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맹 Mar 28. 2024

외달도를 걷다

멀리서 보면 외로워도 들어가면 자유로워서.

그래서 나는 섬을 좋아한다.

물론 섬에 살아본 적은 없다. 섬에 산다고 가정해 보면, 조금은 가슴이 답답해지긴 하다. 자유로움을 얻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게 참 많을 것 같다. 어쨌든 예전부터 섬은 내게 동경이었고, 자주 목적지였다.


요즘은 섬과 섬 사이를 잇는 도로도 많이 놓여 있어서, 섬이라고 해도 굳이 배를 타고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곳이 많다. 참 편리하다. 배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은 더 낭만적이다. 그리고 섬답다.


전라도에 오기 전부터 가고 싶었던 섬이 하나 있었다. 목포항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들어가면 되는 외달도. 사랑의 섬이라고도 불리는 작은 섬.

한옥민박집 사진을 보고 저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만 보고 있을 수 있겠다, 싶어서 계속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렇지만 원래 가까우면 더 쉽게 나중으로 미루게 되듯이, 외달도에 가기까지는 실제로 시간이 더 걸렸다. 적어도 2박은 할 거라 생각했지만, 숙박은 조금 더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은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평일 오전의 여객터미널은 한가하기 그지없었다. 이른 아침에 낀 짙은 안개로 그나마 하루에 4번 있는 배가 그날은 3번으로 줄었다고 했다. 달리도, 장좌도, 율도를 거쳐야 외달도였다. 배에 있던 사람들과 차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사라졌다. 율도에서 마을버스를 운행하고 있다는 어르신까지 내리자, 배는 텅 비었다. 이야기 상대가 필요하셨는지 선장님이 갑자기 선장실로 날 부르더니 이것저것을 설명해 주셨다. 처음 가본 선장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장님 하시는 말씀은 8할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저 네, 네를 반복했다.


비수기 평일의 외달도는 정말이지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내가 갔던 그 어떤 섬보다도 작은 곳이었다. 지도도 필요 없었다. 그냥 길이 난 방향 따라 걷다 보면 산책로가 나오고, 바다가 보였다. 작은 도로를 걷는 동안 차 한 대 지나가지 않았다. 해변 몇 개는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했다. 잘 가꿔진 산책로를 걸을 때에도 주민 한 명 만나지 못했다.


다음 배 까지는 3시간이 남아 있었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카페는 고사하고 요깃거리라도 파는 곳을 향해 어슬렁 거렸다. 민박집은 꽤 있었지만, 비수기에는 모두 영업을 하지 않는 듯했다. 내가 가고 싶어 했던 한옥민박집은 역시나 활짝 열려 있었다.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장님께 인사를 건넸다. 홈페이지에서 봤을 때 카페나 매점을 운영한다고 봤기에, 카페를 이용할 수 있냐고 여쭈었다. 아쉽게도 숙박객을 위한 시설이라고 하셨다. 아쉬워하며 문을 연 식당을 찾는 내게 그가 말했다.


"어쩌죠, 지금 영업하시는 식당 사장님이 방금 막 배 타고 육지로 나가셔서요. 둘러보시고 이따가 들르시면 커피라도 한 잔 드릴게요. 지금은 풀에 약을 주고 있어서요."


역시 가는 날이 장날. 파전에 막걸리나 마셔볼까 했던 나의 야무진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다. 가방에는 비상용으로 산 초코바와 옥수수수염차가 있었다. 목포에 내려 여객터미널로 가던 길에 이삭토스트가 있어 토스트 하나를 우걱우걱 먹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안개는 걷힐 듯 말 듯했다. 선장님 말씀으로는 안개가 곧 걷힐 거라고 했는데, 안개는 심술을 부렸다. 바람도 열심이었고 해도 부지런히 타올랐다. 맑고 깨끗한 하늘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춥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조용한 섬에서 나 또한 조용히 머물렀다.

길을 걷다 나온 정자가 있었다.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써져 있었는데,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앉아서 초코바를 주섬주섬 꺼내 먹었다. 자꾸만 머릿속에는 파전과 막걸리가 아른거렸지만, 외달도의 바다를 온통 혼자서 만끽하며 먹는 초코바도 나쁘지 않았다.


슬렁슬렁 고요한 동네를 걷다가 다시 한옥민박으로 갔다. 사장님은 여전히 풀에 약을 치고 있어서, 근처에서 기다렸다.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일도, 갈 곳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났을 때, 사장님이 들어와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커피 대신 숙박객에게 파는 캔맥주 하나를 사 먹었다. 물이 들어와 있는 때였다. 해변은 좁아졌고, 나와 바다와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멀리서 작거나 큰 배가 분주하게 혹은 한가롭게 움직였다.


나는 바닷바람을 안주삼아 차가운 맥주를 들이켰다. 바람이 점점 거세어질 때마다 파도도 흥을 돋웠다. 귓가에 온통 파도와 바람 소리만이 가득했다. 햇빛에 벗어두었던 옷을 껴입었다. 옷을 더 입어도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워졌다. 어느덧 해가 숨어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시 길을 나서야 했다.


배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섬이 마음에 들면 막 배까지 있을 의향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배가 고팠다. 육지로 나가는 배를 타러 가는 길, 바람은 더욱 거세어졌다. 그 덕인지 바다 저 멀리가 아까보단 보이기 시작했다. 과연 선장님 말이 맞았다. 아쉽게도 시야가 걷히자, 섬을 떠나야 했다. 또 오라는 뜻일 것이다. 어디든, 아쉬운 게 있어야 완벽히 보지 않아야 또 찾게 될 이유를 만들 수 있으니까.



저 멀리에 있는 섬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궁금하던 바다의 끝이 보였다. 바다가 마치 거대한 호수처럼 느껴졌다.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섬들이 서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그렇게 있었다. 서로의 안부가 궁금했다는 듯이, 저 멀리서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목포항으로 나가는 배는 다시 율도, 장좌도, 달리도를 거치며 섬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외달도가 더는 시야에 보이지 않았지만, 외달도에서부터 따라온 갈매기는 배 위에 올라와 있었다. 꺼억꺼억 울어대며, 바다를 품고 있었다. 그들의 울음소리에 맞춰, 나는 외달도에서의 짧은 시간을 되새기며 허기를 달랬다.


돌아오는 길에 목포에 있는 한 독립서점에 들러 '섬'이라는 제목의 장 그르니에 선집을 샀다.

그 책을 소중히 품에 안고, 내가 걸었던 섬과 걷고 싶은 섬을 떠올리며 기차에 올랐다.



이전 09화 걷지 못한 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