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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Aug 01. 2023

16. 남원 길바닥에서 엉엉 울었다.

100시간에 육박한 초과 근무 시간



곡성에는 제월섬이라는 곳이 있다. 뭐,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바다에 떠있거나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은 아니다. 섬진강의 한 자락에 위치한 아주 작은 섬이고 다소곳이 연결된 다리를 통해 진입할 수 있다. 예전에 심지어는 ‘똥섬’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리 후에는 섬진강의 생태의 한 단면을 볼 수 있기도 한 작은 숲이 조성되어 있는 등 남녀노소가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기 좋은 섬이 되었다.


내가 제월섬에 처음 가본 것은 올해 초, 그러니까 곡성에서 청년마을 프로그램에 참가자로 있을 때였고, 그날은 곡성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날이었다. 아직까지 곡성으로 이사할지, 서울에 있을지, 다른 곳을 찾아볼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였다.


안개가 잔뜩 낀 섬진강변도로를 달리다 차가 세워졌고, 그곳이 제월섬이었다. 그날, 섬은 참 하얬다. 잔뜩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얼어붙어 있어, 온통 하얀 섬이었다. 사람의 발자국이 없는 곳으로 걸어가면 눈밭으로 발이 푹푹 빠졌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그 섬에 그렇게 자주 가게 될 것이라고는.



4월 내내 제월섬에서 트리클라이밍 수업이 있었다. 거의 매일같이 제월섬으로 출근도장을 찍어야 했다. 아침에는 기온이 제법 쌀쌀한데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면 어느새 얼굴은 상기되어 있고 햇빛이 점점 거세어져갔다. 5월 중순에는 그곳에서 큰 행사가 치러졌다. 그 행사를 위해 5월 초 또한 온통 제월섬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자연 곁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봄을 보내고 있지만, 내 몸은 그다지 그걸 반기지 않았다. 햇빛 알레르기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갔고, 제월섬에 사는 온갖 곤충들에 자꾸만 물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복면 마스크를 눈 바로 아래까지 올려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팔에는 손등까지 덮는 토시를 꼈다. 나름 완전 무장이라고 생각했지만, 결코 무장이 될 수는 없었다.



피부가 겪는 고통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침 8시에 사무실에 모여서 제월섬으로 이동한 후 시작된 작업은 해가 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행사의 주된 콘텐츠는 숲에서 가족들이 모여 놀 수 있는 밧줄놀이터와 재미있는 방법으로 나무를 올라가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힘을 써가며 설치 작업에 임해야 했다. 무거운 장치들을 나르는 것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힘을 써야만 했다. 해는 왜 이렇게 뜨거운지 5월 초였지만 마치 7월이라도 된 것처럼 더웠다.


하루 온종일 밖에서 보내면서 땀은 땀대로 흘리고 근육은 근육대로 썼다. 3월 실내 수업과 4월 실외 수업을 통해 몸 쓰는 것을 서서히 가동하기는 했지만, 온종일 이렇게 밖에서 몸을 쓰고 있자니 미칠 노릇이었다.



수목관리 및 설치 작업이 한창 이루어지다가, 아니나 다를까 피부에 이상반응이 생기고 말았다. 너무나 간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무자비하게 쏟아지던 햇빛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간지러움이 폭발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어떻게든 정규 일과 시간은 마치려고 했지만, 사실 정말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야외 작업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고, 차마 다 끝내지 못한 다른 작업들을 하러 사무실로 넘어가는 날이 있었다.


사무실로 이동하면서 간지러움은 더욱 커졌다. 손목의 벌레 물린 자국부터 시작된 간지러움은 팔꿈치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온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자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내가 더 중요하지, 회사 일이 더 중요한가? 내가 일단 살고 봐야지!


곡성에는 피부과가 없기 때문에, 바로 남원으로 넘어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상사에게 조퇴를 이야기했다. 하루종일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나의 이 긴급한 결정에 대답을 머뭇거리는 그녀의 태도에 더욱더 확신했다.


역시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결국 나는 뛰쳐나가다시피 사무실을 나갔다. 이전에도 한 번 급하게 간 적이 있던 남원의 유일한 피부전문의가 계시는 피부과로 향했다. 곡성 터미널에서 남원행 시내버스를 타고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을 이동했다. 땀에 절었던 작업 티셔츠와 추레한 바지, 그리고 더러운 운동화를 신은 채로. 그래도 자신만만하게 진단과 처방을 내려주던 그 전문의 선생님을 곧 만난다는 생각에 그런 거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느릿느릿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는 도시에 접어들었고, 몇 번의 정거장을 거친 후 터미널에 도착했다. 네이버지도를 보고 피부과 건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데, 거짓말이지? 왜 불이 꺼져있는 건데? 나는 서둘러 내가 지금껏 보고 있던 네이버지도를 통해 표시된 업체 정보를 쳐다보았다. 분명히 영업 중이라고 되어있지만, 병원 앞에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전화를 걸어보았다. 누군가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을 놓지 못한 채. 하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남원 유일의 피부전문의가 진료하는 곳이라는 통화연결음만이 지겹도록 반복될 뿐이었다. 피부과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나처럼 피부과를 찾고는 에라이~ 하는 표정으로 돌아가는 다른 손님도 있었다. 허탕 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건, 글쎄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가려운 오른쪽 팔을 왼손 팔로 겨우 부여잡고는 울분이 터지는 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아직 6시가 되려면 시간이 좀 남아있으니 다른 병원에 연락을 해봤다. 피부과 전문의는 한 곳뿐이지만 그래도 피부 진료를 보는 곳은 좀 더 있으리라 생각했다. 일단 내 위치 기준 가까운 곳들부터 전화를 시작했다. 휴진일인 곳 한 곳, 피부과 진료는 보지 않는다는 곳 한 곳, 그리고 세 번째로 전화한 곳은 내게 오라고 했다. 오라고! 그래요 갑니다 지금!


