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몇 초가 나를 다시 벽 앞으로 부른다.
나는 아직도 홀드에서 자주 떨어진다. 겁이 나서 미리 손을 놓아버릴 때도 있다. 누구보다 느리고 누구보다 오래 멈춰 선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마술은 실패 속에서 작동한다는 걸. 넘어지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벽 앞에 선다. 다시, 다시, 또다시. 나는 마술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매일 벽 앞에서 조금씩 마법을 연습하고 있다.
처음 클라이밍 체육관에 갔을 때, 나는 그들이 마술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좁은 벽 위에서 미친 듯이 날듯이 움직이는 사람들. 손가락 몇 마디로 온몸을 지탱하고, 공중에서 멈춰 서기까지 한다. 중력은 그들에게만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클라이머가 아니라 나에게는 일루셔니스트 같은 존재들이었다.
나는 그 마법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리고 나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벽 앞에 섰고, 두 손으로 홀드를 잡고, 발을 딛고 올라보려 했지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바닥에 떨어졌다.
내 몸은 너무 무겁고, 손은 금방 미끄러졌으며 마음은 순식간에 위축됐다. 그토록 단순해 보이던 동작들이 내게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퍼즐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이 재미있었다. 그 마법은 일부에게만 허락된 기술이 아니라 배우면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비밀 같았다.
나는 그렇게 클라이밍을 계속하게 되었다. 매번 클라이밍장에 갈 때마다 상급자들을 몰래 관찰한다. 발끝이 닿는 위치, 손이 바뀌는 타이밍, 몸을 맡기는 각도. 그 하나하나가 나에게 마법의 주문처럼 보인다.
그들이 내려간 루트에 몰래 올라가 본다. 금세 떨어지지만 아주 가끔 단 몇 초간은 나도 마법이 통하는 순간이 있다.
벽 앞에 서면 손보다 마음이 먼저 미끄러질 때가 있다. 분명 손은 홀드를 잡고 있고, 발도 딛고 있지만 매트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기분. 나는 클라이밍을 하며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배웠다. 처음에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높이 때문일 수도 있고, 경험 부족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낮은 루트에서도 손에 땀이 차고, 발끝이 흔들릴 만큼 긴장되는 순간이 많았다. 떨어져도 아프지 않은 매트 위인데 마음은 자꾸만 허공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 두려움은 정말 실제 하는 걸까?" 높은 곳이 무섭다고 말하지만 사실 내가 무서워하는 건 실패하는 내 모습, 남들 앞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순간 내 한계를 마주 보는 일 아닐까.
두려움은 상황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자라난다. 클라이밍은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어쩌면 두려움은 내가 나 자신에게 거는 마술일지도 모른다. 넘지 못할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착시. 가보지도 않고 "안 될 거야"라고 속삭이는 환상.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트릭을 꿰뚫어 보는 순간부터 떨어져도 괜찮다는 걸. 무너져도 배울 수 있다는 걸. 몸이 먼저 기억하게 되었다.
한 발 더 내디뎠을 때 생각보다 단단한 홀드가 있었다. 그건 마술이 아니었다. 내가 만들어낸 두려움이 사라졌을 뿐이다. 이제는 두려움은 항상 사라지지 않을까. 다만 그것이 트릭이라는 걸 알아채면 덜 속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설 수 있다. 벽을 오르는 기술은 천천히 늘고 있지만 마음은 그보다 조금 더 빠르게 자라고 있다.
두려움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정체를 알아채는 것. 그것만으로 우리는 더 높이 오를 수 있다. 떨어지기를 겁내지 않게 된 순간부터 나는 진짜 마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벽 앞에 혼자 선다. 그리고 올라간다. 손끝이 떨리고, 전완근이 타들어가는 그 감각. 홀드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온전히 나의 힘으로.
드디어 마지막 홀드에 손이 닿았을 때, 아래를 내려다본다. 땀에 젖은 바닥, 조용한 클라이밍 장, 그리고 비워진 그 자리에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이젠 나 혼자 힘으로도 충분히, 벽을 오를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