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도 섬을 다녀왔다.
섬에 숙박업소가 없어서 하룻밤 보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섬, 쑥섬. 이름이 예쁘다. 뭐, 이름이 예뻐서 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름이 영향을 전혀 끼치지 않은 것 또한 아니다.
이번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광주에서 고흥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고흥에서 나로도까지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거기에서 2분도 되지 않는 시간 잠깐 배 위에 올라타면 목적지다. 사실, 쑥섬을 걸었던 시간보다 왕복하는 버스 위에서 앉아서 보낸 시간이 더 많다. 광주에서만 세 개의 정거장을 지나갔고, 화순, 곡천, 벌교, 과역이라는 정거장들을 거쳐가야 비로소 고흥터미널이었다.
쑥섬에 대해 궁금한 것이 딱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고양이. 쑥섬에는 예전부터 세 가지가 없었다고 한다. 무덤, 개, 닭. 무덤은 여전히 하나도 없지만, 개는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부터 개가 없어서인지, 쑥섬은 고양이들의 천국이었다고 한다. 고양이 섬이라고 불릴 정도니까 말이다. 길가에 주욱 늘어선, 저마다 이름까지 써진 고양이 집 사진을 보며 나도 그들과 조우할 생각에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쑥섬에 있는 동안 고양이는 단 한 마리밖에 보지 못했다. 사진에서 보았던 그 고양이 집들 앞을 지나가며 꼼꼼히 살펴보았는데도, 어째서인지 고양이는 내 눈에 띄지 않았다. 섬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졸졸 따라왔던 개냥이 한 마리 이후로 더는 고양이를 보지 못했다. 조금 아쉽지만, 어떤 여행지에서든 기대한 걸 다 마주칠 수 없는 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섭리이기에 그리 큰 실망은 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꽃이었다. 전남 제1호 민간정원인 쑥섬의 정원에 만발한 꽃들. 계절벌로 다양한 꽃이 즐비하다는 이야기에, 지금은 어떤 꽃을 만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정원에 도달하기까지 산책로에는 각 나무의 이름과 설명, 재미난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세심한데, 정원은 또 얼마나 다정할까 싶었다. 그리고 정원에 다다랐을 때, 우와... 낮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노오란, 그리고 보라색의, 분홍 빛의 색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각각의 매력을 알맞게 뽐내는 꽃들 너머로는 바다가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 육지가 바로 보여서인지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꽃이 주는 힘은 실로 대단했다. 시기적절하게 피어난 꽃들은 그야말로 보는 이들에게 선물과도 같았다. 시즌에 알맞은 제철 음식을 챙겨 먹은 것처럼, 눈이 호강하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둘씩, 혹은 단체로 온 관광객들은 구석구석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열심히 사진을 남겼다. 나도 다음에는 꼭 짝꿍과 함께 만발한 수국을 보러 오리라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궁금했던 건 쑥이다. 얼마나 쑥이 유명하면 이름마저 애도에서 쑥섬으로 변경했을까 싶었던 것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도 쑥부침개에 막걸리 한잔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조금이라고 효율적으로 대중교통을 통해 환승에 환승을 하려면 그리 시간이 넉넉하진 못했다. 섬에서의 시간은 두 시간이었다. 섬의 정상과 등대까지 돌아보고 나오자 한 시간 이십 분이 지나있었다. 나는 쑥부침개 대신 쑥라테를 마셨다.
나와 같은 시간에 들어온 이들은 다 막걸리를 마시는지 나는 조용한 카페에서 홀로 쑥라테를 마시는 방문객이 되어 있었다. 2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창밖을 바라다보자 쑥섬이 안고 있는 앞마다가 눈에 들어왔다. 날이 맑지 못했지만 그래도 오히려 트레킹 하기에는 좋았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쑥라테는 말차라테보다 훨씬 진한 색이었다. 라테 거품을 들이켜자 오랜만에 맡아보는 쑥 향이 코를 찔렀다. 어디에서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쑥라테 한잔을 가지고 잘도 홀짝였다. 생각보다 더 맛있었고, 종종 생각이 날 것 같았다.
정원 때문일까, 쑥섬은 내게 다양한 화려한 색들로 기억될 것이다. 잘 가꾸어진 정원에 있는 꽃 밭 사이를 거니는 누구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황홀한 꽃 밭. 칙칙한 쑥의 색이 아닌 그 무엇보다도 곱고 진한 색으로 기억될 쑥섬이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섬에 있었던 듯, 없었던 듯 그렇게 사뿐히 다녀오는 길. 다시 광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느껴지던 쑥섬의 바람, 쑥 라테의 향긋함, 그리고 다시 꽃들의 향연.
쑥섬 입구에서 나로도 연안 여객 터미널, 그리고 나로도 터미널. 농어촌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고흥 버스 터미널. 그리고 다시 여섯 개의 정거장을 거치며 광주로 돌아오는 길. 다행히도 섬에서 나오자마자 비가 내렸다. 빗방울은 더욱 굵어졌고, 버스의 창문을 거세게 할퀴었다. 창밖으로 만개한 벚꽃 무리를 여러 번 지나갔다. 어느덧 주위는 어둑해졌다. 모든 방문자들이 다 떠나고 어둠에 잠겼을 쑥섬, 그 위에서 내일을 준비하는 꽃들을 떠올렸다. 소중해서 손에 꼬옥 쥐어보았다.
하나의 연안 여객 터미널과 두 개의 버스 터미널. 모두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낯선 곳에 떨궈지는 기분은 이제는 예측 가능하여 그리 어색하진 않지만, 그래도 늘 새롭다. 모든 곳이 품고 있는 냄새가 다르기 때문일까, 그곳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 때문일까. 올 때 다르고 갈 때 다른 '거쳐 가는 곳'들에서 저마다의 온도를 가느다랗게 잡아보곤 했다.
광주에서 고흥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데우지 않고 씹어 먹던 차가운 김밥 밥 알갱이들의 단단함도, 버스 안에서 김치를 먹어서 기사님에게 한 소리를 들었지만 그저 '딱 아는구먼?'이라고 맞받아치던 할머니의 대꾸도, 나로도에서 고흥으로 가던 버스 안에서 보던 조용하고 작은 마을들의 풍경도 쑥섬에서 걸었던 시간만큼이나 아름답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