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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Feb 08. 2023

03. 푸른 별똥별을 보던 밤

곡성의 밤하늘이 아름다운 이유



곡성에는 골짜기가 많다. 곡성이라는 이름 자체가 골짜기와 고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괜스레 파묻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을 등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바싹 마주 대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빈백에 편하게 누워 내 몸 그대로를 찍어내듯이, 곡성의 어느 골짜기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곤 그곳을 내 몸에 맞게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이다. 처음 살을 대었을 때의 차가움은 서서히 따뜻함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곡성의 골짜기에 푹 몸을 담그고 있으면 아랫목에서 등을 지지듯이 몸이 뜨거워졌다.


등을 지지며 골짜기에서 올려다본 곡성의 하늘은 참 까맸다. 해가 지고 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밤에도 화려하게 켜진 온갖 조명에 오랜 시간 익숙해왔던 내 눈은 캄캄한 하늘 아래에서 역할을 잃었다. 그 어떤 것도 가이드가 되어주지 못했다. 나는 어두운 허공 속을 응시하다 여러 차례 방향을 잃곤 했다.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 사방을 둘러보다 고개를 들면 조금씩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는 듯했다. 곡성의 하늘은 두꺼운 무언가로 꽁꽁 덮여 있었다. 이방인인 나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둘둘 둘러매고 있던 베일을 한 겹, 그리고 또 한 겹씩 벗기 시작했다.

스르륵,

그 소리에 참 설렜다. 보여줄 듯 말 듯, 보일 듯 말 듯했다. 아픈 고개를 젖히며 그렇게 계속 올려다본들 하늘의 깊이를 잴 수 없었다. 시커먼 하늘의 채도가 조금씩 옅어질 때마다 침을 꼴깍 삼켰다.


다시 스르륵,

눈을 몇 차례 깜빡였고, 괜히 시야가 흐린 것 같아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곡성의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늘은 여전히 까맸지만 전과는 달랐다. 하늘에 매달린 별들이 하늘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준 것이었다. 별들 사이의 거리까지 보이는 듯했다.


우와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고개를 꺾는 아픔도, 허리가 뒤로 접힐 것 같은 고통도 잊은 채 나는 한껏 몸을 뒤로 젖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탄성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조금씩 고개의 각도를 틀 때마다 계속해서 별이 보였다. 주위의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조용히 잠겼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별들이 너무나 찬란했다. 조심스레 맺혀 한껏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누울까?

좋아, 그러자.

차가운 바람이 사납게 불고 있었지만 별 보기를 멈추기에는 아쉬웠다. 어느 주차장의 아스팔트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다시 또 처음 살을 대듯이 차가운 골짜기 안으로 나는 그렇게 파묻혔다. 골짜기를 둘러싼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밤바람이 코 끝을 긁는 소리가 났다. 사르륵, 여러 차례 소리가 들렸지만 나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지는 못했다.


감탄을 내뱉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많은 별 중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별똥별은 푸른색이었다. 에메랄드 빛 바다보다도 더 푸르른 파란색을 띠고 있었다. 길게 꼬리를 빼고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수려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랬기에 더욱 강렬한 순간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허리를 세우고 앉았다.

우와!!!

서로 눈을 맞추며 내가 본 게 맞지? 너도 봤지? 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흥분에 찬 네 개의 눈이 별만큼이나 빛나고 있었다. 좀처럼 다물지 못하는 입 안으로 차가운 밤공기가 하염없이 들어왔다.


그것은 같은 하늘 아래였지만, 결코 같은 하늘이 아니었다.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에는 그곳의 땅이 투영되어 있었다. 밤하늘을 통해 곡성의 모습이 보일 만큼 투명한 하늘이었다. 컴컴했지만 투명한 그 하늘에 맺힌 별들이 이곳에 잘 왔다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서울 밤하늘에서는 차마 보지 못했던 서울이 떠올랐다. 아주 잠깐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서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곡성 밤하늘 골짜기의 온기가 서울을 잊게 한 걸까.

곡성에서 본 나의 첫 별똥별, 그 여운은 며칠이고 지속되었다.


나중에 곡성 천문대를 방문하여 알게 된 사실이지만, 푸른빛을 띠는 별은 뜨겁고 붉은빛을 띠는 별은 차갑다고 한다. 그날, 내가 본 별똥별이 얼마나 뜨거웠을지를 생각해 본다. 그 마음을 닮고 싶어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두울수록 자신을 더욱 드러내는 별들이 오늘도 반겨준다. 골짜기는 유독 편안하고, 밤하늘은 참 뜨거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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