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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Oct 22. 2023

20. 귀촌에도 성공과 실패가 있을까?

여기저기에 삶이 쌓여가는 것

퇴사를 하고서 한동안은 편안했다. 수입은 없지만 다달이 월세가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잠시 잊은 척했다. 놀러도 가고, 집에서 평온함도 느꼈다. 전에는 느껴볼 수 없던 평온함이었다. 베란다에 놓아둔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모닝커피를 마시는데 그렇게나 창 밖이 아름다울 수 없었다. 내가 원하던 게 이런 거였구나, 어쨌든 원했던 걸 이루고 있구나. 이사한 지 반년도 넘어서 이걸 느꼈으니 조금은 늦었지만.


한 달 동안의 여유로운 생활 후에 갑자기 일이 밀려 들어왔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했던가. 그것들을 받아서 최대한 해보려 했다. 살아본 적 없는 프리랜서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공연 기획 일이 들어오고, 행사 기획 일이 들어오고, 이야기만 나누다 일정상 할 수 없던 블로그 제작 일도 들어왔다. 하던 일들, 그리고 함께 일 해본 사람들이랑 생각보다 더 재미있게 일했다. 반대로 하던 일이었지만 손발을 맞춰보지 않은 사람과 삐그덕 거리며 서로 스크래치를 내는 작업도 있었다. 프리랜서라 좋은 점도 너무 많았고, 그럼에도 쉽지 않은 점도 많았다.


몸은 곡성 집에 있지만, 여기저기의 일을 했다. 곡성의 일도 있었고, 곡성이 아닌 곳의 일도 있었다. 예상보다 내가 재택근무에 잘 적응한 것도 놀라웠다. 출근할 때보다 아침을 잘 챙겨 먹었고, 집에서 모카포트로 내려 먹는 커피를 루틴 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은 또 다른 행복이었다. 점심은 부엌으로 가서 시간 맞춰 챙겨 먹고, 오후에 일이 벅차 잠시 쉴 때에는 빈백에 몸을 축 늘어뜨리곤 했다. 집에 있는 미닫이 문 두 개가, 부엌과 침실 그리고 베란다를 적절하게 나누어주고 또 연결시켜 주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늘 묻곤 했다.

“왜 곡성으로 왔/갔어요?”

언제나 이 질문이 나올 타이밍은 이제는 눈감고도 훤히 알 것 같다. 그런데 늘 대답을 어찌해야 할지 아직도 어렵다. 구구절절 이야기해야 할지 아니면 간단명료하게 얘기해야 할지. 그러다 보면 나의 대답은 “그러게요…!”에 보태는 멋쩍은 웃음이다. 이 전에는 스위스에 있었고, 그전엔 서울, 그전엔 탄자니아.. 프랑스.. 수원.. 이렇게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참 여기저기에도 머물렀지 싶었다. 예전에는 한 곳에 오래 못 있는 사람-이라는 누명 같은 타이틀이 써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제가 꾸준히 움직입니다-라고.



그렇게 내 삶이 여기저기에 쌓인 것을 종종 돌아보곤 한다. 그저 나는 원하는 대로 했을 뿐인데, 그러다 보니 삶이 여기저기로 흝어지기도 했고, 또 멋모르는 곳에 쌓여가기도 했다. 모르는 곳이 아는 곳이 되고, 어색했던 곳이 잘 아는 곳이 되고, 서툴렀던 모든 문화가 내 것이 되고, 꿈에도 그리지 못했던 풍경이 그 어느 곳보다 편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저기 살아보고 싶은 사람이, 어쩌다 보니 곡성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 떠나는 것에 두려움이 적은 사람이 새로운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마침 그곳이 시골인 것. 그래서 귀촌한 청년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것이다. 그렇게 정식으로 귀촌한 지 이제는 8개월이 되었다. 요즘 들어 자주 듣는 질문 하나가 있다면, “그래서 언제까지 곡성에 있을 거야?”이다.


사실 나도 모르겠다. 이래도 되는가 싶지만, 지금까지 장기플랜을 가지고 살아오지 않았었고, 가져본다 한들 수시로 변하는 게 사람 마음, 아니 내 마음인지라, 꾸준히 수정 가능한 플랜을 가져왔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가 나의 답변이다. 일단은 집이 여기 있으니까- 여기에 있지만 또 다른 재미난 거리가 생긴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로 올 거야?”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니라고 확실하게 답한다. 지금은 전라남도에 상당한 매력을 느껴서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래 이곳에 있고 싶은 마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곡성이든 옆동네이든 말이다. 어쨌든 곡성으로 귀촌했다고 평생 곡성으로 귀촌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면 또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귀촌에도 성공과 실패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공한 귀촌이고 어떻게 하면 실패한 귀촌이 되는 걸까? 그것은 누가 판단하고 누가 동의하며 누가 인정해 주는 것일까? 나의 경우는 어떠할까? 대답을 궁리하다 침묵하게 된다. 성공 혹은 실패로 나눌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기에 기대가 더 된다. 나의 다음 행보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으면 참 행복하겠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응원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모두를 이해시켜서 움직이고 싶은 생각도 없다. 설령 그것이 그리 설득력 있는 다음 step이 아니더라도 참 괜찮을 것만 같다.

늘 그래왔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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