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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의 또 다른 주인공, 숨은 파일럿

네트워크 속 인간의 손길

by 조성우


당신이 어느 날 한 도로 위 자율주행차에 탑승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차는 스스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당신은 창밖 풍경을 보며 여유를 느낍니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 공사 중인 구간이 나타납니다.

기존 지도에는 없던 도로 폐쇄, 예상 밖의 신호 변경, 길 한가운데 놓인 장애물까지…

차는 잠시 멈칫하고, 내부 알고리즘은 판단을 망설입니다.


그때 창밖 화면 한쪽에서 누군가가 당신에게 조용히 속삭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잠시 개입할게요.”

당신은 고개를 들지 않아도 됩니다.

차량 내부 센서와 카메라가 전송한 영상을 기반으로, 관제센터에 있는 원격 운영자가 순간 판단해 조작 명령을 보냅니다.

차는 부드럽게 회피하고, 당신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정을 이어갑니다.


이 장면이 더 이상 SF가 아니게 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기술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판단력을 통신망을 통해 연결하는 방식은 자율주행의 ‘안정적 다리’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앞서 쓴 글에서는 원격 제어와 원격 지원이 왜 지금 주목받는지를 다뤘죠. 이번 글에서는 그 전략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사람 중심의 연결망이라는 관점에서 풀어 보려 합니다.



Guident의 TaaS: ‘원격 운영’의 인프라화


미국 남플로리다의 한 도로 위에는 사람이 없는 듯 보이는 자율주행 셔틀이 조용히 달립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눈과 손, 그리고 뇌가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Guident는 이런 숨은 운영을 ‘서비스’로 만드는 회사입니다.

• RMCC(원격 모니터 및 제어센터)에서는 영상과 센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신하고

• 차량 내 VTU(원격 조작 유닛)와 연결되어

• 인간 운영자가 필요시 개입해 차량을 조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는 ‘속도’입니다.

지연 시간 35~70밀리 초 수준의 초저지연 비디오 스트리밍 덕분에, 긴급 제동이나 회피 행동까지 실시간으로 지원 가능합니다.


그리고 연결이 끊기지 않게 만드는 것도 핵심입니다.

Guident는 4G/5G 지상망, 저궤도 위성망, 정지궤도 위성망을 통합 운영하며, 특허 기술로 네트워크 간 전환 시에도 데이터와 영상의 연속성을 확보합니다.


• 지상망: 도시·캠퍼스 중심의 높은 대역폭 제공

• LEO(Starlink 포함): 낮은 지연과 높은 처리량

• GEO: 광범위 커버리지 및 백업 경로


핵심은 상황에 따른 동적 네트워크 선택으로, 약하거나 부재한 커버리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습니다. 이 전략은 실제 배포 시 지리적 제약을 최소화하는 강력한 경쟁력이 됩니다.


이처럼, Guident는 단순히 차량 원격 제어 기능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안전 운영을 위한 통신 인프라 전체”를 서비스로 포장한 셈입니다.


앞으로 자율주행 생태계에서 “차량을 만드는 기업”보다, “차량을 안전하게 운영·관리하는 기업”의 가치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Guident는 바로 그 역할을 선점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 요코하마: 제도와 역할 분담으로 무인 세계를 설계


일본에서는 ‘누가, 언제, 어떤 책임을 지는가’가 먼저 설계되고 있습니다.

2025년 11월 말부터 요코하마 도심(미나토 미라이, 사쿠라기초, 간나이, 차이나타운)에서는 특별한 실증 프로그램이 시작됩니다.

닛산자동차, BOLDLY, Premier Aid, 게이큐(Keikyu) — 이렇게 네 회사가 손을 잡고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를 시험 운영하는 것이죠.


• Nissan: 차량·자율주행 시스템 제공

• BOLDLY: 원격 감시 및 제어 운영

• Premier Aid: 탑승자 서비스

• Keikyu: 노선 및 스케줄 운영


이 협업 구조는 전형적인 일본식 산업 컨소시엄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기업이 모든 걸 떠안지 않고, 각자 강점을 모아 ‘안전하고 책임감 있는 실험’을 추구하는 방식이죠.


