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한창 공사가 막바지였다. 한 해가 끝나기 얼마 전부터 시작된 공사 현장은 부지런히 내 산책길을 점령했다. 작은 규모의 공사가 이곳저곳에서 게릴라전처럼 일어났다. 멀리서부터 우두두두 거리는 소음으로 자신의 위력을 자랑했다. 내가 늘 지나가는 길을 버젓이 막고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손짓으로 다른 길을 알려주곤 했다.
그렇게 평소와 조금 다른 길로 가게 되면, 아주 살짝 벗어난 길이지만 또 달랐다. 그 나무가 그 나무 같았지만,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그 온도가 그 온도였지만, 묘하게 새로웠다. 익숙한 공간에서 가본 적 없던 길을 걷고 있을 때, 검정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산책을 나온 개일까? 싶었지만 너무나 자유롭게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다. 주인을 잃어버린 개일까? 싶었지만 목이 허전해 보였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새까만 개 한 마리는 그렇게 홀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에게 길을 알려주었던 것처럼 이 개에게도 길을 알려준 것일까? 그래서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걸까? 궁금한 게 많아졌다.
귓가엔 여전히 공사소리가 웽웽거렸지만 그리 거슬리지는 않았다. 검은색 개에게 정신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개는 궁금한 것도 많고 볼일도 많은지 여기저기 코를 잔뜩 박고 다녔다. 평범한 산책길에 평소와 다르게 살짝 길을 벗어났을 뿐인데, 많은 것이 다른 것 같았다. 나는 온 시선을 개에게 향하게 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개는 나를 힐끗 한번 보더니 제 할 일을 해내기 바빴다. 공사 중이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까? 아니, 그래도 어쨌든 만나게 되었을 개였을까? 그 개는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지만 나는 그 개의 모습이 오래도록 남았다.
여행길에서도 늘 마찬가지였다. 가보고자 했던 곳을 가지 못하는 경우는 참 많다. 걸으려 했던 길을 걷지 못했을 때 어쨌든 걷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길을 걷는 것뿐이다. 예상했던 모든 것이 더는 이룰 수 없는 것이 되었지만, 그보다 어쩌면 더 흥미로운 광경을 마주할 수 있다. 때를 맞추지 않고 만나는 일몰을 보는 것처럼, 계획대로라면 대화 한 번 해보지 못했을 사람과 미소를 나누는 것처럼, 들어본 적도 없던 메뉴의 음식을 먹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여느 날과 같은 평범한 산책으로 끝날 줄 알았던 그날의 길은 여전히 평화로웠지만 조금은 특별했다. 공사로 인해 살짝 튼 나의 경로에서 우연히 만난 검정개 한 마리 덕분이다. 그 뒤로 단 한 번도 그 개를 다시 본 적은 없었지만, 그 개의 출현은 참으로 강렬했다. 작고 강렬한 만남은 언제나 예고되지 않아서 반갑다. 오래전 어느 낡은 여행길에서 만난 투박하지만 강렬한 만남들을 떠올려보았다.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풍성한 그때의 이야기들이 곁에서 팔랑거렸다. 무뎌진 산책길에 오늘 은 또 어떤 맛이 채워질지 기대가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