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출근길은 즐겁네요.
이사를 하고 풍성하진 않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 정도의 공간은 만들어놓았다. 이삿날로부터 정확히 삼일 뒤, 첫 출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새로운 집에 적응을 하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꼬박꼬박 월세를 내기 위해서라도 빨리 출근을 해야 했다.
2월은 새로운 곳에서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마무리를 짓고, 3월은 새로운 직장에서의 첫 근무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의 출근에 목이 조금은 메어오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틀만 출근하면 주말이었다. 이틀정도야 분위기 파악도 하고 직원들이랑 인사하고 성향도 파악하며 지내다 보면 후딱 지나갈 것 같았다. 그리고 주말에는 대전에서 친한 동생이 놀러 오기로 되어있었다. 그것을 기대하며 첫 출근에 대한 부담을 애써 덜었다.
나도 이사를 했고, 회사도 이사를 막 한 뒤였다.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타이밍 좋게 이사를 했는지, 내 입장에서는 참 다행이었다. 읍내는 아니었지만 사무실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 (나의 적당히 빠른 걸음으로 25분 소요)에 있다는 것도 참 좋았다.
이사를 막 한 직후라 그런지 사무실이 완벽히 정리가 되어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다른 것보다도 인터넷 설치가 아직 되어있지 않아서 당장 근무를 시작하려면 카페에 가야 했다. 회사 대표와 인터뷰를 가졌던 카페로 다 같이 이동했다. 혹시나 해서 노트북을 챙겨 온 건 다행이었다. 내가 지급받은 회사 노트북은 딱 봐도 너무나 구형이고 굉장히 무거워 오랜 기간 들고 다니면 내동댕이쳐버리고 싶은 제품이었다.
출근한 지 아마 한 시간도 안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대표가 나를 따로 불러내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응했다.
“메이 혹시 이번 주말에 출근 가능해요?”
초롱하려던 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대전 친구와 보내려 했던 미래의 시간이 넘실거렸다. 당황스러움에 눈을 끔뻑거리다 대답했다.
“약속이 있긴 한데, 혹시 어떤 일 때문에 그러세요?”
대표는 나에게 주말에 있을 수목관리 현장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수목관리가 그때까지만 해도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몰랐고, 사실 당장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거보다는 그게 도대체 몇 시부터 몇 시까지이고, 어디이고 그런 것들을 알고 싶을 뿐이었다.
“아, 이틀 다 인가요? 혹시 제가 꼭 참여해야 하는 작업인가요?”
이틀 다, 아니 사실은 추후에 추가로 더, 그래서 총 4일에 걸쳐 작업해야 한다는 것, 곡성 바로 옆의 구례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작업이 이루어질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끔찍했다. 1년 4개월 만에 직이 되었는데, 출근하고 처음 맞는 주말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한다니. 대표는 내가 함께 해주어야 일손이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고, 나는 그걸 거절할 수 없었다.
“아, 일정이 있긴 한데, 조정해 볼게요. 참, 주말 근무하는 거는 대체휴가로 쉴 수 있는 거죠?”
그렇게 나는 첫 주말을 현장 근무를 하며 힘들게 보냈다.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앉아있을 시간도 없었고, 힘을 또 어찌나 써야 했는지,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긴장하며 작업이 들어갔기에 다소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흘러가는 분위기 파악하랴 작업 파악하랴 정말 고생이었다.
그렇게 나는 출근하자마자 9일 연속으로 근무를 했다. 그 9일 중 4일이 현장 작업이었다.
그리고 출근한 지 3주가 지났을 때, 나는 이미 초과근무 30시간을 넘긴 뒤였다.
초과근무만 쌓이는 게 아니었다. 나의 피로감은 말할 수 없이 쌓여갔다. 일과를 마친 후 집에 가면 쉬기 바빴고,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하기 바빴다. 내가 곡성에 있는지, 서울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글을 쓰려고 가져다 놓은 작은 테이블은 베란다에서 주인 없이 홀로 외로워하고 있었다. 그 베란다 너머로 별이 보일리도 없었다. 내가 진짜로 곡성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출근길뿐이었다.
출근길은 참 예뻤다. 봄이 천천히, 그러다 성큼 다가와버렸다. 어느덧 걷기에 딱 좋은 날씨가 되어있었다. 곡성천을 따라 걸으며 서울에서의 출근길을 떠올렸다. 지옥철. 지하철에 갇히고 사람 사이에 또 한 번 갇히는 신세였다. 내가 숨 쉴 수 있도록 허락된 공간은 협소했지만, 불평한다한들 들어주는 이 없었다. 다들 그러고 사니까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알았다.
곡성천에 흐드러지게 꽃나무 아래를 지나갔다. 에어팟을 통해 들려오는 노래도 완벽했고,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두말할 거 없이 아름다웠다. 무엇보다도 그 풍경이 사람으로 꽉 찬 것이 아니라, 나 홀로 즐기고 있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고요한 상태라는 게 참 좋았다. 곡성의 아침은 조용했고, 분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짧은 출근길이 끝나면 또다시 많은 업무량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때만큼은 그저 그 시간을 즐겼다. 지옥철을 추억하며 사뿐히 지르밟는 길 위에서,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곡성에 있었다.
쌓여가는 초과근무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곡성을 제대로 즐길 새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곡성에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려고 내가 곡성에 왔나 하는 생각을 안 한 것 또 한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곡성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은 가까이에 있었다. 곡성의 아름다운 봄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봄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출근했고 사무실에서 보이는 곡성의 낮은 하늘을 자주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서울에의 빽빽한 건물들 사이로 올려다보던, 작은 하늘이 떠올랐다. 지난 시간의 나 또 한 서울의 어느 구석에 작게 구겨져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하늘은 참 가까이에 있었다. 나 또한 기지개를 쫙 켜며 온몸으로 그 하늘을 담았다. 조심스레 움켜쥐고 싶은 선명한 구름을 오래도록 쳐다보며, 난 그렇게 곡성을 음미했다. 서울이 조금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