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쉼이 필요해.
사업을 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쉬고 싶었다.
퇴사를 하고 난 직후였습니다. 남편에게 호기롭게 퇴사를 선언하면서 겉으로는 '회사보다 더 어마어마한 성공을 해내겠다'며 사업약속을 했지만 사실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그냥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성공? 사실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라는 기준으로 인해 지칠데로 지쳐버린 상황이었습니다. 현생에서 요구하는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조차 따라가기 너무 버겁고 힘겹게 느껴졌어요. 번듯한 명함이나 좋은 레스토랑 같은 것들도 그저 나를 더 숨가쁘게 만들 뿐이었고, 저는 가장 소박하게 가장 단순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번듯한 인생은 됐으니 기본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남편에게 굉장히 미안해 지네요 ㅎㅎㅎ)
그 당시 제 마음은 내가 내 인생을 살지 못하고 있는 느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오랫동안 살아 온 느낌, 무엇을 해도 어설프고, 온전히 내것이 되지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자는 구호는 결과적으로 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이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 냈고, 진심을 다하는 것은 또다른 오해를 낳을 뿐이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없는 일을 꾸역꾸역 해가며 나는 내 삶을 살고 있는게 아니라 이 세상의 구도에 나를 구겨넣고 겨우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의 속사정을 모르는 남편은 집에만 있는 저를 보며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했지요. 바람을 좀 쐬고 오라고. 하지만 제가 바라는 것은 여행 수준이 아니라 우리 앞에 놓여진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제로에서 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내가 원치 않는 기준과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온전히 나를 행복하고 평안하게 해 줄 수 있는 아주 작고 소박한 것들로만 삶을 채워나가고 싶었죠. 하지만 멀쩡하게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 남편에게 그만두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설득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찾는 과정은 내 방에서 소심하게 진행 되었습니다.
나를 구속하는 것은 회사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름의 방식대로 세상의 이치와 원리를 깨우쳐갑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나의 삶의 지표로 삼고 살아가죠. 목표에 빠르게 도달하게 해 주는 방법, 위험한 상황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덜 받는 방법, 손해 보지 않는 방법 등, 삶에서 얻은 배움들을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골라 내 몸속에 새겨 넣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가 어떠한 순간을 직면 했을 때 빠르게 살아가게 되는거죠.
놀라운 것은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해가지 않는 행동들'들 또한 그들 나름데로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방법을 적용한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내 카톡에 늦게 대답하고 때로는 회신을 하지 않아서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 사람의 행동도 '연락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자신만의 최선의 전략'에 의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접촉 사고가 나면 차에서 내리자마자 뒷목부터 잡고보는 어처구니 없는 차주의 행동도 '나쁜 놈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선수쳐야 한다'는 나름의 배움에 기반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보통 청소년기부터 시작해서 대학 시절을 거쳐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원칙과 노하우를 쌓게 됩니다. 이것들은 처음에는 말랑말랑해서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딴딴하게 굳어져 버려서 언제부터인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듭니다. 내가 만든 생각의 껍데기들은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게 가로막았고, 내가 온전히 나로서 살아갈 수도 없도록 나를 옭아메고 있습니다.
제가 산에 가고 싶었던 이유도 어쩌면 내가 만든 이 수많은 기준과 편견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산에 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거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도 숨이 가빠온다.
저는 주로 집에 있었습니다. 잘 다녀올게 라며 인사를 하고 나가는 남편에게 잠에 덜깬 부시시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잠옷을 입은채로요. 누가봐도 세상 속편한 팔자좋은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이 없게도 세수도 안하고 잠옷바람으로 하루 종일 집에 있던 저는 회사를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쫓기는 듯, 숨막히는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런 성과물도, 아무런 미팅도 없었지만 마치 오늘 내야 하는 과제물에 쫓기듯이 분주한 마음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한시간 달리기'와 같은 계획에도 저는 쫓기는 듯한 분주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온종일 아무 일정이 없다고 해서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고, 생각은 쉴 줄을 몰랐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머리가 띵하고 온 몸은 피곤했습니다. 퇴사 6개월 차가 되었을 때 였습니다. 분명 나는 일을 하지 않고 놀고 있었지만, 얼굴 표정은 한달동안 야근했던 때 처럼 푸석푸석하게 굳어지고, 몸은 더 피곤해져서 의자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남편이 저의 컨디션을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냐고. 뭐가 그렇게 걱정이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할 수 없었죠.
그저 아무리 쉬어도 저는 온전히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마침 신문에서 하안거에 들어가는 스님들의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안거는 음력 4월부터 7월까지 승려들이 한 곳에 모여 수행을 하는 기간입니다. 저 사진을 보고 아 나도 3개월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명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