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느 지긋지긋한 날의 행복

창밖을 보니 벽에는 능소화가 피어 있었다.

by 홍매화



어린 시절에 나는 조심스럽고 낯가리는 사람이었다. 무언가에 도전하기보다는 익숙한 것들 안에서 안정을 추구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 낯선 감정들 앞에서는 언제나 한 발 물러섰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보고 있는 세상에서만 안전하다고 믿었던 우물 안 개구리의 마음이었는지도.

이런 나를 바꾼 건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이었다. 처음 클라이밍장에 들어섰을 때 천장까지 뻗어 있는 홀드들과 그 위를 가뿐히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저 감탄했다. 저걸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저건 나랑은 상관없는 운동이야.라는 생각이 더 가까웠다. 이상하게도 계속 눈에 밟혔다. 조심스럽게 체험 수업을 신청했고 처음 벽 앞에 섰을 때 내 손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문득 그런 날이 있다. 일어나자마자 아 오늘도 시작이구나 싶은 날. 커피는 밍밍하고 상사의 말은 따갑고 이유 없이 몸은 무거워 졌다. 지긋지긋한 하루 그리고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날. 오늘도 갓생을 살고 싶어서 무작정 서울숲 구로점으로 향한다. 벽을 타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까 싶어서.

단순한 몸의 움직임으로 복잡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을지도 몰라서. 무표정으로 거칠고 쉽게 넘을 수 없이 높은 벽. 그게 꼭 내 마음 같았다. 초크를 바르고 첫 발을 내딘다. 손은 어색하게 돌을 더듬었고 몇 번이고 미끄러졌다. 힘이 들어도 나쁘지 않았다.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는 감각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그러다가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나의 모습을 보고 능소화가 떠올랐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잡을 벽이 멀리 있어도 조용히 위로 향하는 꽃이니까. 조용히 위로 향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벽을 올라간다. 그러다가 익숙한 모습들이 보였다.

낯익은 목소리로 "클라이밍 원정도 다니세요?" 클라이밍을 가르쳐준 블랙 선생님이셨다. 시간이 지나서 기억에 남을까 싶었는데 기억하시나 보다. 괜히 민망해서 헛기침을 쳤다. "선생님 맞으세요?" "여기에서 보다니.." 수원에 계신 선생님을 구로에서 보다니 세상 참 좁다.



그날 겨우 몇 발자국 위로 오르다가 그대로 내려왔다. 몸은 힘들었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개운하다. 무언가 꽉 막혀 있던 틈이 조금 열린 기분이었다. 다음날 팔 마디마디의 근육들이 통증이 일어나고 해 오던 웨이트랑은 다른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주말마다 클라이밍장에 가고 손에 굳은살이 잡히는 걸 신기해하며 내 안의 두려움을 직면하며 작은 성취를 쌓아왔다.

다음 홀드를 믿고 손을 뻗는 것. 높은 벽 앞에서 나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배우고 다시 올라가면 된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어느 순간 바깥 풍경이 궁금해졌고 클라이밍은 나를 바꿨다.



벽을 오르며 나는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높이 오른다는 건 더 멀리 보이기도 한다는 것. 나는 이제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 내딛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작은 성취를 향해 손을 뻗는다.

지긋지긋했던 하루가 조금은 괜찮은 하루가 되었다. 내려오면서 창밖을 보니 벽에는 능소화가 피어 있었다. 그 벽도 어쩌면 오르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아도 조용히 오르는 중인 것이다. 가끔은 다정한 말 한마디에 손을 뻗을 힘을 얻기도 한다.



우리는 잠깐 웃었고 그 말 한마디가 마음속에 조용히 박혔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 그걸 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날 나는 몇 번 더 올라보고 몇 번 더 내려왔다. 팔은 후들거렸지만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이 정도면 괜찮은 하루였다.

짐을 챙기고 나가려는데 블랙 선생님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또 봐요." 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이 마음 한구석에서 오래 반짝였다. 밖으로 나서니 서울숲 클라이밍장 외벽에는 작은 능소화가 피어 있다.



어쩌면 그 벽도 오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아도 조용히 오르는 중인 것이다. 가끔은 작은 말 한마디에 다시 올라갈 힘을 얻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