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AS라는 '안전지대'로 숨는 세계
자율주행 기술의 최전선, 특히 정책과 안전 기준을 고민하는 자리에 계신 분들이라면 최근 업계의 흐름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실 겁니다.
기술은 분명 Level 3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정작 법규와 글로벌 제조사들은 '고도화된 Lv 2'라고 불리는 DCAS(Driver Control Assistance Systems, UN R171)의 그늘 아래 머물기를 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중국 BYD의 Lv 3 양산 테스트 소식은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듯합니다. 오늘은 "책임 회피를 위한 DCAS"라는 국제적 흐름과, "책임 공방을 뚫고 직진하는 중국"의 상반된 행보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국제사회의 딜레마: "기술은 되지만, 책임은 지기 싫어"
국제 기준(UN R157)상 Lv 3 자율주행은 '시스템이 운전의 주체'가 되는 단계입니다. 이는 사고 발생 시 제조사가 법적 책임(Liability)을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책임'의 무게는 경영진에게 엄청난 공포입니다. 0.001%의 사고 확률이라도 제조사가 모든 리스크를 떠안는 것은 도박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제 사회(UNECE WP.29)가 찾아낸 영리한 타협점이 바로 UN R171, 즉 DCAS입니다.
기능은 Lv 3급: 차로 변경, 고속도로 주행 등 사실상 자율주행에 가까운 기능을 제공합니다.
책임은 Lv 2급: 하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운전자 보조' 장치입니다.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해야 하고(Eyes-on), 손을 떼더라도(Hands-off) 언제든 제어권을 회수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 엔지니어와 정책 입안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현재 기술로도 고속도로 Lv 3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을요. 하지만 '제어권 전환(Transition of Control)' 실패 시 벌어질 법적 공방이 두려워,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DMS)을 강화할 테니, 제발 딴짓하지 말고 책임은 운전자가 지세요"라고 말하는 DCAS라는 안전지대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중국의 전략 수정: "노동력 갈아 넣던 과거는 잊어라"
이런 상황에서 중국 공업신식화부(MIIT)와 BYD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중국은 DCAS처럼 우회하는 도로를 택하지 않고 베이징과 선전 등 주요 도시에서 '진짜 Lv 3' 면허를 발급하며 15만 km 이상의 실도로 데이터를 쌓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중국의 성장을 폄하하곤 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과거 ‘저임금, 저복지, 저인권’에 기반하여 제조업 경쟁력을 제고하던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지금 그들이 자율주행 분야에서 보여주는 경쟁력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닙니다. ‘국가 주도의 파격적인 규제 철폐’와 ‘사고 리스크를 감내하는 데이터 축적’이라는, 서구권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시스템 경쟁력을 무기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사고 책임 가이드라인을 'Fast-track'으로 정리해 주며 기업의 등을 떠미는 형국, 이것이 지금 중국이 무서운 진짜 이유입니다.
넛크래커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 있습니다.
DCAS는 분명 합리적인 과도기적 규제이자, 제조사와 운전자 모두를 보호하는 안전장치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DCAS라는 울타리 안에서 '운전자가 딴짓을 하는지' 감시하는 기술을 다듬고 있을 때, 중국은 야생의 도로에서 '시스템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학습시키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결과는 명확해질지 모릅니다.
운전자를 모니터링하는 기술은 우리가 앞설지 몰라도, 정작 운전자 없이 주행해야 하는 미래 기술(Lv3/Lv4)의 데이터 주권은 중국에게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가 답은 아닙니다. 다만, '사고 책임'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Lv3라는 본질적인 목표를 잊고 DCAS라는 수단에만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중국의 변화된 경쟁력 제고 방식을 너무 안일하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입니다.
https://www.scmp.com/business/china-business/article/3336841/byd-ups-ante-l3-autonomous-cars-begins-testing-models-mass-production(접속일 : 202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