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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May 26. 2023

10. 시골에서 일 구하기

다짜고짜 일자리센터에 들어갔다.


집을 구하는 와중에 일에 대한 걱정도 놓을 수가 없었다. 집 구하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일 구하기가 생각보다 쉬울 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곡성 내에서 꽤 이름 있는, 청년층도 많이 있는 회사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서로가 원하는 일이나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도 여러 차례 나누었다. 마음이 많이 가기도 했고, 그곳에서 일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하지만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업무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대신 나에게 일단 돈을 벌긴 해야 할 테니,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다른 업무를 제안했다.


사람 마음이 참, 아르바이트란 말을 들으니 평소 개의치 않던 나이도 따져보게 되고, 귀촌해서 고작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다는 걸 주변에 알리는 모습이 영 찝찝했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2월 초 어느 금요일, 곡성에 있는 비빌언덕 25란 곳을 찾아갔다. 비빌언덕이란 이름은 청년들이 비빌 수 있는 공간이 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찾아갔다. 나도 앞이 캄캄하니 어떻게 좀 비벼볼까 하고. 내가 모르고 있고, 놓치고 있는 정보가 있을까 해서.


새로 지은 건물이라 들어갈 때부터 느낌이 남달랐다. 새집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잘 지어진 건물 내부는 조용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그곳은 깔끔하기도 했고 텅 비어 보이기도 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귀농귀촌지원센터였다. 나는 그 앞에서 고민을 하다가 그곳을 지나쳤다. 다음으로 발견한 곳이 청년정책과였다. 귀농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닌 이상, 이곳이 조금 더 나에게 맞는 정보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상담하는 공간과 사무실로 분리가 되어있었다. 가장 먼저 상담실 테이블 위의 다과가 눈에 들어왔다. 배가 무지 고팠기 때문이다. 과자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직원 한 명이 나왔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제가 귀촌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모르는 게 많습니다. 혹시 이것저것 정보를 좀 알 수 있을까 해서요.'로 시작한 대화는 '혹시 읍내에 집을 구하고 있는데 어디 아시는데 좀 없나요?'로 이어졌다. 심지어 그 직원도 독립하려고 집을 구하고 있는데 마땅한 집이 없다며 나를 경쟁자 취급을 했다. 나는 그쯤에서 웃으며 과자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과자 속 초콜릿이 입 안에 녹아드는데 아,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때 눈을 돌리자 옆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살짝 안 쪽으로 들어간 입구가 인상 깊었다. 그곳은 일자리 센터 비슷한 곳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이용해 본 적이 없던 일자리 센터. 실업급여를 받을 때에도 그런 곳은 그저 명목상 존재하고 제대로 된 일자리나 구해줄까 싶었던, 그런 곳이었다. 나는 내 앞의 직원에게 물었다.


“저기 옆 방 가면 일자리 구할 수 있나요?”

내가 묻고도 조금은 부끄러운 질문이었다. 뻔한 답이 돌아올 텐데도 그렇게밖에 물어볼 수 없는 내 처지도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 직원은 나에게 선물이라며 비빌언덕 25가 인쇄된 아이폰 파워뱅크를 건넸다. 파워뱅크보다 과자가 더 급했지만 감사히 받고 나는 옆 방으로 향했다.



옆 방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서너 대의 컴퓨터가 있는 걸로 봐서 그 정도의 직원이 상주하는 것 같았지만 직원은 한 명뿐이었다. 긴 머리의 직원 분은 나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기대하지 않았던 누군가가 불쑥 나타난 것 같은 표정에 나는 괜스레 방해꾼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곡성으로 귀촌을 준비 중인데 아는 게 많지 않아서요. 혹시 마땅한 일자리가 있을까요?”

직원 분은 이런 사람을 마치 처음 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나를 자리에 앉히고 지원서 비슷한 것을 내밀었다. 지원서에는 나의 기본 인적사항이나 경력 등을 적도록 되어 있었다. 직원분은 내가 졸업한 대학을 쓸 때부터 나에게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연예인 많이 봤겠어요!-라며 호응을 해주었고 나는 아이고 그럼요!-라고 맞받아쳐주었다. 그리고 장롱면허인데 운전면허가 있냐고 써야 되는지, 정확한 입, 퇴사일이 기억 안 나는데 월만 써도 되냐는 등의 시시콜콜한 질문을 몇 차례 건넸다.

