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의 가을, 그리고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잠시 멈춰 선다.
회색의 건물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 햇살은 분주함과는 반대로 잠시 멀어진다. 철제 홀드에 손을 얹는 순간, 세상은 조용해지고 오직 나의 호흡만이 또렷 해진다.
클라이밍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단순히 상체 운동을 할 수 있는 운동만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이 그리웠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반복인 일상 속에서 땀을 흘릴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클라이밍 장에 들어서고, 홀드를 잡는 동안 복잡한 생각들은 잠시 사라진다.
내일의 일정, 해내야 할 일들, 이 모든 것이 손의 감각 덕분에 밀린다. 무언가에 집중을 하는 순간. 잡념들이 사라진다. 이에 손바닥이 거친 질감을 기억할 때쯤, 도심의 소음은 멀리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처음엔 더 높이 오르고 싶었지만 지금은 벽 위에서 멈춰 서 있는 순간들이 더 좋다. 이 정적 속에서 마음은 정리되고 생각은 단순해진다.
클라이밍을 한바탕 끝내고 밖으로 나서면 버스가 지나가고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며 바쁘게 걸어간다. 그 속으로 섞여있는 것은 당연하다.
벽 위에서 내려와 서울숲의 나무를 바라봤다. 도심의 불빛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지나가고 그 속에서 나는 올해의 나를 천천히 떠올렸다.
서울숲의 공기와 땀 냄새가 섞인 클라이밍 장에서는 도심 속에서 지쳐있는 나에게 쉼표가 되어 주었다.
내가 얼마나 쉽게 포기하는 사람인지도. 또 얼마나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인지도. 손끝의 작은 상처들이 쌓일수록
내 안의 단단함도 함께 자라났다.
2025년 올 한 해, 나는 이 벽 위에서 잠시 멈추며 살았다. 그리고 그 멈춤 덕분에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내가 찾은 쉼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이 도시 한가운데에서 서울숲 벽 위에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내년이 와도 나는 벽 위에서 또 다른 나를 배우게 될 것이다. 요즘은 완등이 목표가 아니다.
다시 도전할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게는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벽 위에서 내려와 서울숲의 나무를 바라봤다. 도심의 불빛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지나가고 그 속에서 나는 올해의 나를 천천히 떠올렸다.