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면 희미하고 가까우면 눈이 부신

엄마 이제 괜찮아

by 맥락

엄마, 오늘은 맛있는 거 좀 먹었나?


엄마의 우울증은 올해 봄부터 시작되었다. 시작은 역류성 식도염이었고, 소화가 잘 되지 않자, 엄마는 음식을 멀리했다. 갱년기와 식욕 저하가 몸을 약하게 만들었고, 그게 엄마의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전에 누우면 나는 참 행복하다. 이게 아프기 전에는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병원 대기실 의자에서 엄마는 자신의 가슴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대기실에는 엄마처럼 깡마른 사람들이 다리를 모으고 앉아 있었다.


"선생님 저 좀 살려주이소"


1 시간을 기다려 만난 의사 앞에서, 엄마는 또 그렇게 말했다. 나는 엄마 뒤에 서서, 엄마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렸다.


엄마 또래로 보이는 안경 낀 의사는 엄마의 진료 차트에 ‘경도’라고 써놓고 그 주위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 하나, 동그라미 둘, 셋, 넷, 궁금한 게 많은 엄마와 지쳐 보이는 의사는 둘 다 환자 같았다. 의사 선생님 뒤쪽 하얀 벽에 성모 마리아 그림과 함께 카톨릭 묵주가 걸려 있다. 성모 마리아는 고개를 떨구고 아래를 보고 있었다.


다시 2시간을 보내고, 모든 검사를 마쳤다. 하나도 지겹지 않았다. 중간중간 엄마는 아들과 함께 와서 너무 든든하다고 말해주는 걸 잊지 않았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좋았고, 약간의 기립성 빈혈과 시작 단계의 우울증이라고 의사는 말해줬다.


"먹고 싶은 거 있나?"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먹고 싶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참말로"


"엄마 홍시 좋아하잖아. 시장 가볼래?"


"이제 홍시 안 먹는다. 똥 안 나온다."


그 길로 엄마와 봉덕 시장에 갔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돼지 국밥을 사고, 시장 노점상에 들러 엄마가 먹을 채소들도 살펴봤다.


"이거 고추 맵습니꺼? 매우면 저는 못 먹습니데이."


엄마는 다짜고짜 노점상 광주리에 담긴 고추 하나를 성큼 분질러 코에 가져갔다.


"아이고 이거 안 되겠다. 이거 맵다."


엄마는 두 동강 난 고추를 더미 맨 위에 올려두고, 얼렁뚱땅 자리를 떴다. 나는 주인이 화라도 내면 어쩌나 싶어, 주인아주머니의 얼굴과 엄마의 뒷모습을 번갈아 봤다. 파라솔 그늘 안에 앉아 있던 노점상 주인은 부러진 고추를 검정 비닐봉지에 무심하게 던졌다. 홍시는 없어서 사지 못했다. 집에 와 엄마는 숙제처럼 식사를 마쳤다.


나는 대구 본가에 머무는 동안 말을 많이 했다. 엄마와 아이들을 데리고 앞산에 다녀왔고, 저녁에는 엄마와 아내, 세 명이서 고스톱을 쳤다. 아내가 많이 이겼고, 난 소질이 없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위해 마당에 있던 꽃화분을 신발장 옆에다 옮겨 놓았다. 운동화를 처음 자기 손으로 빨아봤다고 아버지는 내게 자랑하셨다. 형은 평일 저녁을 항상 본가에서 엄마와 함께 먹는다. 누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붉은색 체크 셔츠를 자주 선물했다. 엄마가 아프자 아무도 아프지 못했고, 다들 하얀 전구알처럼 어둡다가도 밝아졌다.


"할머니 조심해."


이제 막 두 돌 지난 은수가 마당으로 나가는 엄마에게 말했다. 마당에는 모기가 많으니 조심하라고 은수에게 일러주던 참이었다. 엄마는 현관 문지방에서 서서 잠시 은수를 내려다봤다. 엄마는 물이 떨어지는 고무장갑을 낀 채 은수를 조심스레 안았다.


"할매 항상 조심할게. 고마워"


엄마는 어설픈 표준어로 은수의 말 높이를 따라 했다. 다시 쓰레기봉투 들고 밖으로 나가는 엄마. 엄마의 민 소매 원피스. 밥그릇처럼 오목하게 파인 겨드랑이. 올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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