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날 준비를 마쳤어요!
다시 해외를 나갈까? 아니면, 한국에 있을까?
답이 나오긴 할까 의심스러운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셈해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간 뒤였고, 그 사이 내가 놓친 것들도 많았다. 그것들의 꽁무니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많은 것이 흩어져있었다. 많은 것을 해 왔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왔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만큼 많은 것이 여기저기에 놓여있었다. 한 곳에 가지런히 쌓이지 못하고 다양한 주소를 가진 채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이었다. 너무 다양한 색깔이라 어떠한 한 가지의 색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다양함 그 자체로도 존중받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한길만 가지런히 걸어온 이들 사이에 있자니, 괜스레 비교가 되는 것 같았다. 참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한 달간 고민했다. 그동안, 해외로 다시 나갈 건수를 찾아보기도 하고,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보기도 했다. 동시에 한국에서의 삶도 그려보았다.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겁이 나기도 했다. 전에는 가져본 적 없던 두려움이 연하게 피어났다.
서울의 작은 방 안은 답답했고, 날마다 어두워져만 갔다. 불쑥 찾아오는 숨 막히는 순간들이 괴로워서 며칠간 집을 떠나 있기도 했다. 최대한 먼 곳으로 버스를 타고 배를 타고 갔다. 많이 걷고, 바다를 바라보고, 다시 또 걷고, 막걸리를 마셨다. 참 밝은 그곳에 있다 보니 숨통이 트이고 시야가 밝아졌다. 그 기분에 취해 계속해서 걸어 다녔다.
다시 서울로 올라왔을 때, 내 방은 여전히 좁았지만 전만큼 어둡지는 않았다. 겨울은 깊어가고 있었지만, 내 방 안까지 겨울이 덮치지는 않았다. 섬에서 가져온 모든 걸음들을 방 안에 풀어놓았다. 그때의 온기가 조금은 느껴졌다.
서울에 있는 한 행사기획 회사에서 면접을 보았다. 스위스로 떠나기 전 4년 동안 했던 일이 기획 일이었다. 프로모션이벤트나 기업 내부 행사 혹은 공연 기획 일을 했었다. 서울에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려면 일자리가 필요했고, 전에 했던 일을 이어가는 게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도보로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회사였고, 급여도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박하게나마 원하는 만큼은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일주일 뒤인 1월 첫째 주부터 첫 출근이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아, 일할 곳이 생겼구나. 나도 이제 다시 서울에서 사람구실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다. 월급 받으면 언니한테 밀린 생활비도 주고, 외식도 하고, 다시 저축도 시작해야지, 싶었다.
그런데 그런 부푼 마음도 잠시였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떠다니는 한낱 먼지가 될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가볍고 속 시원하게 떠다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비가 내리면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축 가라앉게 될 것이다. 질퍽하고 더러운 땅에 파묻힌 채, 언제 어떤 신발에 밟힐까 노심초사하겠지. 구깃구깃한 종잇장처럼, 찢기지 않으려 애쓰는 한지처럼, 색이 다 바랜 색종이처럼.
난 결국 입사하기로 한 회사에 가지 않았다. 앞으로의 나날을 걱정하는 것도 잠시,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편안해졌다. 옳은 결정을 했을 때 느껴지는 딱 그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살아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은 건 12월의 마지막이었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던 두 갈래의 길에서 기어코 한 가지의 길을 선택했다. 오래 고민한 만큼 결정을 확실히 내렸다. 그런데 숨을 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갈림길이 나타났다. 선택지는 크게 두 개였다. 서울 아니면 지방 어딘가.
그동안은 서울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서울 이외의 선택지조차도 없었다. 수원에 살면서도 왕복 네 시간이 걸려 서울로 알바를 다닐 만큼, 나의 생활은 서울에서 대부분 이루어졌다. 친구도 고향인 수원보다 서울에 압도적으로 많고, 서울에서 지내면서부터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했던 개념을 깨뜨리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다.
서울에서 다시 일을 하는 상상을 했을 때 느껴졌던 압박감은 자연스레 꼭 서울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답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고민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 말이다. 12월 한 달에 걸쳐했던 고민이 끝난 후, 나는 새롭게 맞이한 해의 첫 달 동안 다시 또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고민은 전라남도 곡성에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우연히 알게 된 전남 곡성 청년 한 달 살기 (정확히는 3주)에 지원하게 되었고, 다행히도 참여자로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친분이 있는 작가님이 몇 년 전부터 내려가 계신 곳이라 이야기만 들었을 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던 곡성. 시도 아니고 ‘군’인 그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3주니까, 끝이 있는 머무름이니까, 큰 부담감 없이 있다 올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서울이 아닌 곳에서 내가 지낼 수 있을지 스스로 테스트해 본다는 나름 큰 목적을 지닌채로.
그렇게 나는 곡성으로 출발했다. 최대한 많은 것을 미리 그려보지 않고, 되는대로 부딪혀보고자 했다. 나는 그렇게 다시 한번 새로운 곳으로 발을 들였다. 내가 지나온 흔적들을 흩어진 그대로 사랑한 채, 다시 한번 치열하게 흩어져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