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보다 어려운 건 사람이다
요즘 자동차 업계를 달구는 가장 뜨거운 단어, 바로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주변에서 이 얘기를 꺼내면 “또 무슨 유행어 아냐?”, “예전에 커넥티드카랑 뭐가 달라?” 이렇게 묻는 분들이 많아요.
SDV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겁니다.
하드웨어 중심이던 자동차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정의하는 것!
과거의 자동차는 공장을 떠나는 순간 '완성품'이었습니다. 하지만 SDV 시대의 자동차는 달라요. 출고는 단지 '시작점'이죠. 기존 차량은 개발 완료 시점에서 기능이 ‘고정’되었지만, SDV는 OTA(Over-the-Air) 무선업데이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개선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개념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동차를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마치 스마트폰처럼, 출고 후에도 OTA를 통해 기능이 추가되고, 성능이 개선되고, 심지어 운전 경험 자체가 통째로 바뀝니다.
쉽게 말해, "이제 자동차는 한 번 사서 끝나는 제품이 아니라, 계속 자라나는 디지털 생명체"가 되는 겁니다. 테슬라가 이걸 제일 먼저 보여줬고, 이제 글로벌 완성차 회사(OEM)들도 모두 이 길로 뛰어들고 있는 거죠.
SDV의 목표는 정말 멋지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현장에선 '지옥'이라는 표현까지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SDV 전환은 단순히 ECU를 줄이거나 OTA를 도입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SDV 전환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사람과 조직'에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벽: 자동차의 복잡한 뇌 구조 (블랙박스)
지금 우리 차 안에는 무려 100개가 넘는 작은 컴퓨터(ECU, 전자제어장치)가 들어가 있어요. 창문, 브레이크, 에어백 등 각자 자기 할 일을 하죠. 문제는 이 ECU들을 대부분 수많은 협력사(Tier)가 만든다는 겁니다.
완성차 회사는 이 ECU의 내부 소프트웨어를 잘 몰라요. 말 그대로 '블랙박스'인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OTA로 기능을 업데이트한다"고요? ECU 하나만 잘못 건드려도 차 전체 시스템이 엉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감히 손대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 복잡한 '뇌'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부터가 대공사입니다.
두 번째 벽: 수백 년 된 조직 문화의 저항
자동차 회사 내부는 전통적으로 '섀시팀', '파워트레인팀', '전장팀', '품질팀' 등으로 깊이 분화된 전문 영역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영역은 자신들만의 엄격한 기준과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고수하며 운영되어 왔죠.
그런데 갑자기 "소프트웨어 우선(SW-first)으로 일해!"라고 하면 어떨까요? 하드웨어 중심 사고방식이 뿌리 깊은 조직에선 "업데이트로 기능을 바꾼다"는 말 자체가 낯설고, 불편한 언어와 개념이 너무 많습니다. 기술보다 더 바꾸기 어려운 게 바로 조직문화인 거죠.
세 번째 벽: 공급망(협력사)의 저항
부품 협력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납품하며 돈을 벌어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완성차 회사에서 "소프트웨어는 이제 우리가 직접 만들게"라고 하면, 협력사들은 당장 매출이 줄고 경쟁력까지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 큰 고민이죠.
SDV는 차 한 대의 설계뿐만 아니라,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자동차 산업의 공급망 전체를 흔들고 있는 겁니다. 이 저항을 무시할 수 없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 개발자들은 차의 설계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바로 '중앙 집중형 구조(Zonal Architecture)'로의 전환입니다.
지금의 차는 손과 발(ECU)이 제각각 뇌를 달고 있는 형태입니다. 창문에도 뇌가 있고, 시트에도 뇌가 있죠. 이러니 복잡합니다.
SDV는 차를 몇 개의 '구역(Zone)'으로 나누고, 각 구역에 Zonal Controller라는 '중간 두뇌'를 둡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Central Computer(중앙 컴퓨터)가 통합 관리하는 형태입니다.
쉽게 말해, 복잡하게 흩어져 있던 뇌들을 한 곳으로 모아 통제하는 것이죠.
이 구조의 장점은 바로 효율성입니다. OTA 업데이트를 중앙 시스템에서 통합 관리하게 되면서, 개발 비용은 절감되고 유지보수는 훨씬 쉬워집니다. 테슬라를 필두로 볼보, 현대차, GM 등 주요 회사들이 이 방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SDV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비즈니스 모델까지 통째로 바꿔버린다는 점입니다.
"차를 팔고 끝"이 아니라, "차를 팔고 난 후 소프트웨어로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시대로 넘어갑니다.
