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의 나비 18화

제3막 후천적 속성(完)

불의 나비 18화

by 매화연

“오빠도 다쳤네.”


대상이 나로 바뀐 인화의 말과 따가운 시선에 몸이 미세하게 흠칫 떨리며 잊고 있었던 상처가 생각이 났다. 그와 동시에 쓰라린 통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안 다치겠다고 나랑 약속했으면서.”


“미안. 그, 어쩌다 보니…….”


네 생각을 하다 방심해서 다쳤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어.


“일로와. 연고 바르고 밴드라도 붙이게.”


“난 치료 안 해도 돼.”


속성으로 인한 상처이긴 하나 크기가 작아서 굳이 번거롭게 치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속성의 힘이 강한 것 같지도 않고.


인화에게 말한 뒤 나는 본부팀의 책상 앞에 앉았다. 조사를 재개하려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인화가 내가 앉아 있는 의자를 자기 쪽으로 홱 돌렸다. 인화의 양손에는 면봉과 연고, 그리고 밴드가 있었다.


“가만히 있어.”


가까워진 인화와의 거리에 놀랐지만 인화는 면봉에 연고를 짜며 태연하게 내 상처를 확인했다.


“상처가 너무 심한데…… 무엇보다 속성으로 인한 상처잖아. 이 정도면 JI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


“조금 긁히기만 한 거라서 괜찮아. 치료도 안 해도 되는데.”


“조금은 개뿔. 저 자식 실군단의 검에 깊게 긁히는 거 내가 두 눈으로 확실하게 봤어.”


“뭐? 실군단의 검에?”


아, 그냥 대충 넘어가려고 했더니만 박인혁 저 자식이…….


“오빠, 이거 간단한 치료로 끝낼 상처가 아니야. 선아 언니가 응급처치를 한 것도 아니고 내가 그냥 밴드만 붙이는 거니까 꼭 병원 가서 김 원장님 치료받아야 돼.”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리며 인화가 말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는 인화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또다시 웃고 있었다.


“알겠어,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갈게. 그러니까…….”


나는 면봉을 들고 있는 인화에 손을 살포시 잡아 내 상처에 가져다 대었다. 상처에 연고가 닿자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네가 먼저 치료해줘.”


인화는 살짝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내 눈을 피하며 상처에 조심스레 연고를 바르고 귀여운 토끼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밴드를 하나 꺼내었다.


이런 밴드는 대체 누가 산 건지…….


……토끼, 인화 닮았다.


“근데, 내가 치료한다 해도 하늘색 빛은 안 사라질 텐데.”


“괜찮아. 그보다…….”


“응?”


“화장, 다시 했나 보네? 번졌다며.”


나는 가볍게 미소 지은 채 밴드 포장지를 떼던 인화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뽀송한 이 얼굴을 보며 과연 누가 울었다고 생각할까.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나를 노려보던 인화가 포장지를 뗀 밴드를 내 상처 위에 꾹 붙였다.


“아.”


욱신거리는 통증에 짧게 나온 목소리에도 인화는 마다하지 않고 밴드가 절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꾸욱 눌렀다.


“아프다.”


“흥, 화장한 거 아니거든. 생얼이야.”


새침하게 말하는 인화를 보던 진우가 웃음 섞인 말을 꺼내었다.


“생얼은 무슨. 내가 네 생얼을 봤는-”


“시끄러워!”


인화가 꾸깃꾸깃 구겨진 밴드 포장지를 진우에게 던졌다. 바닥에 툭 떨어진 포장지를 주우며 진우가 인화를 놀리듯 몇 번 웃어 보았다.


“아니지. 박인화는 아침에 얼굴 부었을 때가 진짜야. 난 진짜 그렇게 못생긴 사람은 또 처음 봤다니까?”

“아, 좀!!”


슬쩍 거든 인혁의 말에 인화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뭐 어떠냐~ 오빠들이 다 네 생얼이든 부은 얼굴이든 봤는데.”


“그래. 우리가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우리가 너 키운 거지.”


“참나,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면서. 맨날 나만 놀리지, 나만 놀려……”


다시금 앞으로 고개를 돌린 인화와 눈이 마주치자 인화가 꼼꼼히 붙여진 밴드를 검지로 부드럽게 쓸고는 뿌듯한 듯 배시시 웃어 보였다.


“치료 끝!”


갑작스레 훅 들어온 인화의 미소에 나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인화가 더 가까이 다가오며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오빠 얼굴 왜 이렇게 빨개? 어디 아파?”


인화는 내 이마에 손을 대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나는 인화를 살짝 뒤로 밀었다.


“더워서 그래, 더워서…….”


순식간에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려 소매를 걷고 몇 번 헛기침을 했다. 그 모습을 전부 직관한 인혁과 진우가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냐?”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무언갈 곰곰이 생각하며 나를 빤히 바라보던 인혁이 목소리를 또다시 꺼내었다.


“어, 그럼 설마……, 아까 한눈을 판 게 쟤 때문이라는……?”


아까와 다른 점은 목소리에 조금 더 놀람이 첨가되었다는 점이려나.


“……나, 뭔가 엄청 큰일을 알아버린 것 같은 기분인데.”


“뭐야, 뭔데.”


“하, 이도헌, 그런 거였냐? 와 저 자식…….”


나는 뒤에서 느껴지는 인혁의 따가운 시선을 이 악물고 외면하였다.


“아 뭔데. 나도 알려줘!”


