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향기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by 마음정원사 안나

이건 조금 창피한 이야기 이긴 한데 일 년 전 회사를 그만둘 때 나는 스타트업의 CEO가 되려고 결심했다.

더 이상 이런 구닥다리 회사는 다니지 않겠노라고!

세상을 바꿀 변혁을 일으켜 낼 것이라고!


회사에서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답답한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내 안에는 다 펼치지 못한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가치와 일치하기만 한다면 세상을 뚫고 엄청난 일을 이루어 내고야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 일 년간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다가 마음대로 일이 되지 않아 잠시 돌아선 지금, 다 내려놓고 책 읽기와 글쓰기에만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명상을 하고 글을 조금 쓰다가 집중이 되지 않으면 근처에 있는 하천과 산으로 산책을 나간다. 봄의 여왕 5월 답게 집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이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에 반짝반짝 빛난다. 기분 좋은 햇살을 얼굴 한가득 맞으며 발걸음을 옮겨서 숲으로 가는 나무 계단을 오른다. 나무계단 사이에 난 잔디 위로 새끼손톱보다 더 작은 하얀 꽃잎들이 송송이 숨어 있다. 작은 꽃들에 인사를 하고 조금 더 걸어서 이번엔 목이 기다란 민들레 같이 생긴 꽃에 얼굴을 가까이하고 향기를 맡아본다.


고개를 들어 숲으로 난 산책로를 보면 어릴 적에는 엽서에서나 보았던 외국의 공원의 모습이 있다. 걸음걸음 앞으로 나아가 걸으면 두 눈으로 보아도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들이 계속 계속 펼쳐진다. 하천을 따라 햇볕에 반사되는 시냇물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졸졸대는 시냇물 소리와 그 위로 아름다운 새소리들이 종류별로 지저귄다. 밤이 되어 집에 돌아와서 어둑해지는 뒷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람 따라 불어 들어오는 라일락 향기에 온 마음이 황홀해진다.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움에 발버둥 치던 8개월을 뒤로하고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글을 읽고 쓰고 명상하는 것에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 산책하며 만나는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서 이곳이 정녕 지상인가 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지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는 향기와 형형 색색의 자연의 모습이 그저 황홀하고, 이렇게 산책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함께 웃고 지내는 오늘의 하루가 너무나 행복할 따름이다. 이즈음 되니까 애초에 내가 뭘 하고자 회사를 그만두었는지 모르겠다.


정해진 일의 틀 안에 나를 구겨 넣고 11년을 살아간 동안 나에게 남아 있던 열정이란 건 다 휘발된 걸까. 지금 나는 그저 이렇게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내는 게 너무나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진지하게 나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너는 대체 어떤 사람인 거니? 이제는 서른여덟이니 솔직하게 답해야 할 것 같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냐고? 정말 묻고 싶다. 그간 말해왔었던 열정 넘치는 삶은 사실 거짓이었던 거니???


근데 그렇다고 영원히 이렇게 아무 일도 안 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나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이까지도 낳지 않겠다고 오래전에 선언했었는데!!! ㅎㅎㅎ 내가 생각해도 이런 내가 황당하다. 하하하..



이번 주 까지는 대답을 좀 들어봐야 하겠다.

내가 바라던 바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안빈낙도의 삶이었냐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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