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무섭지 않다

아버지의 첫 기억

by 맥락

어린 시절, 담배인삼공사 사거리. 왕복 8차선, 내 손 꽉 쥐고 좌우 살피던 아버지. 대뜸 지나가는 차 사이로 길 건너는 우리. 우리 어디 가던 길이었지? 무단이라는 말도, 횡단이라는 말도 그때 몰랐지만 이상하게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잰걸음으로 아버지 뒷모습 쫓다가 잡고 있던 아버지 손, 느슨하게 힘 놓았다. 도로 한 중간을 가로질러가던, 좌우 살피며 종종걸음 내딛던 아버지, 그게 아버지에 대한 내 첫 번째 기억이다.


아버지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나와 형을 무릎 꿇려 앉혀, 한참을 이야기했다. 집안의 내력과 촌수, 그리고 할아버지 이야기. 몇 번을 들었지만 기억도 나지 않는 이야기, 듣고 있으면 지루해 화나는 이야기. 그렇게 무릎 저릴 때까지 듣고 있으면, 아버지는 손가락에 침 묻혀 내 코에 발랐다. 나는 그게 너무 싫어서, 티 나게 숨을 참거나 얼굴을 피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윗니로 아랫입술 깨물고는, 말없이 한참 나를 노려봤다. 토끼처럼 빨간 눈.


"거짓말하지 마라"


술 취한 아버지의 맥락 없는 그 말이 나는 그렇게 무서웠다. 형과 나는 아버지 양말 벗기고, 와이셔츠 단추 풀어 옷걸이에 걸고, 그렇게 아버지 잠들 때까지 그 앞에 앉아있었다. 아버지 깊이 잠들면 그제야 내 자리로 가 누웠다. 그리고 내가 한 작은 거짓말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술에 취하면 다른 사람 같았다. 말이 많아졌고, 웃다가 소리쳤다. 나와 형을 아끼는 듯 말하다가, 내키는 대로 대했다. 다음 날, 식구 모두 이른 아침밥을 먹고, 아버지께 출근 인사를 했다. 그리곤 우리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아버지가 집에 없을 때, 우리는 매번 누워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가끔 우리 가족이 아닌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내 아이를 낳고, 언제부턴가 아버지가 무섭지 않다. 늙은 아버지는 이제 술도 맘껏 마시지 못한다. 혼잣말을 자주 하고, 내 아들마냥 내 대답을 기다린다. 며느리나 손주들에게 말을 걸 때면 입을 손으로 가리고 말한다. ‘할배 입냄새 난다.’하고 물렁하게 웃는다.


나는 이제 아버지를 다 알아버린 것 같아 하나도 무섭지 않다. 그게 가끔 미안하다.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거. 왜 아버지들은 나이를 먹으면 덜 미워지는지. 그렇게 조금씩 덜 미워지는 것도 사랑이다 생각하지만,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해본 적 없다. 그리고 그럴 예정 없다. 그 예정 없는 나중, 나중, 나중을 생각하다 보면, 선명하게 뭔가 떠올라 갑자기 무서워진다.


예전 젊은 아버지가 그립지 않다. 그 시절도 그립지 않다. 지금이 딱 좋은데, 시간이 지나간다. 내 아이들은 크고, 아버지는 줄어들겠지. 시간이 지나간다. 얼마 전, 아버지 칠순 잔치였다. 아버지 그날 웃으며 매우 좋아하셨다. 아버지.

작가의 이전글너무 멀면 희미하고 가까우면 눈이 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