나는 다시 솟아난 희망 한 줄기를 타고 서둘러 그 병원으로 이동했다. 종합병원이었는데, 내 증상을 듣고 오라고 한 거 보니 그래도 피부 진료를 간간히 보긴 하나보다 싶었다. 종합 병원 치고는 대기 시간도 길지 않아서 나는 금방 의사와 대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했다.

“아니, 그래서 이게 어떤 증상이냐구요 선생님.”


의사는 내가 만났던 피부과 의사들과는 사뭇 달랐다. 적어도 이게 무슨 증상으로 보인다는 말도 없었고, 모른다는 말 대신 나한테 왜 이렇게 긴장하고 걱정하느냐는 말 따위나 늘어놓았다. 심지어 그녀는 검정 펜을 들더니 내 팔에 붉게 번진 부분을 따라 선을 그었다. 이 부분보다 줄어드는지 늘어나는지 봐야 한다고 덧붙이면서. 나는 그런 그녀 앞에서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곤 약국에서 누구나 구할 수 있는 (물론 처방전이 있으면 조금 더 저렴하지만) 연고와 알레르기 약을 처방해 준다고 했다.


“약에 항생제가 들어가나요? 제가 항생제 센 걸 먹으면 설사가 심해서요.”

나는 늘 어떤 병원에 가도 약 처방 단계에서 하는 말을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이 나를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게 했다.

“지금 이거 피부 가려운 거 빨리 낫는 게 중요해요? 설사 안 하는 게 중요해요?”


의사와 싸우다시피 하고 난 그 값으로 나는 만원 가까운 진료비까지 내야 했다. 병원 밖으로 나오며 나는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렸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남원의 어느 길 한복판에서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마구 흘려대었다.


이렇게까지 피부가 뒤집어지는 상황이, 곡성에는 피부과가 없어서 옆 동네 남원까지 오게 된 이지경이, 휴진일이라고 제대로 표시를 안 해놓은 네이버지도가, 전화라고 한 번 해보고 올걸 하는 후회가, 그냥 나는 왜 여기에서 남들 다 뜯어말리던 귀촌이란 걸 해서 이러고 있는 건지. 참았던 온갖 감정들이 터져버렸다. 나는 버스 정류장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눈물을 훔쳤다. 부어오른 팔 만큼이나 얼굴이 뜨거워졌다.


엉엉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피부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문을 닫은 피부과가 문을 여는 것도 아니었고, 기분이 나아지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렇게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참 서러웠다.



이틀 뒤는 두 번째 월급날이었다. 월급날은 왜 이렇게 천천히 다가오는지 늘 아이러니하다. 직장인의 고비인 3, 6, 9의 첫 시작인 3달이 다가오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은 두 번째 고비인 6번째 달, 아니 거의 9번째 달과 맞먹었다.  


고작 두 번째 월급을 받고 일주일 뒤, 몸과 영혼을 갈아 넣었던 그 행사가 비로소 끝이 나고, 끝난 뒤에도 이틀 동안 철거의 시간을 가졌다. 행사 종료 후, 난 나의 근무일지를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나의 초과근무 시간 때문이었다. 아무리 고된 날들의 연속이라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 싶었다. 누적된 초과근무시간은 자그마치 총 94.5시간이 되어 있었다. 이제 고작 월급 두 번 받았는데 100시간에 육박한 초과근무라니? 내가 이러려고 곡성에 왔나 하는 자괴감도 고개를 못 들 정도로 그저 힘이 쭉 빠졌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두 눈을 씻고 다시 봐도 그 시간이 맞았다.


남원 길바닥에서 다 울어버려서인지 더 이상 분노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일단은 좀 쉬어야지, 그리고 이렇게 갈아진 다음에 나오는 회사의 태도를 보아야지 싶었다. 큰 일을 잘 마쳤다는 기쁨보다는 그냥 너무 힘들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며칠 뒤 광주의 한 피부과를 가서 그때 잔뜩 부어올랐던 팔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붓기는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간지러움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피부과 의사는 ‘바이러스가 림프샘까지 감염된 경우’라고 했다. 왜 곡성에 없는 피부과 갈 일이 이렇게나 많이 생기는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해도 이 상황이 쉽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곡성에서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며 살고 일한 지 두 달 반, 내가 얻은 것은 햇빛 알레르기와 미칠듯한 근육통, 그리고 넘쳐나는 초과근무 이 세 가지였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당장 눈앞의 큰 것들이기 때문에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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