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나는 내 삶의 루틴을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작은 습관들이 일으키는 큰 변화를 만들어가고자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집 앞 하천을 매일 달리기 하는 것이었는데 한 바퀴에 1.6km, 두 바퀴에 3.2km가 되는 거리를 매일 두 바퀴씩 돌자고 두 달 전부터 꾸준히 '도전' 했다.
저질 체력이 갑자기 좋아질 리는 만무해서 말이 달리기였지 태반이 걷는 것이었고, 제대로 뛰기 시작한 것은 2주가 채 안되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지난주에는 3.2km 달리기를 3일 동안 하고 남편에게 얼굴 선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만에 생기 있고, 윤기가 나는 피부를 되찾은 것 같아 행복했다. 그와 함께 나의 일상을 만들어가는 작은 습관들도 더욱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았다.
근데 이번 주는 월요일 딱 한번 빼고는 달리기를 못했다. 몸이 아파서 집에서 꼼짝 못 한 날도 있었다. 그 정도의 운동에 내 몸이 축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결국 몸은 나에게 반기를 들었고, 나는 그 반기를 들어줘야만 했다. 무언가 잘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의욕을 잃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더 밀어붙이기 싫어서 내가 스스로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일의 양이라는 것도 사실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나는 그런 체력적, 정신적, 그리고 인지적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모두가 최고 빠르게 달리고자 하지만 모두가 9.7초의 기록을 세울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인정하기 싫어도 결국 내 삶은 '고작 이 정도'일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
.
.
.
.
.
.
.
.
.
근데 곧바로, 그 '고작'이라는 삶이 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백인에게 버스 좌석을 양보하지 않아 미국에 거대한 인권 운동을 이끌어낸 주부 로자 파크스의 평범하던 일상은 '고작 그런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하던 배우의 길이 순탄치 않아 생계를 위해 찜질방 아르바이트로 일했었던 배우 이시영의 삶을 그 당시에 보았다면 '고작 그런 젊음'이라고 혀를 끌끌 찰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각자 서로 다른 장소와 서로 다른 시대의 시간에서 서로 다른 상황의 삶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경험 들은 온전히 나만 겪을 수 있었던 꽉 찬 나로서의 경험인 것이다. 어떤 자들은 혹독한 시련의 삶을, 어떤 자들은 그저 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무언가 잭팟이 터지듯 언론에 노출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채 계속 그래 왔던 것처럼 평범한 삶을 살기도 한다. 우리가 소설에서, 뉴스에서 접하는 '어떤 대단한 삶'이 위대해 보인 것은 지극히 일상적이었던 하루하루가 모여서 그 사람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잭팟이 터지건 터지지 않건 그 삶들은 그 자체로 유일하기에 귀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스토리를 우리는 결코 한 방향으로 한 기준으로만 재단할 수 없다. 그것은 사원부터 시작해서 CEO까지 올라간 성공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폐지 줍는 할머니의 가슴 울리는 인생 이야기 일 수도 있는 것이다.
.
.
.
.
.
돌이켜 보니 우리 삶에 '고작 이런 삶'이라는 것은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너무도 아끼는 나의 여섯 살 조카에게도 '어떤 삶'을 살라고 이야기해줄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어떤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겠다. 다만 그 어떤 삶을 살건 너 스스로가 자신을 지킬 줄 알고 주변에는 축복을 내려주는 그런 삶을 살라고 이야기해 주겠다. 너무 소중한 나의 그 작은 소녀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