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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정원사 안나 Feb 16. 2022

마음속의 영사기를 바꾸세요.

여러분은 마음이 의지데로 작동한다고 느끼시나요?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데로 생각과 행동을 조절할 수 있나요?


평상시에는 우아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면서도 적절하게 유머를 넣어서 분위기를 띄우고, 억울한 상황에 놓이면 나를 대변해 줄 말을 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통쾌하게 한마디를 날려주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자신을 제어할 수 있나요?


뭐 이렇게 꼭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더라도 여러가지가 있겠죠. 나에게 도움이 안되는 안좋은 생각이 솟아날때면 즉각 기분 전환을 할줄 알고, 불안한 마음이 들때면 나를 다독여주고, 좌절속에서도 희망을 품을수 있는 마음의 힘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잠재의식에 대해 강의하는 세계적인 부자 '밥 프록터'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육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 마음가 마음 근육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은 아마도 손가락 하나도 들어 올리기 힘든 수준일  것이라고 말이에요. 




저는 오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온 감각이 마비가 온 것 같았습니다. 내 마음은 경직되어서 원치 않는 상황에서 불쑥불쑥 화를 냈고, 웃으면 안되는 때에 웃어서 자신을 불리하게 만들었고,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갔어요. 제 마음은 기어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제 멋대로 굴러갔습니다. 마음을 스스로 컨트롤 하지 못하니 당연히 행동도 컨트롤이 되지 않을테고 삶의 방향도 제어가 되지 않았겠죠.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인생이 이렇게 굳어져 가는건가 하는 생각을 끝도 없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들 재미 없는 아저씨가 되고, 무기력한 부장님이 되고, 같이 있으면 재미도 의욕도 느껴지지 않는, 답답한 사람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 했습니다. 


마음이 제어되지 않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히 더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예전같으면 유연하게 대처했을 상황에서도 뻗뻗하게 고집을 피우게 되고, 즉각적인 감정 너머에 있는 상대방의 두려움, 욕망 등을 바라볼 수 있는 유연함이 없어졌지요. 그래서 퇴사 후에 인간관계에 대해 공부하면서도 초점을 두었던 것은 '저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고,' '상대을 제압할 수 있는 시원한 한방' 을 찾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우리는 자신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밖에 나가서 남과 샅바 싸움을 하는게 아니라 나 스스로 내면을 강하게 하는 것이라는 거죠. 




불교 철학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보는 세상은 실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우리 마음이 투영된 환상이라는 메세지가 심겨져 있습니다. 내가 그 환상속에 있는 인물을 바꾸려면 유일한 방법은 내 마음속에 있는 마음의 영사기를 바꾸는 것 뿐이겠죠. 


명상은 영사기를 조절하는 힘을 길러 주는 기법입니다. 프로젝터에 내가 원하는 장면이 나올 수 있도록 바꾸는 힘을 길러주는 거에요. 명상을 하는 것을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것에 비유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진심으로 정확한 표현 입니다. 명상을 하는 것은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스스로 일어나 걷기조차 힘든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작업입니다. 10년동안 병상에 누워 꼼짝않고 있었다면 두 다리로 일어서는 데에 2년 3년이 걸릴 수 있겠죠. 우리 마음도 내가 작동을 하지 않은 기간 만큼 굳어져 있기에 명상으로 내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적을게요. 다음에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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