궁금해 죽겠다는 듯한 진우의 표정에도 인혁은 진우에게 조금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내가 잘못했으니까 나 좀 그만 봐. 뚫어지겠다.


시끌벅적한 대화 소리 속 애써 모두를 무시하며 허공에 큰 푸른 창을 띄워 아까 협회에 있을 때 녹화된 CCTV를 확인했다.


역시, 그 여자아이가 나온 장면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멀끔히 삭제되어 있었다.


여자아이가 나온 장면뿐만 아니라 실군단이 나온 장면도 기록되지 않았다. 분명 당시는 CCTV로 확인이 가능했었는데.


실군단과 관련한 모든 것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나온 장면은 CCTV에 녹화가 되지 않았다. 우두머리는 녹화가 되지도, 당시 화면에 비추어지지도 않았고. 실군단에 대한 그 어떤 물질적인 증거도 남기지 않는다……, 라는 건가.


“진짜,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 놨으면서 알려주지도 않고. 그럴 거면 혼자 속으로만 생각하던가…….”


진우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내 옆으로 왔다.


“아직 일 남았냐.”


“다 끝났어. 퇴근하자.”


나는 장치들의 전원을 끄고 퇴근 준비를 했다.


“드디어 집 가네~”


“아, 서진우.”


자리에서 일어나 진우를 부르자 진우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왜?”


“나 협회에 가 있을 때 본부에 경보 안 울렸었지?”


“응. 아주 평화로웠는데? CCTV랑 무전기가 잠시 먹통 됐던 거 빼고는.”


진우 납치 사건 때 방에 들어간 직후에 보았던 안개와 그 여자아이가 도망갈 때 나타났던 안개가 똑같았다.

그저 평범한 안개가 아니었고, 그저 평범한 우연이 아니었다.


안개와 관련된 속성이라. 안개라면…… 대개 풀 속성인데. 일단 여자아이는 아닐 테고 팔찌를 착용한 남성은 불 속성을 사용할 테니 가장 유력한 후보는 하늘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남성인가.


아니, 하늘색의 눈동자라면 얼음 속성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게다가 그 안개는 얼핏 봐도 무조건 속성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헌데 경보가 울리지 않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본부 경보 제외 대상은 특경부의 대원들과 속성 대표님들이 전부였다. 그 외 제외 대상으로 지정된 예외가 몇 분 있긴 하나 그것도 아버지가 직접 지정하신 거였다. 실군단 측이든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든 누구든 그 어떤 속성 보유자도 속성을 사용한다면 본부의 경보가 울려야 되는데 어째서 안 울리는 거지?


“야, 이도헌.”


정신 차리라는 듯 내 눈 바로 앞에서 손을 흔드는 진우 때문에 순간 복잡한 생각이 멈추었다.


“머리 아픈 생각은 거기까지 하고 퇴근이나 하자.”


“이야 이게 얼마 만에 이도헌이랑 같이 퇴근이냐~ 마침 오늘 금요일인데, 다 같이 한잔할까? 마침 우리 도헌이는 나랑 진솔하게 할 이야기도 있고.”


내 어깨에 팔을 두른 인혁이 살기가 담긴 살가운 웃음을 띠었다. 그 미소를 애써 피하고 있자 진우가 짧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아, 나 내일 당직이야 인마.”


“응, 난 아니야. 박인화 너도 갈 거지?”


인혁의 물음에 인화가 나를 슬쩍 일별하더니 이내 아쉬움을 담은 웃음을 지었다.


“오빠들끼리 마셔. 여기서 내가 끼면 눈치 없는 거지.”


“뭐야, 잘 아네? 눈치 없이 같이 갈 줄 알았더니만.”


“……뭐?”


감정을 꾹 눌러 담은 나직한 인화의 한 마디에 인혁이 얼른 내 뒤로 와 숨었다. 인화는 독기가 묻어나는 발걸음을 고고히 한 걸음씩 인혁에게로 옮겼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오빠가 생각이 짧았네, 그치? 아, 잘못했다니까? 어?”


“빨리 일로 안 와?”


“아아아 미안하다고!”


또 시작이네, 라며 한숨과 함께 남매의 추격전을 지켜보던 진우가 나에게 물었다.


“술 마시러 갈 거야?”


“뭐, 오랜만에 셋이서 한잔하던가.”


한없이 깊어져 가는 악몽들에게서 내가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내 사람들 덕에 오늘도 겨우 버텨내며 꾸역꾸역 삶을 연장해 나아간다.


‘힘들 땐, 언제든지 기대거라. 사부는 항상 도헌이 네 옆에 있을 테니까.’


방금 전에 내가 인혁에게 해준 말과 비슷해서일까. 문득 사부의 말이 생각났다.


내가 지친 날이면 언제나 건네시던 사부의 그 말씀이 머릿속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헤집고 다녔다.


결코 잊히지 않을 것 같았던 다정한 사부의 목소리는 활자만을 남긴 채 점점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고 무정하기만 한 밤은 연약한 별빛에 의지한 채 더욱 깊어졌다.


유독 사부가 그리워지는 밤이었다.


“야, 너 그 밴드 붙이고 술집 가게?”


“그럼?”


“……아니다. 병원 갔다 갈 거지?”


“병원 가면, 이 밴드 떼야 되잖아.”


“……그럼 밴드는 붙이고 있어. 제발 병원 가서 김 원장님한테 치료만이라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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