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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성우 Aug 28. 2023

3. 공정

Fairness / Justice

   나는 아이들이 먹을 간식을 항상 준비해 놓는다. 수시로 대형마트에 가서 빵, 과자, 음료수 등을 그득그득 사서 냉장고 또는 우리만의 보물창고(!)에 넣어두었다가 아이들에게 내어준다.


  가끔은 아이들 모두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면 상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사주기도 한다.      

  한 번은 초등학생들에게 영어 명작동화 한 권 전체를 반 아이 모두가 암기해서 말하기 발표에 성공하면 개인당 3천 원짜리 과자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그 반에 있는 모든 아이가 말하기 발표를 성공하였다. 

  그래서 약속한 3천 원짜리 ㅇㅇㅇ 과자를 모두에게 똑같이 사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한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같은 과자를 사는 거보다 3천 원 내에서 자기가 원하는 거 사면 안 돼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아이의 말대로 하려면 아이마다 원하는 걸 일일이 다 파악해야 하고, 가격도 3천 원을 넘지 않는지도 따져봐야 하고 등등,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결정을 못 내리고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다른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번에만 우리가 다 같이 마트에 가서 3천 원 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걸 고르도록 하면 어떨까요?”

  나는 또 고민에 빠졌다.

  ‘뭐? 같이 마트에 간다고? 그렇게 하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에다가 또 과자를 고르는 시간까지 더해지니까 그만큼 수업시간이 줄어들게 될 텐데.’ 


  한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과자가 다 다른데 같은 가격으로 억지로 맞추기 위해 같은 걸 사주는 것이 공평하기는 하겠지만 공정하지는 않은 것이구나 싶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마트에 가서 자신이 원하는 과자를 사게 했다. 

  어떤 아이는 3천 원이 넘지 않는 과자를, 또 어떤 아이는 3천 원이 넘는 과자를 골랐다. 하지만 서로 가격을 물어보고 확인하면서 아무도 불평하거나 욕심내는 아이가 없었다. 각자 원하는 과자를 사 들고 강의실로 돌아와서 맛있게 먹었다. 내 것, 네 것 없이 함께 펴 놓고 즐겁게 나누어 먹었다.

  이날은 공평해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론 공정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과 공평하기보다 공정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때로는 더 지혜로울 때가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공정은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고 규칙에 따라 판정하는 것입니다.    

 

공정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을 때 시험성적이 좋은 학생이 밥을 먼저 먹는 것이 아니라 줄을 서서 기다린 순서대로 먹는 것입니다그리고 전교 1등부터 15등인 학생만 자습실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학생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공정은 기업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시험성적학벌 그리고 스펙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해당 업무에 대한 역량 및 숙련도와 가치 덕목 및 인성 등을 평가하여 뽑는 것입니다몇 년간 업무를 익혀서 능력을 갖춘 비정규직 직원을 시험을 안 쳐도 정규직 직원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공정은 아이들에게 똑같이 볼펜을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연필이나 공책도 주는 것입니다.


  예전에 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2020, 와이즈베리)⌟을 읽고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대구지역 등대지기모임 회원들과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의 원제목은 ⌜THE TYRANNY OF MERIT⌟인데 직역하면 ⌜능력주의의 횡포⌟이다.      


  이 책의 서론은 미국에서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명문대에 부정 입학시킨 어느 악덕 입시상담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입시상담가는 자신의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키려고 하는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로부터 서민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많은 돈을 받았다. 그리고 이 돈을 시험 감독관을 포함한 입시 관계자들에게 주어 성적을 조작하게 한 후 그들의 자녀를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켜 주었다. 이런 부정한 행위는 돈과 권력이 하나의 능력이 되어 돈도 권력도 없는 사람의 대학입학 기회를 빼앗은 것이다. 


  오랫동안 이루어진 이러한 입시부정이 결국 들통나면서 여러 언론 매체에 소개됨으로써 많은 미국 사람들이 미국 사회의 불공정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나아가 사람들이 경쟁할 때 모두가 정말로 공평하게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는지, 기회 또한 공정하게 주어지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지은이는 이 사례를 능력주의의 횡포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능력주의(박권일, 2021, 이데아)⌟라는 책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과거에도 일어났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능력주의의 횡포를 알리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는 대한민국의 능력은 시험성적을 기준으로 판단되며 시험성적이 좋은 사람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한국인의 인식을 역사적인 근원을 밝혀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2017년에 서울교통공사가 노사합의를 통해 무기 계약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을 때 많은 사람이 온라인상에서 이 합의를 비난했던 사례를 소개하면서 한국인들이 능력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어떠한지를 이야기한다. 

  서울교통공사가 무기 계약직 직원을 정규직 직원으로 전환하기로 최종 합의하자 온라인상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 쳐서 합격한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이므로 당연히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사람은 수년간 업무를 하면서 아무리 일을 잘하더라도 시험을 치지 않았기 때문에 시험 쳐서 입사한 사람보다 낮은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며 이것이 공정하다는 내용의 글들도 올라왔다.

  이런 현상에 대해 지은이는 시험 봐서 입사한 사람만 정규직의 혜택을 누리고 아무리 열심히 일을 잘해도 시험을 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낮은 급여와 낮은 대우를 받는 것이 공정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기업체 입사시험 이전에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시험이 있다. 바로 대학입시이다. 시험성적이 좋아서 SKY 내지는 인서울 한 학생은 평생 동안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지방대에 입학한 학생은 평생 동안 학벌 차별을 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다. 아울러 대졸자와 비대졸자 간의 학력 차별과 이에 따른 사회적 차별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시험성적으로 사람들을 줄 세워서 차별하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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