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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Jun 16. 2023

12. 강남언니ㅡ 곡성군민 되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 너무 많아.


외국에 살 때에도 집을 여러 번 옮겨 보았고, 언니랑 둘이 이사도 해봤지만 그럼에도 이사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짐이 많아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채워야 할 것들이 많아서 골머리였다. 그저 거주지를 옮기는 것뿐인데도 이래저래 신경 써서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메모를 해 가면서 하나씩 준비하려 하니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졌다.


전입신고는 이사하기 며칠 전에 해두었다. 마음이 뭐가 그리 급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서류상 곡성으로 주소지를 옮겨두면 마음이 편할 것만 같았다. 집을 알아보고 고민하고 불안해하고 결심하고 하던 날들이 길었던 것에 비해 전입신고는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게 끝나버렸다. 허무할 지경이었다. 심사라도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이상했다. 언니랑 함께 전입신고를 했을 때와는 정말이지 다른 세상 일처럼 느껴졌다. 무게감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전입신고가 마무리 된 후 주민등록증을 건네받았다. 민증의 뒤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주소 변경 이력란을 보자 괜히 웃음이 나왔다. 강남구에서 바로 곡성군으로 바뀐 나의 주소를 보자 괜스레 마음이 이상했다. 아쉬울 건 없었다. 아직은 잘 한 선택이라고 자부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혼자만의 자취를 이렇게 꾹꾹 찍어내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사하는 날이 되었다. 서울에서 가져온 짐과 광주에 두었던 짐이 합쳐졌다. 그래도 얼마 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당장 필요한 것만 가져왔는데, 다행히도 부모님이 이사 다음 날 서울 집에 들러서 내 짐을 더 가져다주시기로 하셨다. 트럭을 부른 것도 아니고, 입주 청소를 부른 것도 아니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럴수록 더 단단히 할 일들의 목록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피곤하기도 했다.


먼저 부동산에 갔다. 잘 정리된 계약서를 받아 들고 입금을 하기 시작했다. 많지 않은 돈을 모아둔 통장에 송금 금액 제한이 걸려있는 것도 당일에 알았다. 분할로 송금을 하면서 돈이 숭덩숭덩 빠져나가는 것을 보니 괜히 마음이 찌릿했다. 혼자서 지낼 수 있는 조건의 첫 번째가 돈임을 피부로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순식간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통장의 몰골을 보고 조금은 슬펐지만, 내가 지낼 나만의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에 이내 뿌듯함이 더 커졌다.


집으로 가서 얼마 되지 않은 나의 짐들을 옮겨두었다. 전 세입자가 본인의 짐으로 꽉 채웠던 공간이 휑해진 모습을 보았다. 캐리어 두 개를 아무렇게나 밀어 넣고 재빨리 다음 할 일을 소화해야 했다. 바로 월세지원금 신청.


곡성에 사는 청년이라면 최대 1년 동안 월세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한 달에 10만 원씩 지원되고 3개월 단위로 받는 것이다. 신청기간과 이사하는 날이 맞아떨어졌고, 나는 미리 준비해서 출력해 둔 서류들을 가지고 인구정책과에 갔다. 학교 다니면서도 장학금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코로나 지원금도 제대로 받아본 적 없었는데 이런 걸 다 받아보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잘 신청되었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다시 집으로 부랴부랴 이동했다.



