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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Apr 17. 2024

선운산을 걷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올해 말까지 계속 굴러가야 할 프로젝트다. 본격적인 투입 전 붕 뜬 시간 동안 마음을 가지런히 두려 노력했다. 열심히 달리기 위해서 체력관리도 틈틈이 하면서 한껏 여유로움을 즐기기로 작정했다. 성실하게 걷고 최대한 늘어졌다. 그렇게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 새로운 출근을 하루 앞둔 날이 되었다.



마음을 바로 새기기 위하여 선택한 것은 등산이었다. 전북 고창에 있는 선운산. 그리 높지 않은 수리봉까지 올라갔다 오기로 한다. 선운산은 작년에도 두세 번 정도 갔었다. 그래서 나름 익숙한 산이다. 처음 선운산에 올랐을 때는 겨울이 막 끝나가고 있었다. 아직 초록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 헐벗은 산의 모습이 조금은 시려 보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선운산 도립공원 입구에서부터 벚꽃 잎이 날렸다.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꽃잎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떨어지는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얼마나 머물 것인지 셈하지 않고 그저 한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공기 중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완전한 봄이었다.



등산을 할 때면 늘 다짐을 한다. 첫 출근을 앞둔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등산에도 출근에도 다짐이 필요했다. 단단히 마음먹고, 주변을 잘 파악해 보겠다며, 너무 숨차게 달리지 말고 천천히 그 흐름에 몸을 맡겨보기로, 그러면서도 의지를 잃지 않고 처음에 목표했던 것에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다가가자는 다짐 말이다.


하지만 다짐을 굳게 먹기도 전에 길은 시작되고 만다. 그런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나는 곧장 등산로로 진입했다. 선운산은 조용히 반겨주었고, 이내 다시 침묵했다. 산의 봄을 만끽하러 온 등산객들이 봄보다도 화려한 색을 내뿜고 있었다.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산에 점점이 쌓여갔다. 나도 거기에 내 발걸음을 보탰다. 주위를 둘러보며 나아갈 길을 확인하고, 방향을 가늠했다. 굳게 먹으려던 다짐은 어느새 희미해져 있었다.


출근도 마찬가지였다. 출근 전 등산을 마치고 적당한 휴식을 취하며 다음 날을 준비하려 했다. 하지만 그냥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엔 날이 너무 좋았다. 집에 가는 대신 방향을 틀어 피크닉을 갔다. 갓 튀겨진 치킨 한 마리를 들고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봄을 깊게 들이마셨고, 내일 생각은 내일로 미뤘다. 뭐든 저절로 되는 것은 없지만, 굳이 나쁜 쪽으로 흘러갈 것 같지도 않았다. 오후는 길고 밤은 짧았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임하는 다짐은 출근하는 전철 안에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헉헉거리며 올랐던 수리봉을 이제는 꽤 거뜬하게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번 올라갔던 곳이라 그런지 성취감이라기보다는 반가움이 더 컸다. 발아래로 보이는 선운사를 바라보았다. 만발한 벚꽃에 주말 행사까지 있어서 방문객이 많았다. 콩알만큼 작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리게 펼쳐졌다. 봉우리에서 휴식을 취하며 땀을 식혔다. 그리 오래 머물진 않았다. 내려가는 길도 또 다음에 올 선운산도 기대가 되었다.


앞으로 새로운 조직에 속한 업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은 수월할 것이고, 대신 처음 직면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같은 결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목표하고자 하던 바에 대단히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또 다음을 준비할 것이고, 기대할 것이고, 다짐을 준비할 것이다.


어쨌거나 봄이 한창이다. 시작하기 딱 좋은 계절임에는 틀리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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