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 뱀

Yo 망한인생

by 맥락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건 망해가는 회사를 탈출하지 못한 임원들의 말이었고, 우리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회사는 스타트업답게 수평적인 사내 문화를 지향하였으나, 임금은 수직적이었으니 우리는 암 것도 몰라용 헤헤헤.’


그래 분명 그런 무책임한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는 방향은 회사가 아니라 부모님과 자식, 배우자와 연인들 쪽이었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예민한 화살표로 바뀌어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푹푹 찔러댔다. 회사가 망하면 나도 망할 것 같은 그 꿈틀거리는 무서움을 회사를 나와 집에 도착하면 뱀처럼 풀어놓았다.


아내는 까치였다. 한동안 아내는 내가 풀어놓은 뱀들을 밟을까 까치발로 다녔다. 퇴근한 내 표정을 살피던 아내의 종종거림은 조류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층간소음에는 분명 효과적이겠지만 곧 아킬레스건염에 걸릴 것 같은 까치발. 그 자세를 보고도 못돼 처먹은 나는 이상하게 더 짜증을 부렸다. 현관 앞에 택배가 와있으면 심통이 났고, 당뇨 환자도 아니면서 비싼 환자식 빵을 시켜 먹는 아내가 미웠다. (그럴 거면 내 눈치를 왜 보는 거지? 당시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가 소비지향적 인간이라거나 건강염려증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내 마음이 통장잔고처럼 좁아지고 쪼그라들었다. 불안은 3금융권 이자처럼 점점 늘어났다.


"일단 이거 잡솨봐."


아내는 내 입에 빵 한 조각을 넣어준다. 아내는 미술을 전공하였고 20대 초반 나를 만날 당시 공황장애 이력이 있었다. 아내가 그리는 그림 속 인물들은 보통 눈동자가 없고, 옷을 입지 않거나 옷을 입어도 무채색 계열이었다. 연애시절 내게 ‘에곤 쉴레’ 그림엽서에 연애편지를 써준 것도 아내였다. 그 엽서에는 나체의 여자가 털을 내놓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이상하게 낙관주의자였다.

"천천히 고무를 먹는다고 생각하고 씹어봐 그러면 빵에서 단맛이 나온다."


아내는 내가 풀어놓은 뱀들을 찬찬히 살펴보다 터빈을 쓴다. 피리를 부는 인도 어딘가의 조련사처럼 차분히 뱀을 집어넣는다. 뱀은 집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일단 눈에 보이지 않으니 우리는 조금 안심한다.


아내는 여전히 까치발을 한 채, 나를 달래줬다.


자기도 무서우면서.


여러 날, 우리는 소화하지도 못할 불안을 삼켰다. 조금은 단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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