 

“혹시 몸 쓰는 거 좋아하세요?” 그녀가 물었다.

“네? 아이고 그럼요. 저는 체력이 좋답니다.” 당황스럽지만 꿋꿋하게 교과서다운 답을 내놓았다.

직원 분은 나무를 타는 등의 활동을 하는 기업의 이야기를 했고, 나도 들어본 바가 있는 곳이라 괜스레 반가웠다. 그녀는 그곳에 직원을 채용하는지 물어봐야겠다며 나를 설레게 했다. 그리곤 나에게 핑크솔트를 선물로 주고는 문 앞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제가 지금 시간이 여유로우면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빨리 끝내야 할 일이 있어서.. 죄송해요!”

느낌이 괜스레 좋았다. 일자리 센터를 나와서 나는 막 지어진 건물의 단정함을 조금 더 느꼈다. 서울의 공유오피스처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커피 머신이 있어 오후 늦은 시간임에도 커피를 진하게 한 잔 내려 마셨다. 그리고 읍내가 내다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서 커피를 홀짝거렸다.



주말이 지나고 바로 월요일에 일자리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그 나무 타는 기업 소개서를 메일로 보냈으니 확인하고 지원 의사가 있으면 이력서를 달라는 연락이었다. 옳타커니! 하루종일 일정이 있던 나는 저녁에 술을 마시고도 자정이 넘은 시간에 이력서를 수정했다. 보내고 나니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숨을 헐떡거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그 회사 대표와 곡성 어느 카페에서 인터뷰를 갖게 되었다. 사실 연락이 바로 오지 않아 일자리 센터에 나름 귀여운 재촉 전화를 걸기도 했었다.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이 오지 않는다며. 그러고 나서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이사 준비 중이어서 정신이 없었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오호, 이사라니. 나도, 이 회사도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괜히 매칭을 한 번 더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길어야 삼십 분 이야기하겠지 싶었던 자리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야기를 마치고 시간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서로를 알아가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모자란 시간도 아닌 것 같았다. 또다시 조직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 달가운 것만은 아니었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지 싶었다.


내가 일하게 되면 맡을 업무는 교육팀이었다. 곡성군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교과연계과정으로 트리클라이밍 수업을 하는데, 수업 운영이 내가 맡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수업뿐만 아니라 수목관리 현장 업무도 종종 있어 보였다. 사무 업무도 물론 많아 보였다. 한마디로 몸과 머리를 다 쓰는 일. 쉬워 보이진 않았지만, 흥미로워 보이기도 했다. 재미있으면 계속 도전해 나가는 나에게는 어쩌면 딱이었다.


나는 그날 바로 회사에 연락하여 함께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 두었다. 그리고 얼마 뒤 회사에서도 나와 함께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완벽하게 개운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조금은 소화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 나이에 신입으로 들어가서 전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해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살을 맞대고 일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회사와 통화를 마치고 나자 어떻게 알았는지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한 달 만에 하는 엄마와의 통화였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귀촌 준비 상황에 대해 물어보셨다. 비로소 당당하게 할 이야기가 생긴 나는 일자리를 구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고, 대단해 우리 딸.”

엄마는 내가 차근히 하나씩 클리어해 나가는 모습에 역시 우리 딸이면 그럴 줄 알았다-고 해석하고 싶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말을 하자마자 눈에 눈물이 고였고, 목소리가 또 이상하게 변했다. 그래서 서둘러 전화를 끊어야 했다. 엄마도 고맙다는 기대치 못했던 나의 말에 놀란 기색이었다.


다시 직장인이 되기 전에 이 백수의 삶을 맘껏 누려했기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당시 텀블벅을 통한 출간 준비 막바지로 정신은 없었고, 이래저래 준비할 것이 많았지만 그래도 또 언제 영위할지 모르는 백수의 삶을 열심히 즐기기로 했다. 끝이 보이는 귀촌 준비하는 청년의 백수 라이프는 하루하루가 참 짧았고, 기대와 불안감이 혼재했고, 그럼에도 매 순간 심장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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