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레벨 3' 질주, 속도보다 무서운 방향의 확립

실증을 넘어 일상으로

by 조성우

지난 11월, 서울 구석구석을 달리는 12km 트레일 러닝 대회에 참가했을 때의 일입니다. 산길을 달릴 때는 평지를 달릴 때와는 다른 감각이 필요하더군요. 내 발이 닿는 곳(현재)을 보면서도, 동시에 저 멀리 굽어지는 코스(미래)를 함께 봐야 넘어지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자율주행 정책과 안전을 고민하는 제게, 오늘 전해진 중국발 뉴스는 마치 험한 산길을 거침없이 치고 나가는 선두 주자의 뒷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국영 자동차 제조사 두 곳(장안자동차, 베이징자동차)의 '레벨 3 자율주행차'를 최초로 정식 승인했다는 소식입니다. 오늘은 이 뉴스가 단순한 기술 승인을 넘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책과 안전을 다루는 사람의 시선으로 풀어보려 합니다.



'테스트'가 아닌 '상품'으로서의 승인


로이터와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 공업정보화부(MIIT)는 장안자동차의 '디팔 SL03(Deepal SL03)'와 베이징자동차의 '아크폭스 알파 S(Arcfox Alpha S)', 이 두 모델에 대해 레벨 3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정식 제품으로서 판매 승인(Product Regulatory Clearance)을 내렸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던 자율주행차는 대부분 '임시 운행 허가'를 받은 테스트 차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승인은 다릅니다. 이제 이 차들은 '대량 보급(Mass adoption)'이 가능한 합법적 제품으로 '형식 승인(Homologation)'을 마치고 도로에 나옵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차량에 허용된 운행 조건(ODD)이 매우 구체적이고 다르다는 것입니다.

장안자동차의 디팔 SL03는 충칭시에서 시속 50km 이하로 주행할 때만 레벨 3 기능을 켤 수 있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트래픽 잼 파일럿(TJP)' 기능으로, 도심의 혼잡한 상황을 타겟으로 합니다.

반면, 베이징자동차의 아크폭스 알파 S는 베이징의 고속화도로 등에서 시속 80km까지 허용됩니다. 이는 고속 주행까지 염두에 둔 좀 더 진보된 형태입니다.

즉, 지정된 구역에서만 작동합니다. 제조사의 승차 공유(Ride-hailing) 서비스를 통해 시범 운영을 먼저 시작한다는 점도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겠다'는 신중함이 엿보입니다.


마치 트레일 러닝에서 구간별로 난이도에 따라 속도를 다르게 가져가듯, 중국 당국은 기술의 완성도와 도로 환경에 따라 아주 세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무작정 "전국 허용"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차는 팔게 해주겠지만, 기능은 우리가 허락한 땅에서, 허락한 속도로만 켜라"는 이원화된 전략(Dual-track Strategy)을 취한 것입니다.


운전대에서 손을 놓는 순간, 책임의 무게는 이동한다


제가 이번 뉴스에서 가장 주목한 부분은 바로 '책임(Liability)'에 대한 중국 당국의 태도입니다.

"규제 당국은 시스템 실패로 인한 사고 발생 시 자동차 제조업체와 부품 공급업체에 책임을 묻겠다."


레벨 2까지는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해야 하기에 사고의 책임도 운전자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레벨 3는 시스템이 운전을 주도하는 단계입니다. 중국 정부가 제조사에게 책임을 명확히 지우겠다는 것은,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인 동시에 "이제 기술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라"는 강력한 압박이기도 합니다. 이는 제조사들이 품질 관리에 사활을 걸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속도, 그리고 방향


트레일 러닝에서 무작정 속도만 낸다고 1등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코스를 정확히 읽고, 내 체력에 맞는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국은 중앙 정부가 차량(하드웨어)을 인증하고, 지방 정부가 도로(인프라)를 여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분산하며 상용화의 문을 열었습니다. 특히 승차 공유(Ride-hailing) 서비스를 통해 B2B로 먼저 데이터를 쌓겠다는 전략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현명한 '빌드업' 과정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국가 주도의 강력한 드라이브와 국영 기업을 앞세워 '레벨 3 상용화'라는 가파른 언덕을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2026년,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있는 저에게 이번 소식은 우리 자동차 산업과 정책이 가야 할 길에 대해 묵직한 화두를 던집니다.


속도만 낸다고 일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처럼 명확한 ODD 설정, 그리고 사고 책임에 대한 과감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만 자율주행이라는 긴 레이스에서 낙오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자율주행이라는 긴 레이스 시계는 지금 몇 시를 가리키고 있을까요? 트레일 러닝화를 끈을 다시 조여 매듯, 우리도 정책과 기술의 신발 끈을 단단히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요약 & 인사이트]

* 최초 승인: 단순 실증이 아닌, 정부가 국영 제조사(장안, BAIC) '정식 제품'으로서의 레벨 3 자율주행차(Deepal, Arcfox) 최초 승인.


* 안전 전략: 초기에는 50~80km/h 속도 제한 및 지정 구역 운행, 승차 공유(B2B) 형태로 리스크 관리.


* 책임 소재: 운전 중 딴짓(Eyes-off)을 허용하되, 사고 시 제조사 책임을 명문화하여 기술 안전성 강제 및 시스템 오류 시 제조사와 부품사에 법적 책임을 묻는 구조를 확립, 기술 완성도 강제.


* 시사점: '실증' 단계를 넘어 '상용화'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차량 인증(중앙)과 운행 허가(지방)를 분리하고, B2B(승차 공유)부터 시작하는 단계적 확산 모델은 한국 정책 수립의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됨.


https://www.reuters.com/world/asia-pacific/china-approves-first-batch-l3-autonomous-driving-vehicles-2025-12-15/ ​ (접속일 : 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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