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정원사 안나 Sep 02. 2020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아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오래 기다려 왔던 자전거 라이딩  

자전거를 산 뒤로 우리 부부는 그 매력에 푹 빠져서 눈만 뜨면 자전거를 타고 나갈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여름 장마는 2주 넘게 계속되었고, 이제나 저제나 날씨가 개일까 하며 뚫어진 듯 비를 쏟아내는 하늘만 바라보며 집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긴긴 장마 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해가 반짝하고 뜬 지난 주말, 우리는 벼르고 벼러왔던 자전거 여행을 준비했다. 넘쳐흐른 홍수로 아직 자전거 길이 정비되지 않은 터라 한강을 돌 수는 없었지만 아쉬운 데로 서울 시내 곳곳을 둘러 보기러 했다.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남편은 지도를 펼쳐서 온종일 들여다보았다.


근데 남편은 모르는 일이 하나 있었으니 나에게는 얼마 전 새로 생긴 트라우마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다가 패인 구멍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대단히 위험한 지형도 아니었고, 누가 옆에서 박은 것도 아닌데 유유자적하며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혼자서 대차게 넘어진 기억은 자전거 자체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로는 바퀴가 미끄러지는 건 아닌지, 브레이크가 고장 나지는 않을지, 차체가 분해되는 건 아닌지, 망상에 가까운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믿음이 적어질수록 실제로 내가 자전거를 타는 자세는 매우 불안정해졌다.


꺼림칙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화창하게 개인 날씨를 저버릴 수는 없었던지라 아침 일찍 남편을 따라나섰다. 근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주말인데도 미라클 모닝을 한다며 조금밖에 자지 않고 5시 기상을 한 것이 화근이었던 듯하다. 자전거 불신에 수면 부족으로 나는 주말 라이딩을 찌뿌둥한 기분으로 시작했다. 이런 나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서울 시내를 모두 돌아볼 기세로 의욕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허망하다. 지도에서는 2시간 남짓한 길인데 우리는 5시간이 넘게 걸렸다 ㅠㅠ 


초보에게는 너무나 어려웠던 극한의 라이딩 

우리는 장승배기역에서 시작해서 한강대교를 지나 서울역,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까지 왔다. 컨디션이 안 좋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한적한 시내를 자전거로 달리는 기분은 상쾌했다. 청와대 근처, 1차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그다음 동선을 정해보았다. 남편은 북악 스카이웨이를 가고 싶어 했지만 초행자가 달리기에는 경사로가 심해서 너무 힘들 것 같아 포기하고 둘러 가기로 했다. 하지만 차선으로 선택한 길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부암동에서 평창동으로 가는 길은 북악 스카이 웨이 못지않은 오르막길이었다. 운동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처음 4시간 동안은 쏟아지는 땀을 즐기며 달려왔지만 끝이 안 보이는 오르막에 맞닥뜨리게 되자 싸워 이기는 희열보다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건드리는 듯한 스트레스가 페달을 밟을때마다 가해졌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지도 이제 5시간이 넘어가고 꾸준하게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언덕길을 한 시간째 올라서 겨우 맞이한 내리막길. 이제 살 것만 같았다고 생각이 들 무렵 남편은 다시 한번 뒤돌아 나를 보더니 


"우리 다음 목적지는 남산으로 하는 게 어떨까?" 

라며 싱긋 웃었다.



부화가 치민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갑자기 부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나는 남편에게 달리는 내내 틈나는 대로 나의 상태를 내비쳐 왔었다. '자전거가 이상한 것 같다', '브레이크가 잘 안 듣는 것 같다', '바퀴가 미끄러질 것 같다.' 게다가 밥시간 때도 지나가서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은 그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힘든 것이 뻔한데 그런데도 의욕에 넘친 남편이 나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다시 한번 지옥 같은 언덕길을, 그것도 남산으로! 올라가자고 하다니!!! 내 얼굴은 나도 모르게 똥 씹은 것 같은 표정으로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내 입에서 나온 것은 'no'가 아닌 'yes'였다. 나는 뒤엉킨 욕구로 '못 먹어도 go'를 외치고 있었다. 표정과 말이 확연히 다르기에 그 질문에 대해서 남편이 여러 번 다시 물어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괜찮아?" "쉬었다 갈까?" "집에 갈래?" "밥 먹고 싶어?".........  "아니" 



내가 뭘 원하는지를 명확하게 하고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갑자기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 항상 나는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했었다. "이거 먹을래?" 하면 "아니"라고 말해도 사실 속으로는 내가 뭘 먹고 싶어 하는지 알아줬으면 생각했다. 물론 나는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내 의사를 충분히 표시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걸 물어보는 엄마가 밉고 짜증 나서 더 엉뚱한 대답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내가 엉뚱한 대답을 한대로 엄마가 행동했기 때문에 나는 더욱더 짜증을 내면서 울어재꼈던 기억이 있다. 인정한다. 나는 참 다루기 어려운 피곤한 아이 었다.


아주 오랜만에 어릴 적 기억이 날 정도로 나는 그날 최악의 컨디션 때문에 아주 유아기적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 콕 집어서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그것을 찰떡 같이 알아서 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피곤해도 자전거를 계속 타고 싶다는 가당치 않은 욕심과 함께 더 이상 못 타겠다는 신체적 거부가 마구 뒤섞여 있어서 내가 뭘 원하는지 조차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이런 상황이 싫고 남편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다행히 마침 엄청 맛있어 보이는 평양냉면 집 옆을 지나가게 되었고, 우리는 들어가서 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풀린 나는 집으로 가자고 이야기를 했다. 음식점에 들어가게 돼서 천만다행이었지 계속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심통을 부리다가는 남편의 인내심도 바닥이 날 상황이었다. 아마도 10분만 더 갔다면 우리는 크게 싸웠을 것 같았다. 평양냉면이 우리를 살렸다




관계를 개선하는 지름길, 내가 원하는 것을 아는 것  

돌아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리고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내가 뭘 원하는지를 나 조차도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욕구가 뒤 섞여서 그래서 뭘 원하는 건지를 정리하여 이야기하지 못하고, 내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그런 상황에 대해 불평불만을 하고, 나아가 그 상황에 함께 있는 누군가를 탓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마셜 로젠버그는 '비폭력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나의 욕구를 알기'를 들었다.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자신이 뭘 원하는 건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를 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것, 안 했으면 하는 것, 혹은 지금 상황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불평불만하 한다는 것이다. 결국, 상대를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가득한 대화를 하기 때문에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우리는 행복한 결말과 멀어진다. 


혹시 회사에서 당신이 트러블을 겪고 있는 관계가 있는가? 누군가 당신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왜 사사건건 시비를 거세요?"가 아닌 이렇게 말해 보면 어떨까? 

"당신이 저를 존중해서 대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꼬여있는 관계를 푸는 첫 단계는 나의 욕구를 명확하게 알고 전달하는 것이다. 

지름길로 가자. 나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꼬여 있는 관계를 훨씬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 돌아가지 말고  당신이 원하는 그 길로 직행해서 가자.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은 관계 개선의 지름길이다.  

나의 마음을 잘 아는 것이 관계 개선의 지름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의주의자들과 함께 일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