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오랜만에 수도권을 가게 되었다. 4달 반 만이었고, 곡성으로 이사하고 처음이었다. 행선지는 경기도 부천, 목적은 출장이었다.
부천의 어느 모텔에서 4박을 하는 동안 수목 관리 현장에서 지상 작업을 도왔다. 죽거나 위태롭게 자리한 나무 몇 그루를 제거하고 가지치기 등의 작업이었다. 허리를 여러 차례 숙였다 세우고, 무거운 잔여물들을 참 많이도 날랐다. 많은 비가 내린 직후라 모기가 들끓어서 모기 기피제를 온몸에 수시로 뿌려대고도 여기저기에 모기를 물린 출장이었다.
힘든 5일이 지나고 나는 바로 곡성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럼, 내가 서울 근처까지 왔는데 이렇게 바로 가버리면 서운하지. 초과 근무로 대체 휴가를 써서 서울에 며칠 머물게 되었다. 어떤 날은 약속이 세 개나 잡혀 저녁이 되니 목이 다 쉬어버리기도 했고, 어떤 날은 친구들과 술을 잔뜩 마시며 내가 요즘 누구와 같이 마시는 술보다 혼술이 늘었다는 걸 깨달아 아주 조금은 슬프기도 했다.
동네에는 어느덧 새로운 카페들이 생겨나 있었고, 공사 중이던 음식점도 오픈해 있었다. 늘 사람이 넘쳐나는 거리를 지나가고 언제나 복잡한 서울 전철을 탔다. 그리 여유로운 일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빡빡하지도 않았다.
토요일 아점으로 막걸리를 먹으며 여유를 만끽했고, 처음 가 본 남산골 한옥 마을은 왜 진작 이곳을 알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까지 들게 했다. 한옥 안에 전시된 그림 몇 점은 참으로 싱그러웠고, 작품 위로 6월 초의 햇빛이 찬란하게 스며들었다.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읽히지 않는 책을 부여잡고 빠르고도 느리게 돌아가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곡성으로 귀촌을 한 후 내가 가장 그리워했던 서울 집 동네의 에스프레소 바에도 갔다. 거기서는 플랫화이트 한잔을 참 예뻐하며 마셨다. 늦은 시간에 카페인 섭취는 피하는 편이지만, 또 언제 마실지 모른 그곳에서의 플랫화이트는 두 잔을 마시면 마셨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전 회사가 위치했던 혜화동도 다녀왔다. 서울 최고의 떡볶이 집에 가서 떡볶이에 순대 그리고 어묵을 먹었다. 분식집은 여전히 사람이 많았고, 역시나 변함없이 맛있었다. 야근을 할 때면 떡볶이 포장을 해다가 와인 한잔을 홀짝이며 일을 하곤 했던 날들이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났다. 낙산공원 산책을 하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후에는 대학로 거리를 걸었다. 익숙한 길이 주는 안정감이 반이었고, 그럼에도 자주 오지 못하는 곳이 되어버려 더욱 그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 반이었다.
좋아하는 카페가 워낙 많아 어디를 갈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처음 가보는 카페에 들어섰다. 잘 아는 곳의 한가운데에서 피어오르는 조금은 생소한 분위기였다. 잘 아는 과자에서 새로운 맛이 나왔는데 굳이 이걸 먹어봐야 하냐며 무시하다가, 우연히 먹게 되었을 때, 그리 나쁘지는 않네 라며 고개를 얕게 끄덕이게 되는 그런 경우 같았다.
잘 알지 못하는 동네인 동묘에도 있어보았다. 처음 가 본 동묘 시장에서 계란 토스트를 하나 사 먹었다. 얼마냐고 묻고는 천 원이라는 대답에 너무 놀라 가격을 되물었다. 맛도 좋은 천 원짜리 토스트를 잘근잘근 씹어 먹으며 시장 근처의 밥도 팔고 술도 파는 작은 가게들을 지나갔다. 메뉴판을 쓱 보고는 곡성보다 음식이 싸다며 역시 시골이라고 물가가 싼 게 아니라며 혀를 끌끌 찼다. 작은 골목들 사이로 넘쳐나는 도시의 소리가 빼곡히 모여들었다가 헐겁게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곡성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서울에 더 있고 싶다는 아쉬움은 없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다가왔지만 그래도 집에는 가고 싶었다. 이제는 비수기니까 야외 작업 없이 조금 여유롭게 사무실 근무를 보면 되겠다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서울 집에서 가져가는 짐도 몇 개 있어서 어느새 가득 차버린 캐리어를 끌고 용산역으로 향했다. 여유롭게 도착을 했기에 햄버거도 하나 먹고 커피 한잔을 손에 쥐고 곡성으로 향하는 KTX에 올라탔다.
용산역을 벗어난 기차의 창밖으로 서서히 서울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다시 희미하게 사라졌다. 그렇게 펼쳐지고 사라지기를 몇 차례 반복한 후 나는 서울을 벗어났다. 금방이었다. 따뜻한 카푸치노를 세 모금도 채 마시지 않았는데 벌써 서울을 벗어난 것이다.
문득 올해 초, 처음으로 곡성을 향하던 기차 안이 생각났다. 시간 계산을 잘못하여 택시를 늦게 잡아탄 탓에 택시 기사님과 마치 추격전이라도 벌이듯 긴박하게 이동했고, 용산역 주차장에서부터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헐떡이며 승강장에 도착하여 겨우 기차 위에 오를 수 있었다. 추운 날씨 속 홀로 땀을 흘리고 있었고, 커피 한잔을 하며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려던 나의 계획은 어그러졌다.
어찌 됐든 그래도 기차는 놓치지 않았다. 아무리 서울에서 곡성까지 KTX가 뚫려 있다지만, 그 기차를 놓쳤다면 다음 기차는 너무나 한참 후였다. 만약 놓쳤을 그 상황을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기 그지없었다. 숨을 고르고, 집을 떠나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는 그 순간 자체를 음미했다. 달콤하진 않았지만 씁쓸하지도 않았고, 엄청나게 자극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감촉이 느껴져 거기서부터 감각이 일깨워지는 듯했다.
이제는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곡성의 나의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여전히 나의 짐이 있긴 하지만 더 이상은 나의 집이라고 부르기는 살짝 애매한 서울 집에서, 몸도 마음도 완벽히 나의 집이라 외치고 있는 곳으로 말이다. 그동안 꾸준히 하나 해온 게 있다면 여기저기 움직이며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던 것. 그래서 지금도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귀촌을 했다고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꾸준히 찾아 나서지 않으면 결국 어디에 있으나 똑같을 것이다. 집이 생겼다고 언제까지 그곳에 매어있을 필요도 없고, 언제든 마음에 드는 곳은 또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도 지금은 누가 뭐래도 가장 마음 편하고, 가장 편안한 나의 집이다.
어쨌든 더 이상 사는 곳이 아닌, 이제는 여행하는 기분으로 다녀온 며칠간의 서울 일정이 그렇게 끝났다. 집은 열흘 만에 돌아온 나를 그 언제보다도 포근하게 맞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