다음 일정은 일하기로 한 회사와의 줌 인터뷰였다. 회사에서 임금지원사업을 받아서 일 년 간은 그 지원금으로 내 월급을 주는 형태로 고용한 것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사업을 진행하는 기관과의 삼자대면 인터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내가 줌 화면에 대고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문제없이 계약서를 쓰게 되는 것이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삿날과 겹친 이 일정은 나에게 약간의 스트레스를 얹어주었다.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연락이 와서 지금 줌 미팅이 가능하냐고 내게 물었다. 다행히 집에 막 도착한 시간이었고, 나는 화상 면접에 응할 수 있었다. 뭐 짜고 치는 마피아 게임의 마피아 측근이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떨지 않아도 예의상 조금 떨기도 했다. 원체 말이 빠른 나였기에 질문에 대한 답도 빠르게 받아쳤다. 그래서인지 면접이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끝나버렸다. 원래 예정되었던 시작 시간보다 빨리 인터뷰가 끝났다. 인터뷰 끝나는 예상 시간에 맞춰 신청해 두었던 전남도시가스 설치도 다행히 오전 중에 건물 외부에서 처리하고 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후, 이제야 한숨 돌릴 수 있는 건가. 물론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에세이 출간 때문에 계속해서 할 일들이 나를 압박해 왔지만 잠깐의 여유는 강제적으로라도 가져야만 했다. 작은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이차선 도로와 그 길 끝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 보였다. 2월의 마지막 주, 날은 추웠지만 햇빛은 찬란했다. 한적했지만 비어있는 모습을 아니었다. 내 집도 그러했다. 헐렁해 보였지만 앞으로 채워질 많은 기억들이 자리 잡을 곳이었기에 단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시 방 사이즈 어떨지 몰라 선뜻 침대나 매트리스를 사지 못했다. 광주에서 빌려온 휴대용 매트가 있었다. 텐트 안에 깔고 자는 그런 용도라도 했다. 방 한가운데에 깔아놓으니 뭔가 분위기가 확 죽었지만 그래도 맨 땅에 자는 것보다야 나았다. 생각보다 그리 불편하지도 않아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을 때까진 당분간 이렇게 자도 괜찮겠다 싶었다.



다음날,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잠에서 깨어났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조금은 어색했다. 자기 전과 같은 각도로 방 안을 구석구석 쳐다보고는 있지만 무언가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하루 만에 집과 친근해질 거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베란다 창은 남쪽, 부엌 창은 동쪽으로 나있다 보니 아침이 되자 집 안이 아주 눈이 부셨다. 억지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양 옆의 불투명한 미닫이 문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나는 힘차게 일어났다.


그날은 부모님이 서울에 있는 내 짐을 가져다주셨다. 서울의 작은 내 방에서 쓰던 테이블과 의자도 함께 왔고, 내가 좋아하는 무드등과 맥주잔, 등쿠션도 나의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은 상주 집에서 또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싸다 주셨다. 순식간에 냉장고까지 채워졌다. 얼려놓고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것들, 맛있는 엄마표 반찬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우리 집 달걀까지.


“이야 여기 그래도 건물도 많다야”

부엌의 창 너머로 낮은 건물들을 쳐다보며 아빠가 이야기했다.

“그럼 아빠! 이래 봬도 여기는 읍내라고. 있을 거 다 있고.”

사실 그때까진 있는 것만 생각했지 없는 것을 굳이 찾을 일이 없긴 했지만 말이다. 괜히 더 당당하게, 마치 곡성군 홍보대사라도 된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아빠 그리고 여기 KTX도 다닌다고!”

아빠는 무슨 역이냐고 물었고, 곡성역이라고 하니까 진심으로 놀라워하셨다. 밖에 나가서 맛있는 식사라도 부모님께 대접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굳이 국을 끓여서 집에서 먹자고 하셨다. 이럴 때 엄마밥이라도 잘 먹으라고 했다.

그날의 국은 냉이된장국.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사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이기도 하다. 냉이된장국 냄새가 나의 작은 집 안에 솔솔 퍼졌다. 더불어 부모님의 큰 애정과 작은 걱정의 냄새까지 맡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가시고, 나는 근무계약서를 쓰러 입사하게 될 회사로 향했다. 집에서 걸어서 25분 정도의 거리였다. 나는 일부로 천을 따라 걸었다. 곡성이 참 예뻤다. 기분이 좋았고, 이 길을 앞으로 계속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작은 설렘이 일렁거렸다. 물론 그때는 그 길을 걸으며 즐길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일들이 내 앞에 놓일 거라곤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전기나 수도 같은 거는 사실 그때까지 어떻게 확인을 하고 돈을 내는지 잘 알지도 못해서 챙기지도 못하고 있었다. 사야 할 것들을 적어 내려가면서 혼자 사는데 뭐가 이렇게 필요한 게 많은지 심각해지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것들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갔다. 하지만 버겁지는 않았다. 그것보단 혼자 하나씩, 차근히 해나가며 그것들을 클리어해 나갈 것을 기대하는 편이 나았다.


이렇게 조금씩 홀로 서면 될 것이다. 연고도 없는 이곳에 나 홀로 남겨진 것도, 숨어 들어온 것도, 어딘가에서 도망쳐 온 것도 아니었다. 난 그저 새로운 이 땅에서 뜨거운 이 햇빛을 맞으며 또 다른 출발을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겨울임에도, 참 뜨거운 햇빛이 뜨끈하게 곡성군민이 된 나에게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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