이게 바로 FaaS(Features as a Service), 즉 '기능을 서비스로 판매'하는 모델입니다.
예를 들어, 차를 살 때는 기본적인 운전 보조 기능(ADAS)만 제공하고, 나중에 "고속도로 자동운전 기능"을 OTA로 활성화시키면서 월 1만 원씩 구독료를 받는 식이죠.
물론, 과거 BMW처럼 "열선 시트 기능을 잠가놓고 돈 받기" 같은 방식은 소비자들의 엄청난 반감을 샀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SDV는 단순히 몇 개의 칩을 바꾸는 기술 트렌드가 아닙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넘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의하고, 우리가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죠.
기술보다 더 어려운 것은 결국, 수십 년간 굳어진 조직문화와 사고방식을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혁신하는 일입니다. 이 거대한 변곡점에서 누가 더 빠르게 조직을 변화시키고 유연하게 움직이느냐가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승패를 가를 것입니다.
미국: AI와 자율주행 중심의 소프트웨어 전쟁
미국 OEM들의 방향성은 명확합니다. 하드웨어의 혁신은 끝났고, 이제는 AI와 데이터가 자동차의 핵심 가치라는 점을 인정한 것입니다. FSD, Dojo, BlueCruise 모두 AI 기반 학습형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테슬라(Tesla)
2024년 4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FSD)와 Dojo AI 칩 개발에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발표.
AI 트레이닝 전용 반도체를 직접 개발함으로써 자율주행 판단 속도와 OTA 업데이트 효율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전략
GM(General Motors)
2016년에 인수한 Cruise의 자금 투입을 2024년 중단하며 자율주행 전략을 전면 재검토
안전사고와 수익성 악화로 인해 연간 10억 달러 이상 지출을 감축하고, AI 소프트웨어 중심의 새로운 개발 구조로 전환을 시도
포드(Ford)
과거 Argo AI에 5년간 10억 달러를 투자했으나, 2022년 사업을 종료하고 Latitude AI를 중심으로 재편
2025년 이후에는 EV 및 소프트웨어 분야의 투자 규모를 ‘수익 기반 중심으로 재조정’할 계획
유럽: 차량 OS와 통합 소프트웨어 플랫폼 중심
유럽 OEM들은 하드웨어보다 OS와 통합 소프트웨어 구조를 통해 디지털 생태계를 재정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폭스바겐의 Cariad처럼 ‘자체 개발’과 ‘시장 속도’ 간의 괴리가 가장 큰 도전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Volkswagen)
2021년, 소프트웨어 전문 자회사 Cariad에 연간 25억 유로를 투입했지만,
2024년 24억 유로의 손실을 기록하며 인력 2,000명을 감축했으며, 이는 소프트웨어 내재화의 어려움과 속도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2023년, 독자 차량 OS인 MB.OS를 기반으로 R&D 예산의 25%를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자한다고 발표.
음성인식, OTA 업데이트, 개인화된 주행 설정 등 사용자의 경험가치를 중심으로 차량을 진화시키는 접근
스텔란티스(Stellantis)
2021년, 2025년까지 5년간 SDV 및 전동화 분야에 300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을 발표
자체 SDV 플랫폼을 중심으로 400개 이상의 차량 모델을 통합 운영할 예정
중국: AI 중심의 속도전, 그리고 인재 전쟁
중국은 소프트웨어 플랫폼보다 AI 중심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특히 AI 인재 확보와 학습 데이터 축적 속도에서 미국·유럽을 능가할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BYD
2024년, 1,000억 위안(약 19조 원) 규모의 AI 투자 계획을 발표
AI 반도체, 음성 비서, 스마트 주행 인식 시스템 등 차량의 두뇌가 되는 영역 전반에 걸친 대규모 투자
샤오펑(Xpeng)
같은 해 35억 위안(약 7조 원)을 투자해 스마트 운전 및 SDV 핵심 기술을 강화하고, AI 인력 4,000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을 밝힘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중심은 이미 ‘철’에서 ‘코드’로, ‘공장’에서 ‘데이터 센터’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OEM들은 SDV를 중심으로 자율주행, AI, OTA, 사이버보안까지 차량의 전 생애주기를 재설계하고 있습니다.
이제 자동차의 경쟁력은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진화할 수 있는가’로 평가될 것입니다.
SDV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자동차 산업이 '하드웨어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 서비스 산업'으로 넘어가는 거대한 변곡점입니다. 어려운 길이지만, 이 변화를 이해해야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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