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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Aug 22. 2023

18. 없는 것 말고 있는 것

어디서든 생각하기 나름



“그래서 곡성에서 지내니까 어때?”

연락할 때마다 친구들이 인사치레로 물어보는 말이다.


사실 직접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서는 상상을 할 뿐이지 실질적인 이미지를 그리기가 쉽지는 않다. 나도 살아보기 전까지는 아는 것보다 막연하게 추측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는 않다. 어디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거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곳에 대해서 고작 몇 달 살아보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조심스럽기도 하거니와, 나로 인해 지역의 이미지가 잘못 전달될까 하는 우려도 섞인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살아온 환경보다 불편한 거리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인프라 좋은 대도시에서 지내다 시골로 내려왔으니 평소에는 너무나 쉽게 누리던 것들이 그러지 못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주변에 산과 들, 강, 좋은 공기는 깔려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없는 것도 참 많다.


크게 세 가지로 인해 불편함을 종종 겪곤 한다. 그 세 가지는 바로 술집, 헬스장, 올리브영.



내 브런치를 종종 읽어와 주신 독자분들이라면 아실 것이다. 내가 얼마나 애주가인지. 나는 어떤 음식이든 안주로 만들어 버리기 십상이고, 여행을 가면 술집 먼저 스캔한다. 그만큼 술은 나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곡성에는 그러니까 내가 지내고 있는 곡성읍에는 술집이 생각보다 많지가 않았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읍내의 술집을 세어보니 딱 다섯 곳이 있었다. 치킨 집은 술집에서 제외했다. 그러니까 치킨 집까지 따지면 물론 다섯 곳보다는 더 된다. 물론 내가 다섯 곳을 다 가본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 수가 적은 것이 너무나 속상한 일이다. 기분에 따라 포차도 가줘야 하고, 와인 바에서도 즐겨야 하고, 민속 주점도 들락거려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것이다.


홈술도 좋아하니까 술집은 그리 많지 않아도 사실 괜찮다. 그런데 집에서는 와인을 주로 마시는데 와인을 수급해 올 곳이 마땅치가 않다. 서울에서는 바틀샵에 가지 않아도, 집 앞 편의점에서 너도나도 와인을 들여놨기 때문에 너무나 편하게 와인을 사다 마실 수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여기에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읍내에 있는 편의점 몇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와인은 아직 곡성에서 밀고 있는 주종이 아니었다. 맥주 종류는 참 다양하게 찾을 수 있었지만 와인은 그렇지 못했다. 어떤 편의점에서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와인 병들이 숨죽여 잠들어 있었다. 어떤 편의점에서는 몇 안 되는 와인 병을 집었다 놨다 하는 나에게 사장님이 ‘필요한 와인이 있으면 따로 주문을 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편의점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라 사실 신기한 마음이 컸다.



두 번째로는 헬스장. 고된 수목관리 현장에 몇 번 다녀오거나 짐을 나르거나 하면 허리가 그렇게 아팠다. 그럴 때마다 평소에 운동을 하면서 관리를 잘하지 못한 게 떠올랐다. 이제는 좋은 몸매를 위해 운동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했다.


그래서 헬스장을 알아보았다. 지인 할인가로 3개월에 15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금액도 제시받았다. 그런데 직접 가서 본 헬스장은 너무나 작았다. 물론 작아도 할만한 기구만 있다면 괜찮은데, 기구와 기구 사이가 너무 협소했다. 도저히 마음이 가지 않았다.


읍내에 헬스장이 하나 더 있어서 그곳도 가보았다. 첫 번째 헬스장보다 기구 사이 간격도 넓고 그래서일까 쾌적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문을 너무 일찍 닫았다. 야근을 밥 챙겨 먹듯 하는 회사에서는 도저히 꾸준히 다니기 힘든 헬스장이었다. 참 아쉬웠다.


차선책으로 수영장도 알아봤다. 생각보다 시설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꽤 들었던 수영장이고, 수영은 평생의 숙제이기도 했다. 마침 수영 강사도 새로 채용되어서 월 이용권을 구매하면 따로 수영강습 등록을 안 해도 일정 시간에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래 이거야! 마음을 먹고 들뜬 마음으로 알아본 수영장 이용시간. 오후 7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럼 아침 수영을 나가야 하나 싶었는데, 웬걸, 오전 9시에 문을 열었다. 9-6로 일하는 직장인들은 오지 말라는 거겠지… 그럼 어떡하나, 못 가는 거지 뭐. 참 속상했다.



그리고 마지막, 올리브영. 서울 살았을 때에는 집에서 도보 10분 이내에 올리브영이 두 곳이나 있었다. 급하게 화장품이 떨어졌을 때 당황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물론 내가 올리브영 마니아라거나 VIP회원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집 앞에 온갖 다양한 화장품과 화장 소품들을 사 올 수 있다는 것은 참 큰 매리트였다.


곡성에 이사해서 당장 없는 화장품 몇 개를 올리브영 온라인 주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하필이면 크게 세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주목 폭주 때문인지 배송이 거의 일주일이나 걸려 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특수 기간이어서 그랬겠지만, 그 뒤로 올리브영 온라인 주문은 가급적 삼가고 있다.



하지만 없다고 마냥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있을 수도 없다. 와인이나 화장품은 광주나 남원 나갔을 때 신경 써서 미리미리 쟁여 두면 되는 것이고, 헬스장을 못 다니면 집에서 요가 매트 깔고 홈트를 하면 된다. 뭐가 되었든 불편한 것은 찾을수록 계속 생겨날 것이다. 그러니 없는 것만 계속해서 리스트업 하지 말고, 지금 내게 직면한 불편함을 어떻게 하면 쉽게 해소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생각해 보면 없어서 불편한 것도 많지만, 없이 살다 가까이에 있어서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도 많다. 연꽃 가득한 집에서 1분 컷인 산책로가 그렇고, 비가 그치면 산 골짜기에 가득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운무가 그렇고,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는 한적함이 그렇다. 역시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뀐다. 그리고 그것들은 스스로에게 참 깊은 영향을 끼친다.


귀촌 새내기인 나는 아직도 이곳에 대해 알아가야 할 것이 더욱 많다. 적응해야 하거나 아니면 그저 그러려니 해야 하는 것 또한 잔뜩 쌓여 있다. 홈술과 혼술은 늘었고 와인보다 맥주를 더 자주 마셔 아쉽긴 하다. 인생의 숙제인 수영은 언제 다시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 적당한 때가 있을 것이고 지금 당장 이렇게 흘러가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어찌 되건 지금 없는 것만 생각하면 너무 힘드니까, 없는 것 말고 있는 것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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