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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Sep 07. 2023

19. 일곱 번째 퇴사는 곡성에서

그래도 (일단은) 어디 안 가요.



지금껏 퇴사도 참 많이 해보았다 같은 회사에서만 두 번 퇴사해본 적도 있을 정도이다. 여섯 번째 퇴사를 하면서는 다시는 회사라는 조직에 들어가서 일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뚜렷한 창업에 대한 의지나 다른 돈 벌 수단이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괜히 그럴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 후에 스위스로 건너갔고, 스위스에서 돌아와서 곡성으로 거주지를 덜컥 옮기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일곱 번째 입사를 했다.


사실 간절히 바라며 들어간 회사라기보단, 일단 새로운 지역에 발 붙이고 살기 위해 들어간 회사였다. 매칭이 다행히도 잘 되었고, 대표와 이야기를 많이 나눈 후에 함께 일 해보기로 한 회사. 연고 없는 지역에 내려와 어찌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로부터 인프라를 시작하여 조금씩 지역에 정도 붙이고 맘도 뿌리내리고, 그러고 싶었던 것이다.


일을 하면서 좋은 점도 당연히 있었고,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드는 점도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월세를 내면서 살고 있으니까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처음 해보는 분야의 일이지만 결국 지금까지 했던 일들과 접목시킬 수 있는 면이 많았다. 몸을 많이 써야 했지만 그래도 체력이 바닥은 아니니 버텨주니 할만했다.


문제없는 회사는 없다. 어떤 사업장이든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아니면 철저히 꽁꽁 숨겨져 있어서 그 구성원이 되어서야 보이는 것들도 있다. 문제들이 하하나 발각될 때마다, 이걸 어쩌지 저걸 어쩌지, 할 뿐 직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어내면 충돌과 갈등은 피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한 이해하려 해 보아도 자신들의 잣대만 들이대면 그 어떠한 노력도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나름 계속 버텼던 이유는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때문이었다. 말해 뭐 해 당연하지. 풍족하게 살 수는 없어도 그래도 꾸역꾸역 지낼 수는 있었다. 4대 보험과 고정 지출을 생각하며 버티고 버텼다. 한 달 중 행복한 시간보다 불행한 시간이 많아져 갔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 체질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착각이자 희망사항이었다. 멀쩡하던 곳들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몸은 사실 이전부터 신고를 보내왔지만, 그걸 제대로 수신하지 못한 것은 나였다.



결국 퇴사를 했다. 순조로운 과정은 아니었다. 잡음이 컸고, 원하는 대로 바로 정리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퇴사 의지를 굳건히 했고, 변하지 않았다. 매달 나가는 고정 지출을 생각하며 나의 매일매일을 쏟아 붓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지 않았다. 다음 날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다음 달, 다다음달을 계산하며 있자니 힘에 부쳤다.


퇴사를 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정말로 옳은 선택을 하고 났을 때만 느껴지는 내면의 편안함이었다.


자주 연락하는 친구들에게만 퇴사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떻게 알고 그에 맞춰 연락하는 지인들이 있었다. 나한테서 백수 냄새라도 나는 건지, 참. 그렇게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 내 소식을 전했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주다 보니 나름의 레퍼토리도 생겼다. 회사의 위생상태, 식문화 그리고 업무 강도에 따라 직원을 대하는 태도. 이야기를 전해 들은 모두가 잘했다고 해주었다. 물론, 이미 막상 회사를 때려치운 친구를 나무랄 수도 없는 법이지만, 그럼에도 따뜻한 친구들의 응원에 없던 힘도 다시 생겼다.


그런데 열이면 열, 다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다시 언제 올 건데?”

질문의 요점을 파악하지 못한 나는 대꾸했다.

“가긴 어딜 가?”

그러면 친구들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서울 안 올 거야? 계속 거기 있을 거야?”



아이쿠야. 지금은 여기가 내 집이라고, 내가 그 회사 때문에 여기 내려왔던 것도 아니니 그 일 관뒀다고 내가 바로 여기 접고 올라가진 않을 거라고 했다. 물론, 친구들의 질문도 이해가 아예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지금은 여기가 내 집인걸. 서울의 집에는 없는 내 짐들이 다 여기에 있는걸.


시골치고는 꽤 나가는 월세를 감당하며 일단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소소하게 하고, 마음의 여유도 좀 가지고 해 봐야지. 일단 큰 거 하나를 놓았으니 다른 여러 기회들이 보일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가 그걸 내 의지로 터뜨려 버리고 그 뒤의 고요를 맛보니, 참으로 평안하다. 이 평온함이 또 언제 불안함으로 바뀔지 모르고, 초조해하지 말자고 한 다짐이 어느덧 짓밟혀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은 지금을 즐기기로 한다.

하루를 오롯이 날 위해 쓰는 행복한 날들을 가져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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