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뿐이겠어?
새벽에 눈을 뜨는데 평소와는 확 달랐다. 안구건조증 때문일까? 아침마다 인공눈물을 양쪽에 세 방울씩 떨어뜨려야 눈을 편하게 뜨곤 한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양쪽에 다섯 방울씩 뿌려도 오른쪽 눈은 여전히 뜨는 게 편하지 않았다. 이물감이 잔뜩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전날부터 그랬다.
전날에는 육안으로 확인되는 이상한 점이 없어서 그저 그러다 말겠거니 했다. 그런데 퇴근 후에 급 회식이 잡혀 치킨집을 갔었다. 치킨만 먹기는 또 힘드니 맥주를 함께 벌컥벌컥 마셨던 게 화근이 되었나. 거울을 보니 어제와는 확연히 다르게, 눈두덩이가 잔뜩 부어있었다. 눈두덩이에 가득 뭔가가 들어차 있었고, 매우 땡땡했으며, 눈을 감았다 뜨는 것도 아팠다.
슬쩍 보면 눈을 맞기라도 한 것 같아 보였고, 계속 뚫어져라 보니 너무 속상해서 쳐다보기 힘들었다. 아니 내 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람. 이게 바로 다래끼라는 건가?! 눈다래끼는 생전 나본적도 없어서 더 당황스러웠다. 나는 서둘러 인터넷에 눈다래끼에 대해 검색을 했다. 그리곤 아무래도 안 되겠지 싶어 안과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도에 안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어라? 이상하다? 왜 곡성 안과를 검색하는데 남원 안과가 뜨는 거지..? 설마… 아니, 진짜??
안과가 없던 것이었다. 지도는 그저 그나마 가까운 남원에 있는 안과를 검색해서 보여주었을 뿐이지, 지도는 잘못이 없었다. 집에서부터 20km. 차가 없는 나에게 옆 도시로 넘어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도움을 받아 이른 아침 남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 차 안에서 들었던 나의 불안은 단순히 눈 상태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앞으로 어쩌지, 안과에 비록 많이 갈 일이 없다고는 하지만 라섹을 한 눈이다 보니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안과가 가까이 없었구나, 애초에 왜 이런 것은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미세한 자책 뒤로 따라오는 불안이었다.
그날 안과는 무사히 다녀왔다. 당분간 금주하라는 의사의 당부와 함께 점안액 두 종류과 복용 약을 처방받았다. 며칠간 약을 넣고 먹으니 괜찮아졌다. 당분간 안과 갈 일은 없겠지 싶었다. 이참에 곡성에 없는 병원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아놓아야겠다 싶었다. 병원을 자주 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일은 늘 모르는 거니까, 일상에서 자주 갈만한 곳들을 검색해 보았다.
정형외과나 한의원 오케이, 치과도 오케이, 그리고 큰 종합병원이 하나 있으니까 응급실 오케이. 이사를 하고 나서야 이런 것들을 따져보는 내 모습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살아온 곳들마다 병원이 가까이에 있었으니 이런 것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 자체를 못해보았던 것을.
아 그런데 피부과가 없다. 또 하나 산부인과가 없다. 물론 더 찾으면 없는 병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일단 이 두 가지에서 멈춰버렸다. 물론 인구소멸지역이고 아이를 낳는 인구는 더욱 줄어들고 있는 지역이니까 산부인과가 없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주 찾을수록 좋은 곳이 산부인과라고 하는데 또 근처에 없다니까 그게 또 염려가 되었다.
피부과는 내가 치과만큼이나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가끔 접촉성 피부염이나 알레르기 반응이 피부로 고스란히 나타나곤 해서 더욱 긴급하게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피부과를 가려면 일단 곡성군을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그게 정말 내 앞에 펼쳐진 현실이라는 것이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내가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닌 이상, 그저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저, 산부인과나 피부과 그리고 안과도 마찬가지로, 갈 일이 그리 자주 생기지 않기를 온 마음을 다해 빌어보았다.
그리고 몇 주 뒤, ‘제발!’ 했더니 보란 듯이, 피부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트리클라이밍 수업은 실내에서 진행하지만 고학년은 야외에서 진행을 한다. 그것도 숲에서. 자연을 너무나 사랑하고 늘 자연 가까이에 있고자 하는 내 마음과는 달리 내 몸은 아직 자연 속에서 그리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특히 피부가 그러했다.
야외 수업을 진행한 어느 날, 오후에 피부에서 열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목에서부터 뜨거움이 솟구쳤고, 이내 간지럽기까지 했다. 회사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팩을 계속해서 가져다 대며 긴급 상황을 무마해보려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가라앉겠지, 가라앉아야지, 하며 애타는 나의 마음은 몰라준 채 목 피부는 더욱 붉어졌다. 곡성에 피부과가 있었으면 당장 갔겠지만, 남원까지 가는 것도 부담이다 보니 당장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응급처치를 해보자는 생각이 더욱 컸다.
퇴근 후 힘없이 쓰러져있는데 목 피부만큼은 에너지 넘치게 계속해서 더욱 열감을 쏟아내었다. 간지러움을 참는 것이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던가, 나는 지도를 뒤져 가까운 약국으로 전화를 했다.
“사장님, 몇 시까지 하세요?”
“이제 곧 문 닫을 거예요, 빨리 오셔.”
약국으로 달려가서 약사에게 나의 목 피부를 들이밀었다. 울먹거리는 소리로 야외 수업을 하다 이렇게 되었고 너무 간지럽고 뜨겁다고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약사는 알레르기 반응이라며 바르는 연고와 먹는 약을 권해주었다. 스테로이드성이고 뭐고를 따질 겨를도 없었다. 뭐가 되었든 이 간지러움을 멈춰줄 수만 있으면 집에 가는 내내 앞 구르기를 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바르고, 먹고 하니 약효과가 그래도 금방 들었다. 역시 피부약이 세긴 센가 보다. 그래도 진정이 된 피부를 보니 마음이 꽤 평온해졌다. 가라앉은 마음으로 나는 온라인으로 긴급 알로에젤을 주문했다. 가장 빨리 도착하는 것으로. 그리고 고르고 골라 성분이 세지 않은 선스틱도 주문했다. 야외수업 때마다 늘 지니고 다니며 계속해서 덧발라야겠다고 다짐하며.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 다르고. 그렇게나 끔찍하게 간지럽고 뜨거워서 몸부림치던 시간이 지나자 이것 또한 이렇게 버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더 먹어야 했지만 이미 벌써 다 나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잠든 사이 알레르기 반응이 내 몸에서 영영 빠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피부과를 앞으로 그렇게나 자주 가게 될 것이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