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의 나비 15화

제3막 후천적 속성(8)

불의 나비 15화

by 매화연

각혈. 속성 보유자들에게는 흔한 증상이다. 과도한 속성이 그가 새겨져 있는 심장에 큰 타격을 주면 곧바로 각혈을 한다. 일종의 경고인 거지.


속성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전혀 문제가 될 리 없으나 간혹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자신의 속성을 본인이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나 아직 속성이 미숙한 어린아이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나도 어릴 적에 툭하면 각혈을 했었지.


‘도헌아, 혹시 진우나 인혁이, 인화 주위에 푸른색이나 보라색이나 하늘색 아우라가 띄면 바로 엄마 불러야 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일 엄마가 오지 못하는 상황에는 진우는 서준 삼촌, 인혁은 제휘 삼촌, 인화는 유하 이모한테 연락해.’


핸드폰은 본부에 있으니 엄마나 박 협회장님에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무전으로 본부에 연락하여 본부를 거치는 것뿐.


‘발견하는 즉시 꼭 엄마 불러. 각혈이 시작되면 위험해. 아니, 다 괜찮을 거니까 침착하게 연락하면 돼. 우리 헌이, 할 수 있지?’


각혈은, 속성 보유자들에게는 흔한 증상이다. 그러니 무전기를 쥐는 손을 떨 필요도, 침착을 잃은 채 목소리를 꺼낼 필요도 없다. 항상 그랬듯 불안을 죽이고 이성을 내세우면 된다. 아버지처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도헌?”


……다름……없이…….


“뭐야, 왜 아무 말도 없어. 아아, 안 들려?”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부르는 진우의 목소리에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쏟아 올랐다.


“박인혁이…….”


“뭐? 박인혁? 걔가 왜?”


“다치고, 속성에 의한 상처인 데다 피도 많이 흘리고……, 시각화된 속성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떨리는 손이 금방이라도 무전기를 놓쳐버리는 것 같다. 인혁의 거친 숨결은 점차 미약해져 가고 그를 휘감은 보랏빛 아우라는 크기를 키워 나간다.


“도헌아, 괜찮아. 괜찮으니까 천천히 말해봐.”


괜찮다 다독이는 진우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온다. 무전기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다시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지지지직.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무전기에 그대로 스며들자 이내 본부와의 연결이 단숨에 끊겼다.


“서진우. 서진우!”


진우를 부르는 목소리에 점차 힘이 실렸다. 누군가 본부의 연락망을 건드린 건가? 그게 가능할 리가. 말도 안 된다. 이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도저히,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쭈, 박인혁. 이게 이제 다 컸다고 삼촌 말도 안 듣는 거냐?”


그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인혁이 앉아 있는 바닥에 파동 같은 주황빛의 마법진이 그려졌다.


“박 협회장님……? 그리고 김 원장님이랑 이 대표님도…….”


“김 원장님? 딱딱해라~ 엄마 상처받았어…….”


나직이 입을 열자 안쪽으로 걸어오시는 엄마가 가슴에 양손을 올리시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엄마의 옆에는 박 협회장님과 아버지가 계셨다.


“삼촌도 상처받았다! 어릴 땐 잘만 삼촌이라 불렀던 것 같은데 이제는 맨날 박 협회장님이라 부르고-”


“나 따라 하지 마.”


박 협회장님을 째려보며 엄마가 정색하시자 박 협회장님이 헛웃음을 지으셨다.


“하? 따라 한 거 아니거든?”


“아, 네. 그러시겠죠.”


“아니라고!”


“알겠다니까?”


무미건조한 엄마의 말씀에 박 협회장님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시며 깊은숨을 허탈하게 내뱉으셨다. 엄마는 박 협회장님을 놀리시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으시다는 듯 풋, 짧게 웃어 보이셨다.


엄마의 눈이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고개를 인혁에게로 돌리자 점차 안정되고 있는 인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주황빛이 시각화된 속성을 서서히 죽여 나간다.


혈액 속에 섞여 있던 하늘색의 광명은 없어진 지 오래였고 피가 멎어갔으며 모든 상처가 금세 전부 말끔히 사라졌다.


어둠을 감싸는 온기를 담은 세상 모든 날빛의 근원지, 해 속성이었다.


“인혁아, 내 목소리 들리느냐?”


박 협회장님은 쭈그려 앉으셔서 인혁과 시선을 맞추신 채 인혁의 상태를 확인하셨다.


“제휘…… 삼촌…….”


“그래, 삼촌이다.”


자신을 보고 실없게 살포시 웃는 인혁을 보며 박 협회장님이 빤히 바라보시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셨다.


오랫동안 방치된 자책은 비로소 자기혐오로 바뀐다.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게 나았을 거라 외치는 그의 시선이 바닥을 향한다.


“헌아.”


늘 나를 부르는 호칭을 꺼내시는 엄마의 목소리에 힘없게 고개를 돌렸다.


“우리 헌이 잘못 아니야. 엄마가 늦어서 그래.”


