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리, 딸의 자리
사랑하는 나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아흔셋. 사람들은 충분히 오래 사신 삶이라고 말하지만, 남은 마음은 늘 그렇듯 ‘조금만 더’에 매달린다.
애도는 하나의 감정으로 오지 않았다. 슬픔과 죄책감, 미련과 감사가 동시에 밀려왔다.
일하는 나를 대신해 평일마다 우리 집에 머물며 손주들을 돌보시느라, 엄마는 정작 보고싶은 할머니 곁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 나를 붙든다.
‘내가 엄마를 붙잡아 둔 건 아닐까.’ 이 문장이 가장 아프다.
아들 셋에 막내딸을 두신 외할머니의 마지막 날, 막내 딸내미가 곁을 지켰다.
그날 새벽 심정지가 왔고, 심폐소생술로 인공호흡기를 단 채 하루를 버티셨다.
그날 엄마는 우리집에서 손주들을 돌보시다가, 연락을 받고 광주로 급히 내려가 저녁 면회 시간에 외할머니 얼굴을 뵈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온 밤 열한 시, 부고를 들었다.
나는 역으로 엄마를 마중나갔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엄마의 전화가 울렸다. 엄마와 나는 펑펑 울며 오열했다.
그날, 마지막으로 막내 딸을 보고 떠나신 것이다.
이 사실은 나를 위로하면서도 동시에 더 아프게 했다. 할머니가 그토록 보고싶은 사람이 우리 엄마 아니었을까.
올해의 나는 겨우 버티는 사람이었다.
두 아이, 회사, 끝없이 이어지는 책임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께 전화도 자주 못 드렸다.
추석 연휴는 길었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 ‘내년이면’이라는 말로 미뤘다. 내년이면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숨통이 트이고, 둘을 데리고 할머니를 뵈러 가려고 했다. 그런데 내년은 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올해 4월 복직하기 직전에 외할머니를 꼭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엄마와 첫째와 함께 광주에 갔고, 함께 예쁜 추억을 만들었다.
답답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챗 GPT에게 마음을 쏟아내듯 털어놓았다.
지금 네 마음이 얼마나 뜨겁고 복잡하고 무너지는지 정말 잘 느껴져.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감정이 후회야.
“그때 전화할걸.”
“그때 그냥 갔어야 했는데.”
“조금만 더 마음 여유가 있었으면…”
이런 생각들은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인간적이야.
지금 네가 느끼는 건 잘못이 아니라 사랑이 끝났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야.
그리고 아주 중요한 말 하나 할게.
너는 올해 정말 힘들었어.
두 아이 육아, 일, 책임감, 엄마의 도움, 회사의 강도…
너 지금 한 해 버티느라 몸도 마음도 완전히 소진됐던 해잖아.
이런 상태에서 누군가를 챙기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야.
그건 너무 벅차서였어.
할머니는 그걸 몰랐을까? 아니야.
오히려 할머니는 “손녀가 얼마나 힘들게 애 둘 키우며 일하나”를 더 잘 아셨을 거야.
그리고 그런 손녀를 원망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았을 거야.
그분 세대는 그런 거 너무 잘 아셔. “손주는 지금 삶이 바쁘지.” 이렇게 받아들였을 거야.
추석 때 못 간 거, 전화 자주 못 드린 거…
그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네가 너무 열심히 살아서 생긴 결과야.
사람은 동시에 모든 역할을 완벽히 할 수 없어.
엄마, 딸, 아내, 직장인… 네가 올해는 그 네 가지 역할을 숨 가쁘게 오가며 살았던 거야.
그리고 엄마 이야기.
“엄마가 우리 집에 붙잡혀 있었다”는 생각이 네 가슴을 후벼 파는 건, 너무 잘 알아.
그런데 있잖아. 엄마가 너한테 말 안 했지만, 엄마는 선택을 한 거야.
‘지금은 우리 딸이 더 급하고, 더 힘들겠다.’
엄마의 그 선택은 희생이 아니라, 엄마가 하고 싶어서 한 사랑이야.
그리고 엄마가 이걸 후회할까? 아니야.
엄마도 엄마의 엄마를 사랑하지만, 자기 딸이 힘들 때 도와주는 것도 그분의 삶에서 너무 중요한 사랑이야.
너는 “내가 회사를 안 다녔더라면 달라졌을까?”라고 말하지만, 이건 죄책감이 만들어내는 착시야.
네가 어떤 선택을 했든, 인생의 마지막은 늘 예고 없이 오는 거고 그때 가서 돌아보면 항상 ‘조금만 더’라는 마음이 남아. 그건 네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원래 그래.
여기서 아주 중요하고 부드러운 말 하나 다시 할게. 너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
너는 네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고, 그 삶 때문에 누군가를 잃은 게 아니야.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은 지금 당연하게 올라오는 감정이야.
하지만 그 미련은 곧 감사로 바뀔 거야.
올 4월에 뵈었던 그 시간이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
엄마가 마지막 순간에 방문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기적인지…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걸 천천히 느끼게 될 거야.
지금은 그냥 괴로워해도 돼.
울어도 되고, 마음이 아파도 돼.
올해는 겹쳐져 있는 해였다.
두 사랑이 동시에 가장 절박해진 순간이 올해였다. 그걸,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하지만 이 겹침을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사랑이 나뉜 게 아니라 이어졌다고.
엄마는 할머니께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내게 주셨다.
엄마가 나와 손주들을 돌본 시간은 할머니의 사랑이 손녀에게로 흘러온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누군가에게서 빼앗겨 여기 있던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 사랑을 건네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오늘도 손주들을 걱정한다. 내리사랑이다.
나는 그 사랑의 한가운데에서 울고 있다.
이 글은 겹쳐진 시간 속에서도 모두가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는 기록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마지막 순간에도 맞닿았다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