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맹 Apr 23. 2023

09. 시골에서 집 구하기 2

막막하다, 막막해.


교차로를 뒤져서 읍내의 투룸을 하나 보러 가기로 했다. 앞서 첫 번째로 보러 갔던 원룸은 정말 형편없었다. 읍내에서 거리가 상당함에도 싼 가격에 한 번 보러 간 것이었는데, 혀를 끌끌 차며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공간이 너무 작았고, 며칠 전 방을 뺀 어느 대학생의 지저분한 행색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건물 주인과 만나서 낯선 건물로 향했다. 건물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뭔가 공사가 덜 끝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방은 2층 가장 안쪽 집이었다. 집에 들어가는데 아직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교사인데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서 급하게 방을 빼게 되었다는 게 집주인의 설명이었다.

신발장 바로 앞에 화장실이 있었고, 옆으로 가면 길쭉한 주방, 그리고 주방을 지나 문을 열면 침실이었다. 와아! 방이 생각보다 정말 컸다. 창문을 열자 산이 보였다. 답답한 건물이 보이는 게 아닌, 산이 보였다.

위치도 좋았다. 편의 시설이 모두 가까운 데다가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시끄럽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지어진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건물이라 상당히 깨끗했다.


“와, 사장님 저 여기 마음에 들어요.”

내 집을 발견할 때의 느낌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억눌려있던 기대감이 틈새를 비집고 나와 환호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여기 살기 괜찮아요. 처음 입주한 사람들도 다 방 안 빼고 계속 살고 있어요. 지내는데 불편한 건 없을 거예요. 읍내에 빌라가 진짜 안 나오거든요.”

아이고 알죠, 알죠.


사장님도 그렇게 흔쾌히 나와 계약을 하실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역시 모든 한 방에 해결되면 흥미롭지가 않다. 이런 건 조금 무난하게 지나가도 되는데,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근데 저기… 사실 지금 이 집을 노리는 사람이 있어요. 저기 공사업체에서 경리 직원이 지낼 곳을 찾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아가씨가 전화 줬을 때 그 경리 직원이 전화한 줄 알았지 뭐야…”

이럴 수가.

“아 안 돼요 사장님! 저도 지낼 곳 없어요. 제가 계약금 먼저 드리고 갈게요.”

“아니 그러지 말고, 내가 이야기 잘해서 정리할게요. 그리고 연락 줄 테니, 하루만 기다려줘요.”


다음 날 연락을 준다던 집주인은 소식이 통 없었고, 심지어 내 연락을 피하기까지 했다. 집요하게 연락한 끝에 연결이 된 집주인이 내게 건넨 말은,

“그게, 저쪽에서 너무 완강해서… 내가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볼게요.”

그냥 안된다고 해주지, 희망 고문을 시키는 것이 더욱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동시에 다른 곳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집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서 다른 집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지만, 교차로를 뒤져도 사실 아른거림을 대체할 집조차 없었다. 그러다 연락을 미루고 있던 새로 짓고 있다는 빌라에도 전화를 했다. 아쉽게도 나는 대기였다. 조금만 더 빨리 연락해볼걸 싶었지만 후회는 늘 늦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기 1번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희망 고문이 만만치 않았다. 두 개의 희망 고문의 사이에서 잔뜩 찌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짜부되면 안 돼! 하면서도 그리 힘 낼 구실을 찾지도 못했다.



새로 알게 된 분들을 통해서 교차로나 부동산에서 나오지 않는 정보들을 받기도 했다. 청년 한 명이 귀촌을 한다고 하니 생각보다 도움을 주려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참 감사하기도 하면서도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다. 이곳만의 문화이겠거니, 하며 담담히 받아들여볼까도 싶었지만 역시나 입어보지 않았던 옷은 잠깐 걸칠 수는 있어도 입고 걸어보기란 영 어색하다.


집 문제라는 것에 있어서 남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 이걸 또 어떻게 갚아나가야 할지 생각하니 막막했다. 그리고 이 문제부터 혼자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다른 것들 또한 남들에게 다짜고짜 도움을 청하게 되는 것이 습관이 될 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딱 잘라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내 친구네 집에 세주는 방이 두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곧 빌 거예요. 거기 오래 살던 경찰관이 이사를 간다고 하네. 집주인이랑 입구가 같은 것도 아니라 편하게 쓸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바로 식당이 옆에 있어 가지고 밤에 좀 시끄러울 수 있어. 광주에서 왔다 갔다 하기 힘들면 여기 잠시 임시 거처로라도 지내면 어때요?”


임시거처를 구하는 건 글쎄, 그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등 떠밀리듯 직접 가본 그 방은 무척이나 깨끗했지만 창문을 열면 식당과 방 사이에 놓친 엉성한 담벼락이 보였다. 잠깐이라 하더라도 너무 답답할 것만 같았다.


“셰어하우스도 한 번 알아봐요. 지금은 여자 셰어하우스가 마을에 들어가 있어서, 아무래도 차 없이는 좀 힘들 거고… 아마 읍내에도 하나가 곧 생긴다고 하니까, 인구정책과에 미리 전화 넣어놔 봐요.”


셰어하우스는 곧 죽어도 싫어요!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서 내려오는 건데 이러면 곤란하지요!라고 속으로 말하며 그저, “아, 그쪽도 알아는 봐야겠어요!”라고 했다.


“읍내에 가장 먼저 생긴 빌라가 있는데, 거기 사는 우리 직원이 지금 집을 뺄까 말까 고민 중이라고 해요. 거기가 오래되어서 낡긴 했는데, 옛날 집이라 오히려 사이즈는 크게 빠졌거든요? 뭐 단신이 지내기에는 나쁘지 않을 거예요. 한 번 확실히 언제 빠지나 알아봐 줄게요. 정 안되면 우리 다른 직원이 사는 집도 곧 나갈 거긴 해요. 주택 위에 있는 방인데 뭐 나쁘진 않을 거예요.”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나쁘고 말고, 나에게 맞고 안 맞고는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빨리 집을 구해야겠다고 다짐만 했다.



다시 연락을 준다던 투룸 빌라 집주인은 역시나 연락을 주지 않았다. 집주인은 회피형 인간이 분명했다. 왜 안된다고 그냥 확실하게 말을 해주지 않는 건지! 괜히 엄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교차로에는 계속해서 같은 광고가 멈추지 않고 매일같이 올라오고 있어서 더욱 이상했다. 다시 끈질기게 시도하여 연락이 닿은 집주인은 결국 내게 실토했다. 안 되겠다고. 더 이상 나도 매달릴 힘도 이유도 없었다.


너무 쉬우면 재미없다지만, 이것 또한 재미있지가 않았다. 정말 내 집을 여기서 구할 수 있기는 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점점 자신감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전 08화 08. 아빠가 차라리 해외로 나가라고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