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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Mar 14. 2024

걷지 못한 달

지난달은 끔찍했다. 한동안 걷지를 못했다.

핑계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걷지 못하니까 글도 못썼다.


난생처음으로 사랑니 발치도 했다. 그냥 어금니 발치와는 차원이 달랐다. 매복 사랑니였기 때문이다. 수술실에서 덜덜 떨었고, 수술이 끝나자 얼굴은 잔뜩 부어있었다. 붓기는 3일째가 되자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고통은 5일 치 약을 다 먹고도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세고 센 항생제 진통제 뭐 그런 약들 때문일까, 두드러기가 났다. 그런데 치과에서 처방해 준 약은 끝까지 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으니 약을 계속 복용했다. 사랑니 뽑고 대고 있던 얼음팩을 두드러기에 열심히 갖다 대었다. 양쪽 골반뼈 아래였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이니 그래도 다행인가 싶었다.

오른손 엄지 손가락도 아팠다. 한 번도 아팠던 적이 없는 부위였다. 정형외과를 가서 사진을 찍어보았지만 이상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아픈지 열심히 설명했지만, 의사의 표정은 심드렁하기만 했다. 그렇게 걱정할 일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아픈 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파라핀 치료도, 물리치료도 하고 손가락 보호대까지 강제로 구매했다. 

손가락이 조금 나아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발이 말썽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스트레스 때문에 발등이 아팠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발 뒤꿈치였다. 걸을 때마다 움찔거렸다. 발에 땅을 내딛을 때마다 아팠기 때문이다. 무슨 병이 있는 게 아닐까 하며 의심되는 병명을 모조리 검색해 보았다. 병원에 갔더니 다행히 가장 유력했던 족저근막염은 아니었다. 다만, 초음파로 보았을 때 시꺼먼 것들이 보인다고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예전에 신경과에서 신경 검사를 맡을 때만큼이나 끔찍했다. 치료를 받는 내내 소리를 질렀다. 알고 보니 체외충격파는 석회가 꼈을 때 주로 받는 치료법이었다. 나는 실비를 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비급여는 3만 원 이상부터 공제가 되는데, 하필 3만 원어치의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또 오라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 


집에서 쉬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무지 답답했다.

여기저기 몸이 아프니까 힘이 없었고, 힘이 없으니까 더욱 아팠다. 자꾸만 돌고 돌았다. 여기가 아프니까 저기도 아프고, 몸이 점점 망가지는 기분이었다. 걸어야 했지만, 실내에서도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생리통이 있을 때 쓰는 찜질팩을 열심히 달궈서 발바닥에 가져다 대었다. 그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그거라도 열심히 했다.

온찜질을 열심히 해서일까, 어쨌든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약이었다. 어느 정도 짧은 거리는 걸어 다닐만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오래 걸으면 어김없이 통증이 생겼다. 

억울했다. 나는 잘 걷는 사람이고 너무나 걷고 싶은 의지가 충만한데, 이런 상황에 놓이다니 너무 화가 났다. 그런데 화낼 대상도, 화를 내야 하는 방법도 몰랐다. 


그렇게 2월이 끝났다.

아프기만 한 달이었다. 병원을 다니며 잔병치레를 하고, 집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그냥 무작정 기다려야만 할 것 같은 시간. 너무나 길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도 결국에는 끝이 있을 테니까, 조금만 버텨보자 싶은 그런 시간. 어둡고 답답한 터널을 느리게 걷고 있지만, 내 속도의 문제라기 보단 그냥 터널의 시간을 따라야만 할 것 같은 시간. 

그래서 그냥 마냥 견뎌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을 것만 같았다.


2월은 내게 그랬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일기를 쓰면서 몇 가지의 감정을 토해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입 밖으로 내뱉어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적고, 하루 치의 신세한탄도 적었다. 그래도 마지막은 희망적인 문장으로 마무리를 했다. 힘을 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일기를 마치고 잠을 청했다. 그런다고 잠이 잘 온건 아니었다. 수면의 질은 매일매일 나빠졌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일어나면, 어김없이 숨이 막혀왔다.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공포스러울 지경은 아니지만, 기대가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게 정말 속상했다.


3월이 시작되자 거짓말처럼 몸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어쩌면 그건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고난의 기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작디작은 스트레스가 하나씩 쌓여 알게 모르게 집채만 한 파도가 되어 나의 일상을 덮친 것이다. 감히 저항하지도 못하고, 확실한 방도도 없이 그냥 그렇게 당했다. 

엄청난 파도에 몸이 흠뻑 젖었지만, 그저 바람이 차디찬 물기를 말려주기만을 기다렸다. 햇빛이 몸이 덥혀주기만을 기다렸다. 나아질 거라는 의지는 크지 않았지만,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걱정했던 일들은 여전히 완성형은 아니어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 매복 사랑니 실밥도 2주 만에 제거했고, 손가락도 발바닥도 두드러기도 다 나았다.  


이제 다시 걸을 준비가 된 것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어쩌면 긴 시간 동안 품고 가야 할 고민과 걱정들은 걸으면서 조금 더 곱씹으려 한다. 아직은 품에서 놓아주지 못한다니, 끌어안고 가야지. 그동안 못 걸었던 것들까지 다 걸어야겠다. 내 뒤로 멀어지는, 그리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배경에 부드럽게 스며들어야겠다. 마다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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