엄마가 늦으신 게 아니다. 감정 하나 똑바로 관리하지 못해 이성을 놓아버린 내 잘못이다. 우두머리를 보고 순간 이성이 끊겨버렸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그를 만날 날이 더 늘어날 텐데 그때마다 이렇게 이성을 잃어버리면 곤란했다.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려, 이도헌. 사부를 찾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다쳐서는 안 되잖아.


내가 강해져야 돼.


속성의 힘이 많이 강하네. 피를 꽤 흘린 것 같은데, 어지럽진 않아? 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


“……네.”


허벅지에 선명히 새겨진 깊은 상처에 해 속성이 들어가자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하늘색의 빛을 잃은 상처가 곧바로 아물기 시작하였다.


“이 녀석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제어도 안 되는 속성을 무리해서 사용해. 너 진짜 인화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다시금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화요……?”


인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서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오빠!!”


다급한 발소리가 묻히도록 애절하게 인혁을 부르는 인화의 목소리에 인혁이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나무 사이사이를 거침없이 지나 안쪽으로 들어오는 인화가 보이기 시작하자 인혁이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조심.”


박 협회장님의 부축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선 인혁이 숨을 천천히 고를 틈도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인화에게로 내디뎠다.


“인화야.”



와락 -



속도를 멈추지 않은 채 달려온 인화가 인혁의 품에 안겼다.


“오빠 제발 좀!”


조금의 비틀거림도 없이 인화를 안은 인혁이 인화의 외침에 잠시 멈칫했다.


“자기 몸 좀…… 소중히 여기란 말이야…….”


순식간에 조용해진 세계 속 울음 섞인 인화의 목소리가 조속히 울려 퍼졌다.


“인화, 오빠 봐봐.”


인화는 인혁을 끌어안은 채 조금도 미동하지 않았다.


“나 보러 온 거 아니야? 고개 들어봐 봐.”


훌쩍거리며 인화가 고개를 들자 인혁이 인화의 얼굴을 보고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큽…… 너 화장 다 번졌어.”


다시 인혁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인화가 주먹 쥔 손으로 인혁의 어깨를 세게 쳤다. 인혁은 몇 번 웃어 보이고는 인화의 머리를 부드럽게 감싸 꼭 안아주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인화의 눈물이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자 인혁이 자신의 품에서 인화를 떼어내고 인화의 눈물을 직접 닦았다.


“오빠 괜찮아. 봐, 멀쩡하잖아.”


인혁은 자세를 낮추고 인화의 눈가를 조심스레 쓸었다.


“그러니까 그만 울어.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 더 못생겨질라.”


뒷모습만 보아도 곧바로 울음을 뚝 그친 인화가 인혁을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인혁의 얼굴을 똑바로 직시한 인화의 어깨가 조금씩 떨려가더니 또다시 울음을 터뜨린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알았어, 알았어. 오빠가 다 잘못했어. 미안해. 다시는 안 다칠게, 응?”


“……몰라. 먼저 갈 거야. 알아서 와.”


화장이 번진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은지 인화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나를 지나쳐 속성 대표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뒤로 안 돌아보고 본부로 향하였다.

인혁이 안심한 것을 보고 난 뒤 밀려오는 안도감과 함께 괘씸함이 찾아온 모양일까.


“아이고, 단단히 삐졌네.”


멀어져 가는 인화를 보며 넌지시 입을 여는 인혁의 볼을 박 협회장님이 꼬집어 쭉 늘리셨다.


“으유, 내가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알기나 하느냐. 아주 그냥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뭐가 그렇게 무모해, 응?”


“아아, 삼촌 아파요!”


“아프긴, 방금 전이 더 아팠겠다!”


어디 인혁에게 쏟아부어지는 박 협회장님의 걱정 어린 목소리 사이 어디선가 진동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냐.”


발생지는 아버지의 핸드폰이었다.


“지금? ……그래, 알겠다. 보고서는 집무실에 있나?”


누군가와 바삐 이야기를 나누시는 아버지가 박 협회장님을 보시고 고갯짓으로 앞을 가리키시자 짧은 한숨과 함께 박 협회장님의 걸음이 옮겨졌다.


“팔찌는 최 소장한테 말해두마. 몸조심하고.”


“인혁아, 내일까진 무리하지 말고 푹 쉬어야 돼!”


박 협회장님과 뒤를 돌아보신 엄마가 인혁에게 말씀하셨다.


“네, 감사합니다.”


먼저 앞서가는 엄마와 아버지를 뒤따라 가시는 박 협회장님의 모습까지 점차 멀어지더니 금방 사라졌다.


……분명히 봤다. 찰나였으나 감정은 극도로 선명했다.


아버지의 표정에 금이 가 있는 것을.


처음이었다.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신 건지, 숨겨온 아픈 과거가 기억나신 건지 아버지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신 채 미간을 찌푸리고 계셨다. 분명 인화가 오기 전까지는 평소와 다름없으셨던 것 같았는데.


인화는 괜찮으려나. 많이 속상할 텐데. 인화한테는 그런 슬픈 표정이 아니라 밝은 웃음이 어울려.


‘나 심심해. 일하지 말고 나랑 놀자.’


그래, 나한테 보여주었던 그 따듯한 미소가-


“이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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