실증 기간은 2025년 11월 27일부터 2026년 1월 30일까지. 다만 연말연시에는 잠시 쉬어갑니다.

차량은 닛산 세레나 미니밴 5대, 하루 운행 시간은 화요일~금요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입니다.

탑승 정원은 3명, 승·하차 지점은 26곳으로 설정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시민 모니터 300명을 모집한다는 사실입니다. 참여자들은 무료로 이동하면서 직접 피드백을 남기게 되고, 이 데이터는 운영 개선에 곧바로 반영됩니다. 단순히 기술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수용성과 실제 이용자 경험을 검증하는 것이죠.


요코하마 미나토 미라이 지역에는 ‘PLOT48’이라는 원격 관제센터가 설치됩니다.

여기서 자율주행 차량의 상태가 실시간으로 관리되고, 필요하면 긴급 개입이 이루어집니다.


즉, 이번 실증은 SAE 레벨 2(안전요원 동승) 단계지만, FY27 이후 상용 서비스에서는 레벨 4(완전 무인)를 목표로 합니다. 단계적으로 안전 신뢰 상용화를 밟아가는 일본식 전략이 분명히 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안전 드라이버가 차량에 탑승은 했지만 실제 개입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즉, 비상 상황에 대비해 ‘대기 모드’로 존재만 하되, 실제 조작은 원격 시스템과 관제센터가 맡는 것이죠.


이 방식은 명확한 책임 구조와 리스크 분담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법적으로는 ‘특정자동운행 주임자’ 제도를 통해 원격감시와 원격조작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2027년부터 본격적인 상업 운행을 계획하고 있고, 단계적 무인화의 가능성을 시험대 위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미국 웨이모와 GM 크루즈, 중국 바이두와 디디는 이미 일부 도시에 완전 무인 로보택시를 띄웠습니다.

반면 일본은 2027년이라는 비교적 느린 일정을 잡고 있죠.

이 차이는 결국 “사회적 신뢰”에 있습니다.

일본은 철도·버스·택시 등 이미 촘촘한 교통 인프라가 있기 때문에, 급하게 로보택시를 내놓을 필요가 크지 않습니다. 대신 안전성 검증과 시민 수용성을 충분히 확보한 뒤, 교통망의 보완재로 자율주행 서비스를 투입하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의미


한국 역시 판교, 세종, 제주 등에서 자율주행 실증을 진행 중이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안전 요원이 탑승해야만 운행이 허용됩니다. 문제는 이 방식으로는 규모 있는 상용화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만약 한국이 Guident처럼 통신 인프라 기반 원격 지원 시스템을 정교하게 구축하고, 일본처럼 법적 책임 구조를 명확히 세운다면 어떨까요?


– 세종의 BRT 자율주행버스는 안전요원 없이도 운영이 가능해지고,

– 관광객이 많은 제주에서는 돌발 상황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으며,

– 판교 자율주행 실증단지는 글로벌 테스트베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기술의 완성보다 연결의 힘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단순히 AI가 얼마나 똑똑해지느냐가 아닙니다. 진짜 관건은, 인간의 판단을 얼마나 빠르고 안전하게 차량에 전달할 수 있느냐입니다.


Guident처럼 네트워크와 위성 통신을 무기로 삼는 회사가 있듯이, 법과 제도로 원격 제어와 운전의 경계를 정립하는 일본과 같은 국가는 자율주행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완전한 기술”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인간-기술 협력의 인프라를 지금부터 구축할 것인가. 앞서 쓴 원격 제어의 시대 도입 글에 이어, 이제 우리는 ‘누가 그 보이지 않는 손길을 쥐느냐’에 주목해야 합니다.


https://brunch.co.kr/@maepsy/34


https://www.therobotreport.com/how-guident-is-making-autonomous-vehicles-safer-with-multi-network-taas/ ​ (접속일 : 2025.10.03)


https://global.nissannews.com/en/releases/251003-01-e ​ (접속일 : 20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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