. 가끔 불의 나비가 달 속성의 영향을 받은 채로 소환되어 내가 겨우 감당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으니까. 그러나 어떻게 해도 달 속성을 사용하지 못했다.
달 속성을 쓰고 싶어도 의지대로 되는 법이 없어 답답함을 느꼈고, 그 답답함의 끝은 언제나 나를 향한 자책으로 바뀌어 있었다. 왜 나는 달 속성을 사용할 수 없는지, 어째서 아버지처럼 될 수 없는지, 매번 나 자신을 탓하며 채찍을 마구 휘둘렀다. 그때에도 내 곁에는 사부가 계셨다. 멈출 수 없는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을 사부가 멈춰주셨다.
그래, 사부가…….
그분의 생각에 붉어지는 눈시울과 울컥 솟구치는 그리움을 겨우 삼켰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작은 훌쩍거림을 동반하여 인혁은 한참을 울었다. 인혁의 모든 슬픔이 이 눈물과 함께 전부 흘러가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 인혁의 어깨에 무심히 얹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