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투정이라고 부르기엔

하루의 끝에서 마음이 머무는 곳

by 다정한 마음결

열흘이 넘는 휴가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날,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지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충분히 쉬었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도 많았는데 일상은 다시 묵직하게 몸 위로 올라왔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일하는 게 버거웠다.

친정 엄마께서 첫째를 직접 하원시키며, 첫째에게서 들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주었는데 그게 참 부러웠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등, 하원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아이의 하루가 열리고 닫히는 가장 밀도 높은 시간이다.

그 시간에 아이는 오늘 있었던 사소한 일, 선생님이 해준 말 한마디, 집에 가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들 등등을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장면을 함께하고 싶은 엄마다. 그 사이의 공기까지 함께 느끼고 싶은 엄마다.

이 마음들을 계속 꾹꾹 눌러가며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지금의 이 마음을 기억한 채 아이 옆에서 더 많이 걷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일상에 조금 더 가까이 있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들이 소용돌이치던 오늘 밤, 남편은 야근으로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첫째와 함께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했고, 아이들을 보고 싶지 않을 리 없을 텐데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 정도로 힘들다고 느끼는 건, 어쩌면 투정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나의 마음을 챗 GPT에게 털어놓았다.


"오늘 남편이 야근하느라 늦게까지 일하는 거 보니까, 내가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힘들다고 느끼는 게 무언가 투정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세상에는 그 마음 참고 일하는 엄마들이 정말 많고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나는 전문직에 월급도 많이 받는 편이거든."


이에 대한 챗 GPT의 답변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아서 전문을 그대로 남기고 싶다.

특히, 두 번째 답변이 내 마음을 너무나도 흔들었다.

나의 역할과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계속 흔들리고 있어서 늘 줄다리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 생각을 이렇게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순간이, 사실은 제일 아픈 순간이야.

그래서 나는 이걸 투정이라고 보지 않아. 충돌이야. 네 안에서 두 개의 가치가 정면으로 부딪힌 거야.


1️⃣ “남편은 참고 일하는데, 나는 왜 이러지?”라는 생각의 정체

이 비교는 너무 인간적이야. 그리고 동시에 너를 가장 세게 깎아내리는 비교이기도 해.

네 머릿속 논리는 이거지:

세상엔 참고 일하는 사람 많고

남편도 아이들 보고 싶어도 참고 일하고

나는 월급도 많이 받는데

→ 그러면 내 힘듦은 사치 아니야?

이 논리는 이성적으로는 완벽해 보여. 그런데 감정에는 이 공식이 안 먹혀.


2️⃣ 왜 남편과 네가 같은 상황이 아닌지

이게 핵심이야.

남편은:

힘들어도 그게 자신의 역할과 정체성에 비교적 잘 맞는 방식일 가능성이 커

“힘들다”가 곧 “내가 잘못 살고 있다”로 연결되지는 않아

너는:

힘들어질 때마다
“이게 나한테 맞는 삶인가?”
“나는 왜 이걸 선택했지?”
“아이들 곁에 없다는 게 옳은가?”
이 질문들이 같이 올라와.

같은 야근이라도 정체성까지 흔들리는 피로는 종류가 달라.


3️⃣ 네 마음이 투정처럼 느껴지는 진짜 이유

이건 솔직히 말할게.

너는 이미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정당화 논리를 적용해 왔어.

아이 때문에도

가족 때문에도

돈 때문에도

커리어 때문에도

그래서 어느 순간 “이 정도면 그냥 참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이 생각이 튀어나오는 거야.

그건 투정이 아니라 자기 검열이 너무 오래 지속된 결과야.


4️⃣ 중요한 구분 하나만 해보자

이 질문으로 정리해 보면 좋아.

“이 마음이 사치냐?” ❌ “이 마음을 무시하면 내가 더 단단해지나?” ⭕

정답은 솔직히 알잖아. 무시할수록 더 닳아.

네가 느끼는 이 감정은

“일하기 싫다”가 아니라

“내 삶의 중심이 어디인지 계속 어긋난다”는 신호야.

이 신호를

남편과 비교해서 지워버리면

돈으로 눌러버리면

언젠가는 몸이나 감정으로 더 크게 돌아와.




나는 아이 하원을 직접 하는 엄마들이 부러웠다.

아이 손을 잡고 하루의 끝을 함께 걷는 그 장면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그러나, 이미 많은 걸 가진 사람이 더 바라는 것처럼 보일까 봐, 현실을 모르는 불평처럼 느껴질까 봐 이 마음을 스스로 검열하게 되었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해져 보니 이 마음은 나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조심스럽게 확인하는 것에 가까웠다.


아이와 연결되고 싶은 것은 엄마로서 너무 자연스러운 바람이기에, 오늘은 “나도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허락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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