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회식 날, 9시는 언제 돼?
며칠 전부터 달력에 동그랗게 표시해 두었던 회사 회식 날.
오랜만에 있는 저녁 회식이었고, 회사 일정을 고려하면 꼭 참석해야 할 자리였다.
그런데 그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으로서, 평일 저녁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분주하면서도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밥을 먹고, 하루를 함께 마무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니까.
그래서일까. 바쁜 하루를 마치고 아이들 곁에 앉아 있는 그 평범한 시간이, 나는 참 좋다.
회식 날, 시터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저 오늘 밤에 회식 가야 하는데… 너무 가기 싫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건 엄마라서 그래요. 엄마니까 당연한 거예요.”
그 말이 참 깊이 와닿았다.
별다른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아이들 곁에 있고 싶은 마음.
그게 전부였고, 그걸 설명하려 들지 않아도 되는 게 ‘엄마’라는 존재였다.
어쨌든 회식 자리에 갔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다시 회사의 일원으로 자리 잡은 워킹맘으로 앉아 있었다.
세 번의 육아휴직을 거치면서도 이 자리에 다시 앉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일에 대한 복잡한 감정도 밀려왔다.
일을 시작하려 하면 육아휴직. 돌아와 자리를 잡으려 하면 다시 또 휴직.
내가 맡았던 사건은 다른 이의 손을 거치게 되고, 그 사건이 잘되어도 그 성과는 내 몫이 아닌 듯 흘러간다.
‘나도 일 욕심이 있긴 있구나.’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다.
욕심이라기보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증명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딸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엄마, 보고 싶어. 언제 와?”
그리고는 시계를 들고 와 물었다.
“엄마, 9시에 온다고 했잖아. 9시는 언제 되는 거야?”
그 순간 마음이 찡했다.
아이에게 ‘9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엄마를 기다릴 수 있는 끝자락의 시간이었던 거다.
집에 도착해 남편에게 물었다.
“첫째랑 둘째는 어땠어?”
“엄마 많이 찾았지~ 엄마 찾다가 잠들었어.”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스럽고 또 안쓰럽고. 그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날 밤, 나는 괜히 내 나이를 검색해 봤다.
만 35세.
일하기엔 한창 젊은 나이였다. 사회적으로도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길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예쁜 첫째와 이제 막 돌 지난 둘째와 함께하는 이 짧고도 찬란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일도 소중하지만, 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은 더없이 단 한 번 뿐이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렵다.
나는 욕심도 있고, 책임감도 있고,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있어서.
그날은, 오랜만에 엄마이자 나로서의 마음이 참 여러 갈래로 나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